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슬픈일이 일어나도 시간이 흐르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애인과 이별, 부부와의 사별, 자식의 죽음, 자손의 죽음등
하지만 자식의 죽음등 후손이 먼저 죽는 일은 사람들을 때론 미치게 만들기도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의 죽음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지요
자식의 죽음은 한 개인의 삶을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더 깊게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한 일화를 듣고 이 일화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깨달은이가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비오는 날, 베사카 부인이 찾아 왔어요.
우산도 안 쓴 채 비를 다 맞고, 눈물을 흘리면서 깨달은이를 찾아 왔어요.
"부인, 웬 일이요?"
"깨달은이여, 저는 너무 너무 슬픕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던 손자가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슬프고 괴로워 죽겠다는데, 같이 울어줄까요?
보통은 이럴 때 같이 울어주겠지요.
같이 울어주면 약간은 위로가 되겠지만 슬픔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손자가 죽었는데 뭐가 슬퍼요? 난 것은 다 죽게 마련인데."
이러면 어떨까요? 말은 맞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신앙이 깊은사람도
'아이고, 이놈아, 니는 장가도 안 가고 애도 안 낳아 봤으니까 그런 모진 소리를 한다.
니 손자 있어 봐라. 니가 그런 소리를 하겠나.' 이렇게 해서 마음이 팩 돌아서 버려요.
그런데 깨달은이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그렇소, 그런데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좋소. 두 명이면 좋소?"
"깨달은이여, 둘이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둘이면 좋소, 셋이면 좋소?"
"셋이면 더 좋습니다."
"부인, 다섯이면 어떻소?"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할 겁니다."
"부인, 사랑하는 사람이 저 성에 사는 사람 수만큼 많다면 어떻겠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인, 저기 저 성에서는 하루에 몇 명이나 죽소?"
"깨달은이여, 아마 한 명은 죽을 겁니다. 아니, 하루에 두 명은 ..... 아니, 열 명은 죽을 겁니다."
"부인, 그러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매일 매일 슬피 울겠구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베사카 부인은 탁 깨쳐서, 얼굴이 환해졌어요.
이 기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은 기쁨, 욕망이 충족된 기쁨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쁨, 해탈의 기쁨입니다.
이 일화는 옛날 인도에서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둘의 담화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구나'
물론 그 순간에는 슬프고 눈물이 나지만
내 인생에서 특별한 불행은 아니다.
그리고 좀더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는다.
눈물이 날 일이지만 슬픔에 빠질일도 아니다
즉 미칠일이 아니다.
이런 결론이 납니다
그럼 왜 사람들은 때론 미치거나 남은생을 슬픔에 빠져 살기도 할까요?
그건 다음에 생각해 보구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죽어도 불행한 일이 아닌데
왜 늘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과불행을 왔다갔다 할까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