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클릭은 연속적인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분절을 일으키는 무한히 미세화된 구분점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눌러대는 마우스의 한 버튼, 그 한 클릭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트레이딩 룸에선 그 한 클릭이 핵미사일 발사 버튼만큼이나 운명을 가르는,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의사결정의 폭포이다. 그런 중대한 의사결정을 전달하는 게 이따위 마우스 한 조각이라는 게 때론 현실성이 떨어질 만큼.
딸깍, 딸깍, 딸깍. 어떤 날은 트레이딩 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우스 클릭이 전부인 날들이 있다. 그 안에 식은땀을 흘리며 인생의 육정칠욕이 움직이고 있을 트레이더들에게, 어느 선배 트레이더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 클릭이면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손절 할까 말까, 수익을 챙길까 말까, 무한한 복기와 자성의 고민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데에는 한 찰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결정은 한 클릭만큼, 손가락이 0.1cm 움직이는 노력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이어서 울림이 있었다. 천 년 후의 어느 종교의 기도문으로 써도 될 문구 아닌가. 어쩌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얘기였을 수도. 어쨌든 그 표현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때론 한 클릭으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포지션마저도, 결국은 결정을 내린 순간 전부 청산할 수 있는 찰나의 포지션이 아닌가 하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어릴 적 Market Wizard 라는 트레이더 인터뷰 시리즈를 접해서 지금까지 수십번을 읽어보았다. 이제야 소개하는 이유는 내 글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에 내 글을 안 읽을까 봐서다. 그 책에 나오는 수십 명의 트레이더들에게 트레이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물어보면 절대다수는 '손절'을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손절일 뿐이다. 손절은 기법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실천하는 게 어렵다. 그 한 클릭을 누르기까지 어떤 심리적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조지 소로스에게 손절이 없었다면 그는 이미 수천번 망했다. 제아무리 위대한 로직도 손절 없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예금 투자와 가치투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데, 끝을 정해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작의 선택의 폭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손절 없는 투자는 100% 성공하는 로직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단, 손절이 있는 투자는 51%의 승률만으로도 수익을 쌓을 수 있다. 그런 것은 흔하다. 그것을 손절과 버무려서 성공의 방정식을 만드는 것만 해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운명이다.
트레이더의 95% 이상이 잘린다고 했다.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다. 트레이더의 자질이 없는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손절을 할 수 있는 위인인가'이다. 손절은 실전 인생에서 별로 쓸모없는 개념이어서 대부분 사람이 익숙지 않다. 투자를 해보아야만, 몇 번의 인생을 사는 듯한 사이클을 반복해봐야만, 손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인생에서는 손절이 없어도 용기와 기백만으로 수십 년에 걸쳐 기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투자에선 그렇지 않다. 손절에 대한 심리적 배리어가 있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 손절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영원히 불가능하기도 하다. 나는 전자를 믿는 편이다. 누구나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면 손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당장 손절을 못한다. 머릿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랑이 전혀 아니다. 퇴출 사유일 뿐이다. 아름다운 퇴출 사유도 아니다. 그냥 일차 퇴출 사유다. 서비스 업종에 들어온 사람이 세수를 안 해 눈꼽이 덕지덕지 끼어있는 것만큼이나,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아름다움도 없는 결격 사유일 뿐이다. 왜 손실을 받아들여야 최소한의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너무나 명확한 방증이다. 병사들을 다 죽일 생각으로 전쟁터에 출근하는 장수만큼이나 무모하다.
