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선한 의도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이 이론은 상대가 '나는 어떤 행위를 선한 의도로 했다'고 말하면 일단 이를 참이라 믿고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안희정의 1차주장이라 부르자.
여기서 후속 주장(2차 주장)은 아래의 두 경우로 나눠질 수 있다.
(1) 상대가 말하는 의도가 참임을 가설로 설정하고 대화를 계속하며 상대가 말하는 전반적 내용이 이 가설을 잘 뒷받침하는지 살펴 최종적으로 가설의 진위를 결정한다.
(2) 상대가 말한 의도가 참이라 가정하고 대화를 계속하되 의도의 실체는 미결정 상태로 방치하며, 의도에 독립적으로 그의 행위의 옳고 그름을 평가한다.
안희정의 1차 주장은 논쟁의 여지없이 정당한 생각이다. 2차주장의 두 후보도 그 자체로는 모두 일리가 있다. 안희정은 (2)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는 그 자체로는 일리가 있지만 현재의 탄핵정국에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탄핵 정국 속 탄핵 심판의 성격은 박근혜 대통령의 낱개의 행위들을 각각 따로따로 평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 곧 그녀의 사람됨을 평가하는 것이고 사람됨을 평가할 때 대개 동기와 의도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헌법1조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 할 때 그녀의 낱개의 행위들을 따로따로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매우 미흡한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낱개의 행위들이 일관되게 어떤 의도와 계획 하에 실행되었는지 여부가 확인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하다. 또한 탄핵 소추안에 기재된 혐의들 중 뇌물죄의 경우 그 죄의 성립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관찰된 행위들로부터(관찰되지 않는) 행위자의 의도를 추론하는 절차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뇌물죄의 핵심인 댓가성을 순전히 관찰된 행위들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댓가성을 판단하려면 ① 주는 사람이 A를 주면서 B를 받기를 원했음과 ② 받은 사람이 후에 A의 대가로 B를 준다고 생각하며 B를 줌, 이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둘 다 당사자 본인만 인지가 가능할뿐 타인에 의해서는 관찰될 수 없는 사태이다. 오직 추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도를 추론하는 절차 없이 댓가성은 결코 판단될 수 없다.
안희정이 만약 2차주장으로 (1)을 지지했다면 그가 한 얘기는 그의 바람대로 정치적 입장을 떠나 누구든 동의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직한 대화의 조건'을 제시하려 했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얘기는 넓게 보면 실은 이쪽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비로운 해석을 하더라도 이렇게 봐주기가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가 명시적으로 사용한 표현들이 노골적으로 (2)를 지지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JTBC 뉴스룸 연속대담의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처럼 말한다.
"저의 이야기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선한의지였으니까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규정하자는거냐, 이렇게까지 확대해석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선한의지냐 나쁜의지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불법을 저질렀느냐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조사하는 것이고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법치를 주장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그가 어떤 불법행위를 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언론들은 안희정의 이야기를 전술한 두 종류의 주장으로 구별하는 데 실패해서 엉뚱한 포인트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안희정이 허수아비공격을 받고있다. 그래서 안희정 본인도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계속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러나 안희정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허수아비 공격을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안희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안희정도 사과 없이 버티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확한 공격을 받는다면 그가 주장하는 바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는 그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