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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토하고 그냥 내렸어요...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게시물ID : bestofbest_13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죄송해요
추천 : 212
조회수 : 20086회
댓글수 : 7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6/08/14 02:12:46
원본글 작성시간 : 2006/08/13 01:46:01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글을 씁니다...ㅠ.ㅠ

예.................. 제목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하철에서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1시 20분 경, 여의나루 역을 지나는 전동차 안에서 오바이트를 했습니다.. 더더욱 나쁜 것은  수습도 안하고 (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냥 내려버렸다는 거예요.. 그 전동차 안이 시큼털털한 토사물 냄새로 가득찼을텐데.. 같이 타고 계셨던 분들을 얼마나 당황스럽고 화가 나셨을까요...... 그것도 거의 문 쪽인데... 타시다 혹 밟으신 분이라도 계시면.. ( 분명히 계실 것 같은데... 아아 난 죽어야해.. )



사건의 정황은 이러합니다.... 오랜만에 학회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96학번 선배님들부터 쫙 오시는 즐겁고 반가운 자리이고, 으레 그러하듯 윗 학번 언니들은 후배 사랑하는 마음으로 술을 주시죠... 하지만 전혀 많이 주시는 편은 아닙니다.. 마실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마시면 되는 건데요.. 

제가 술을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이라 ‘무슨 행사라도 있지 않는 한’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 방학중인데 술 마실 일이 있을 리가 없죠.. 그러다 보니 주량이 줄었는지 요령을 잊었는지 맥주 두 잔, 소주 세 잔에 속이 다 뒤집히더라구요.. ( 안주 맛있다고 막 집어먹은 게 탈이었을지도요. ) 그래서 술집 화장실에서 한번 다 게워내고 깔끔한 정신에 깨끗(하다고 믿은)해진 위와 함께 자리를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정말 괜찮았거든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왕십리 역에서 5호선을 타고, 슬슬 졸기까지 할 정도로 편하게 집에 오던 중이었습니다. ( 저희 집은 5호선 거의 끝자락에 있구요. ) 진짜 아무렇지도 않던 속이.. 전동차가 여의나루 역으로 향할 때쯤에 조금씩 메스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심호흡도 하고 자기 최면도 걸어보고 하며 노력했지만.. 전동차가 흔들릴수록 속에서 모든 게 다 뒤섞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잽싸게 친구에게 ‘나 내린다’ 한마디만을 남기고 일어섰죠. 그 순간 첫번째 위기가 닥쳐오더라구요.. 목구멍으로 넘어온 토사물을..... 절대로 이 안에서 실례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짝 도로 밀어냈습니다.... 

절대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에서의 전지현의 상황은 정말 실제를 100프로 반영한 것어더군요.. 그 바람에 비위가 온통 상해버린 저는 그 다음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크게 한번 토했습니다.... 

문 열리기 불과 6, 7초 전이었죠.. 최대한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입에도 한 가득 물고, 손에도 토사물을 들고 서 있는 채였지만 이미 바닥에는 보기 흉하게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제 하얀 샌들과 종아리에도 온통 다 범벅이 되어 있었구요... 정말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근데 가혹하게도 전 너무나 말짱한 맨 정신이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어머 뭐야 어떡해...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정말 머릿속이 하얘져가지고 서 있는데, 문이 열렸고, 곁에 있던 친구가 ‘내려’ 라고 속삭였습니다. 아마 2차, 3차로 오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했었나 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토는 그 한번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순간만 잘 버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쨌든 저는 내렸습니다..  이제 수습을 어찌해야 할까요.... 