그러니 '물려서 장기투자 중이에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마라. 인류의 90% 이상이 겪는 흔한 투자 장애이고, 필망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심리적 편향일 뿐이다. 서울대 교수도, 재벌 2세도, 초등학생도, 모두 똑같이 떠안고 사는 아마추어리즘이다. 불빛에 놀라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는 노루의 심리와 다를 바 없다.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행동을 멈춘 것이다. 반복하면 반드시 길거리 시체로 끝날 습관이다. 지금 느끼고 있는 문득 아름다워 보이는 보유 종목의 엄청난 펀더멘탈은 그저 손절을 하지 않기로 한 변명을 찾다가 나타난 착시일 뿐이다. 그 착시가 우연히 오아시스의 방향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착시를 꾸준히 쫓아다니면 사막에서 미라가 되어 삶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손절을 못하는 순간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헤어진 것이 믿겨지지 않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금전적 이별을 겪고 나면, 앞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바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저 자신에게 멍한 시간을 조금 허용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식으로 손절을 제때 못해 멘탈 붕괴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1편에서도 몇 장면을 소개했지만, 오래 산 트레이더라면 누구라도 어느 순간에 역대 최고의 손실을 보고 현실감을 상실할 때가 있다. 어디 트레이더 뿐이랴. 인생의 곳곳에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현기증을 느끼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이별일 수도, 사고일 수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행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무정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별은 떠안고 살 수 있어도, 시체는 떠안고 살 수 없잖은가. 망가진 주식계좌는 이제부터 썩어간다. 내 계좌는 어쩌면 살아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 순간부터 내 마음도 생활도 썩어갈 것이고, 남은 돈마저도 썩어갈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결정을 내릴 새로운 기회다. 선택지가 많다 해서 당황할 필요 없고, 더더욱이 선택지가 없다고 스스로를 속일 이유도 없다. 항상 선택지는 있다. 한 클릭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계좌의 수익은, 내 집중력에 공명한다. 집중력이 바짝 올라있으면 수익이 늘어날 수 있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온갖 뻔한 함정들에 노출된다. 그러나 웬걸, 손실이 늘어날 때 집중력이 늘어나는 묘한 착시를 모두가 느껴봤을 것이다. 긴장감 속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며 평생 느낀 적 없는 스릴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런 과도한 몰입감을 집중력과 구분해야 한다. 특정한 감정 상태는 손실을 유혹하는 밑밥이나 다름없다. 본인의 집중력과 쓸데없는 몰입감의 종이 한 장 차이를 분간하기 시작하면 언제 매매를 해야 할지 또 언제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기 시작한다. 트레이딩은 정말이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심법이며, 도라고 생각한다.
승부사라는 이야기는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배를 미워해야 하지만, 패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패배를 많이 경험해야만 패배에 익숙해진다. 패배해보지 않은 트레이더는 언제든 멘탈이 녹아내릴 수 있는 트레이더다. 그러나 패배에 무뎌진 트레이더는 또한 맛이 간 트레이더다. 다시 한번 종이 한 장 차이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장에서의 싸움을 전쟁터와 비교해보았다. 스캘퍼에게 방향성으로 몰리는 날은 흡사 퇴군하는 부대가 기병대에게 꼬리를 잡혀 한없이 쫓기는 형국이다. 동아시아 역사상 3대 대전으로 꼽히는 비수대전이 있다. 5호 16국 시대 중국을 통일하다시피 한 전진의 3대 황제 부견이 100만 대군을 끌고 동진의 장수 사현의 8만과 맞붙었는데 한번 기세가 밀리자 아군에게 짓밟히며 퇴진하여 백만대군이 하루아침에 대패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때론 장의 방향성이 스캘퍼들에 의해 결정되는 날, 끝도 없이 한 방향으로 몰리는 시장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쫓았으면 좋겠건만, 적군의 붕괴되는 후미를 칠 기회를 봐줄 이유가 없기에 정말 추세가 지옥처럼 추격해 온다. 반면 옵션 변동성을 매매하는 입장에서는 큰 전투가 끝난 후 패잔병의 금품을 털어가는 약탈자들이 생각난다. 전투의 치열함은 정규군에게 맡기고, 모든 수익은 인내심을 통해 취하는 형국이다. 어느 쪽이든, 트레이더의 삶은 생각보다 전면전이 아니다. 트레이더는 큰 전투의 흐름에 맞춰 수익을 극대화하는 약탈자이자 동시에 야비한 약자들이다. 내일도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클릭이면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 선배는 또 다른 것을 한가지 알려줬다. 모두가 못 견디고 못 견디다 결국 너무 늦게 클릭을 누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멘탈이 붕괴된 자들의 때늦은 어설픈 손절이 한순간에 몰려 약자가 약자를 짓밟는 아비규환의 타이밍에, 자기 같은 스캘퍼가 지옥을 선사하며 떼돈을 벌어가니까 항상 자신을 생각하고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그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상냥한 말투 친절한 설명으로 기법을 전수해준 그분과, 시장에서는 포식자와 먹이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손절을 열심히 해왔지만, 그때부터 나는 퇴로를 확보하지 않는 진격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의 거대한 승리는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전투 중에 하루일 뿐이다. 오늘을 싸우고 생존해서 내일도 계좌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한 클릭의 교훈은 트레이더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나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여운을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