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들어가보니 수의사가 여자분이었다. 왼손에 반지도 없었다. 상자에서 고양이를 꺼내 들어 책상에 올려놓자, 녀석은 또 크게 울어댔다.
"안녕~ 괜찮아 몸무게좀 재자."
병원이 낯설었는지 녀석은 차에 탔을 때처럼 크게 울었다. 괜찮다. 괜찮아. 안 죽어. 적어도 나보단 훨씬 나을거야.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손이 닿자 녀석은 자지러졌다.
"괜찮다, 괜찮아 아가야, 잠깐이면 돼."
수의사는 혼자 사는 남자보단 훨씬 수월하게 녀석을 들어올려 책상위의 저울에 올려놓았다.
583
녀석의 몸무게는 583g 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서는 고기한근- 이 떠올랐다. 의사는 손으로 고양이를 여기저기 꾹꾹 누르며 녀석의 반응을 살폈고, 녀석은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계속해서, 아까보단 좀 작은 소리로 냐옹거렸다. 곧이어 수의사는 녀석의 귀를 살펴보더니, 제법 심각한 얼굴로 다른 손으로 책상을 뒤적이더니 왠 전등같은 걸 꺼낸다.
"잠깐 화면을 보세요."
전등을 녀석의 귓속에 넣자 녀석은 죽는다고 울어댔다. 괜찮아, 괜찮다. 계속 그러면 콱 놔두고 그냥 도망친다. 동그란 내시경 같은 화면엔 녀석의 빨간 귀와, 기름찌꺼기같은 검고 번들거리는 무엇이 점점히 붙어 있었고, 하얀 점 같은 게 기어다녔다.
"저기 저 기어다니는 것들 보이시죠? 진드기입니다. 귀속에 진드기랑 귀지가 많은 편이네요. 다행이 어디 염증은 없어 보이구요."
녀석은 길거리 출생이었던 것이었다.
"구조하신 건가요? 귀에 진드기가 많은데, 귀지는 닦아 드릴게요. 진드기 말고는 건강합니다."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찾아본 웹사이트에는, "종합예방주사"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문제집과 만화책이나 잡지등을 사던 동네 서점 아저씨가 어느날 강아지를 데려왔다. 마침 외갓집에서도 해피가 낳은 새끼 한마리를 서울로 유학온 외사촌형의 손에 들려 보냈다. 어린 마음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 작은 것을 서점에 갈 때마다 안고 갔다. 어울려 놀던 두 녀석을 볼 때마다 서점 아저씨와 내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그 시절에는 개에겐 밥찌거기를 주었고, 동물병원은 녀석들이 정말 크게 아플 때나 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망치 - 서점 강아지의 이름이다. - 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자, 난 내 친구를 잃은 것 마냥 슬퍼했고, 며칠 후 우리 집의 강아지도 침을 흘리면서 밥을 못 먹더니 하늘에 네 발을 뻗은 채 죽고 말았다. 어른들끼리 하는 말로는 장염이었고, 그게 녀석들끼리 전염이 된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녀석을 안 입는 옷으로 싸셨다.
"보지 마라."
나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울 때, 난 아버지가 그 작은 녀석을 비닐에 넣고 쓰레기와 함께 버린 것을 알았다.
녀석은 그꼴을 당하면 안되지. 나는 예방주사를 놓아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