손과 입에 문 토사물부터 어떻게든 해야 했습니다만.... 여의나루 역은 승강장이 지하 5층, 화장실이 지하 1층에 있는 구조라 거기까지 이 상태로 갈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미친듯이 지하철 은색 구멍을 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대걸레를 빠시는 수도꼭지 있는 하수구였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그곳은 단순한 구멍이었던 듯, 담배꽁초만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 일단 손과 입의 것들을 밀어넣고, 제발 빠른 시간 내에 청소아주머니께서  발견해 주기를 바라며 문을 조금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휴지를 꺼냈습니다. 아주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큰 건더기부터 ( 거듭 죄송합니다... ) 닦아냈지만.. 샌들 장식 사이에 끼어있는 것들은 정말....... 


딱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상태 그대로 비척비척 지하 1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저밖에 없더군요. 어찌어찌 여차저차해서 간신히 화장실(역무원 아저씨가 내보내 주셨습니다. )에 갔습니다. 근데.... 이걸 씻으려고 보니 세면대에 있는 사람들도 많고 거기서 처리하기에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좌변기의 물에다 (맑다.. 맑다.. 하얀 거 봐라 이건 맑은 물이다라고 최면을 걸며..) 신발과 더러워진 발을 행궜습니다. 그리고 나오니 밖에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물비누로 본격적으로 냄새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손, 종아리, 발바닥까지 거품을 칠하고 있는데, 주위 여자분들께서 언짢게 쳐다보시더라구요... 그렇다구 토해서 그럽니다.. 양해해주세요.. 라고 혼자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저지른 죄에 비하면 미미한 대가니 달게 받으며 꿋꿋이 씻었습니다.... 그래도 세면대에 발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손으로 물 퍼다가 했어요... ㅠ.ㅠ 머리카락도 잘 빨고... 


그리고 나서 다시 지하철 잡아타고 집에 오는데.... 오는 내내 계속 두려운 마음도 들고 후회도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한 번 더 가볼걸.... 비닐봉지 준비할 걸.. 최소한 토하기 전에 가방이라도 펼쳐서 그 안에다 했으면 나았을 걸.. 토한 다음 그렇게 도망치지 말걸... 그냥 그 자리에서 승객들께 휴지랑 봉지를 빌리면 더 나았을 걸.... ㅠ.ㅠ 


그 다음 드는 생각은... 인터넷에 ‘개토녀’ 로 글 올라오는 거 아냐.. 하는 거였습니다... 도착해서 엄마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하긴.. 제가 생각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었을 거 같습니다.. 저도 길거리에서나 버스에서 토사물 발견하면 속으로 욕 엄청 하거든요... 더군다나 요즘 된장녀다 자취녀다 오백녀다 해서 개념없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한몫을 하는 구나 싶었습니다.. 같은 여성 분들께도 죄송했구요..... 



그래서 이렇게 미리 이실직고 하고 사과 말씀 올립니다...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더 신중하고 올바르게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5호선 지하철이랑 여의나루 역에 벽보를 붙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이 방법이 여러가지 면에서 더 나은 거 같아서 이 방법을 택합니다.. 토하고 그냥 내린 것... 정말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다신 그런일이 없도록 할 거구요, 혹시 버스나 지하철에서 토사물을 보게 되면, 오늘 일의 조그만 면죄부라도 받자는 심정으로 앞장서서 치우겠습니다.... 맹세합니다... ㅠ.ㅠ



그리고 술을 드실 일이 있는 모든 분들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전 오늘, 자기가 콘트롤 할 수 있다고 아무리 굳게 믿어도, 그 믿음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거든요..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은 이제껏 한번도 없었는데, 이런 일이 저에게 닥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술 약하신 분들 만이 아니라 쎄신 분들도 만약을 대비해 검정 비닐봉지 하나쯤은 지갑 안에 넣어두심이 어떨지요... ㅠ.ㅠ 

    
그럼 오유인 여러분... 건강한 날들 되시구요... 혹시 그 지하철에 타셨던 분, 토 냄새 풍기며 계단 오르는 저를 만나셨던 분께서 오유인 중에 계시다면... 철없고 어린 여대생이 저지른 이 큰 실수에 대해 리플 남겨주세요.. 악플이든 충고든 질책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로그인하고 글 쓸 용기도 없는 것...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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