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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문재인의 동기감응(同氣感應) 운명공동체론~
게시물ID : sisa_8512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다의꿈
추천 : 1
조회수 : 8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19 16:03:07

노무현과 문재인의 동기감응 운명공동체론



1.1982년 9월 부산의 어느 바닷가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뒤집고 흔들어 정치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적 부와 국민적 자긍심을 분배할 꿈을 가진 사나이 둘이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진기한 경험을 했다. 무언가 단단한 끈으로 오래전부터 둘을 이어온 느낌! 마치 오래 전에 헤어진 쌍둥이 형제를 상봉한 그런 인상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쩌면 그 느낌은 그때까지의 공통된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둘 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 태어나 배를 주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사와 농사를 도우면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부산의 명문고(부산상고와 경남고)에 입학한다. 그러나 둘 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조리한 사회와 학교에 반항하는 반골 기질로 정학까지 당하는 등 그다지 모범생은 아니었다. 술과 담배도 배우고 쌈박질도 하던 조숙했던 두 사람은 이후 비슷하면서도 다른 청춘을 보낸다.   


한 사람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막노동과 공장 노동자로 70년대 처참한 노동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유신독재의 폭거에 맞서 싸우다 영어의 몸이 된다. 이후 두 사람은 군 제대 후 사법시험의 합격으로 입신양명의 위치에 자신들을 일으켜 세웠으나 자신들의 길은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와 새 길을 찾았으니 바로 힘없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의 길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80년 대 초반부터 부산·경남지역의 시국관련 재판의 무료변론과 노동 상담을 전개했으며 그 후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시민들을 모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고 적극 참여하여 87년 부산지역 재야운동의 구심이 되었다. 그 진기한 인연은 운명처럼 서로를 묶어서 이후 30여 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주역이 되게 하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2002년 이후부터 2014년 현재까지와 그 이후로도 전개될 두 사람의 지속되는 이야기다. 



2.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은 온갖 난관을 뚫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처럼 변방의 세력도 금력도 없는 고졸 출신의 비주류 정치인이 최고 권좌에 등극한 사례는 前無했으며 後無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진짜 주인인 다수 국민 대중의 뜻이 민주적 절차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힘이었다. 노무현은 세 번에 걸친 국민의 적극적 의사표시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 첫째가 민주당의 국민경선이었고 두 번째가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결정한 여론조사였으며 세 번째가 정몽준의 막판 단일화 파기에도 흔들림 없이 역대 최다 표를 몰아준 대통령 선거였다. 


이에 50년 기득권 세력 전체는 이러한 결과에 경악했고 제2의 노무현의 등장을 막기 위해 노무현을 정치적으로 무너뜨리는 데 전력했다. 그중 으뜸가는 일은 국회의 삼분지 이가 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폭력적인 대통령 탄핵안 가결 선포였다. 만일 그 후 총선에서 국민들이 열린 우리당에 다수당의 지지를 보내서 지배세력 전체에 강력히 경고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의 헌재는 7대 2의 결정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을 것이다. 헌재의 결정문은 기각과 가결 두 가지로 작성되어 회람되고 논의되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총 4번에 걸쳐 국민의 직접적 의사표시로 그 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노무현 정부의 5년 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자.


노무현 정부는 외교에선 동북아 균형자를 표방하여 전임 김대중에 이어 한반도 주변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 기여하였다. 네오콘에 둘러싸인 깡패 부시정권의 압박에도 그 기조는 끝내 유지되어 2007년 10.04 남북정상선언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국방에서도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을 넘어서서 동북아의 정세를 주도할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매년 8% 인상하여 자체무기 개발에 주력하였다. 


내치에선 절차적 민주주의의 교본이라 할 만큼의 철저한 법치주의를 확립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범위 안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서 그 권한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하여 권위주의 타파와 수평적 토론 문화의 사회적 정착에 기여했다. 그야말로 인터넷 논객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신행정수도 이전과 지방화 전략으로 추진한 기업도시 혁신도시의 지방분산 배치다. 이로써 오랜 수도권-영남 중심의 발전전략은 국토균형발전 전략에 따라 지역균형 발전의 전기를 가져왔으며 이로써 수구 기득권 세력의 물적 토대인 부동산 투기의 근거와 영남패권의 축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 한계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퇴임 후 노무현 자신도 지적했듯이 비록 한계 계층에 대한 복지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종부세 신설로 지자체의 복지사업 확충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지만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 자본과 맞서는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하고 임시적 처방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임기 내내 신자유주의라고 비판 받고 유시민과 문재인도 나서서 인정하고 사과하는 참여정부의 극복해야할 한계지점이다. 이렇게 누구나 다 알법한 성과와 한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최대 업적은 따로 있다.   


그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런 평문이 있다. “총명하고 통솔력이 있으나 비타협적인 성격이다.” 노무현은 평생 비타협적으로 싸웠다. 숙명 같은 가난의 굴레와 싸우고 싸워서 잘 나가는 세무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키운 ‘지역주의 망령’이란 괴물과 모든 걸 던지고 투쟁했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선 온갖 궁물들의 기회주의적 반칙에 맞서 대결했다. 대통령이 돼서는 수구세력 전체와 건곤일척 양보 없는 전쟁을 벌였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은 있었지만 결코 항복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국민의 위임권력을 수호하며 국민이 명한 전장의 최전선을 지켰다. 그리고 퇴임 후 마지막 운명을 건 싸움에서도 그는 끝끝내 타협하지 않고 자신에 투영된 국민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표표히 생의 본능마저도 던져버렸다.   


노무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설치류 정권의 하이에나들이 계획한 은팔찌를 채워 죄수복을 입혀 감방에 가두고 능욕하려는 시나리오는 실연되지 못했다. 그들의 조소는 공포로 변했고 아들을 잃은 국민은 부모된 심정으로 그의 마지막을 애통해했다. 그리고 다시 복수를 다짐하며 노무현을 부르고 있다. 



4. 노무현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삶의 파동은 온 사회에 그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이제 노무현이 국민에 소환되어 대통령 후보로 나선지 10여년 후 노무현 보다 7년 젊은 부산의 한 사나이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섰다. 그는 노무현과 아주 닮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기질의 사나이다.   


노무현이 목적의식적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가고 저돌적으로 부딪히는 바람의 파이터 라면 이 사나이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미동도 없이 나타나 적진을 가만히 응시하기만 하는데도 적들이 사기를 꺾고 혼비백산하는 내공을 가졌다. 제 아무리 날고기는 책사와 술사가 모여 지략과 꾀를 내어 함정을 파고 뒤를 캐도 무소의 뿔처럼 소리 없는 바람처럼 적진을 하나하나 돌파하여 나아간다. 적들이 분열과 공포를 무기로 아군을 교란하자 이 사나이는 통합과 단결을 내세워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긍정과 화합의 다리를 놓아 정국의 중심으로  대결장에 우뚝 섰다. 


그에겐 꿈이 있다. 노무현이 5년간 공들였으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라는 하늘의 뜻이자 국민의 명령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 짐승의 세상을 뒤집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수를 모르는 탐욕과 지배욕으로 물어뜯고 빼앗고 짓밟는 축생과 아귀가 판치는 이 강도의 나라, 청계천에서 시작해 온 나라 강토를 죽음과 파괴의 돈놀이 삽질로 파괴한 저 박정희 날강도,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세력에 의해 난도질당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대지위에 다시 생명과 소망의 씨를 뿌리기 위해 저 썩은 무리를 걷어치워야 한다. 바로 이 간고한 국민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그 굳게 닫힌 희망의 문을 열기위해 문재인이 이제 국민 앞에 나선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30년 지기이다. 30대 초반의 팔팔한 시절부터 둘은 의기투합했고 정서를 공유했으며 역사를 함께 해왔다. 마치 케네디가의 형제들이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법무장관으로 국정을 공유했듯이 노무현과 문재인도 참여정부의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했던 것이다. 노무현의 정치 인생역정에서 그가 얻은 지혜와 청와대 5년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성취한 깨달음이 그대로 복제되어 전수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인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비록 헌법상 단임제 대통령제이고 분명 다른 자연인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되겠지만 사실상 이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2기가 될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의 출발도 노무현 정부의 끝에서 시작될 것이니 문재인 후보가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는 수락문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말한 구시대의 막차는 이제 문재인의 새 시대의 맏형에게 그 바톤을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습니다.” 문재인의 저서 『운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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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가 아니라 1차에서 문재인이 과반을 훨씬 넘긴 압도적 승리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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