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는 한미 FTA를 관세장벽을 허무는 무역협정처럼 말하지만 한미 FTA는 단지 관세부문만의 협정이 아니라 사회정책 전반에 걸친 무역협정이다. 이는 SSM 규제 관련 법안이 여야합의로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가 한미 FTA 보다 그 강도가 약하다고 평가되는 한 EU FTA에 의해 좌절된 것만 보아도 그렇다. 홈플러스에 투자한 영국의 테스코사가 WTO 제소를 할 경우 SSM 규제가 한 EU FTA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말 한마디에 의해 SSM 규제관련 법안은 국회통과가 좌절되었다.
한EU FTA는 투자자 정부 제소제도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단지 정부가 기업을 대리하여 정부간 소송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일 한미 FTA에 의한다면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기업이 직접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 한미 FTA는 한국 정부의 사회정책 전반에 걸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은 먼저 한미 FTA가 건강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하고 이어 사회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1. 한미 FTA가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
1) 민영의료보험 규제 불가능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은 현재 약 12조원으로 추정되며 약 30조원의 국민건강보험의 30% 이상의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였다. 20세 이상 성인의 경우 53.2%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해있다고 응답하였고 한 가구당 평균 3.38개의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가구당 월 평균 보험료는 20만원이 넘는다
문제는 이러한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민영의료보험에 대해 일반적인 보험상품에 대한 규제외에 어떠한 규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보험의 천국인 미국조차도 민영의료보험에 대해서는 그 공공성을 인정하여 지급률이나 상품표준화를 규정하고 있다.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이 민영의료보험상품의 형태나 지급률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규제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미 FTA 협정은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간보험상품에 대한 허용을 포괄적 허용(네거티브 리스트)방식으로 규정한다. 민영의료보험상품에 대한 규제가 애초에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긴보험상품에 대해서는 기존의 신고제조차 운영하지 않게됨으로서 새로운 상품의 출시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할 수 없다. (협정문 13.9)
현재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은 지급률(보험료대비 보험지급액)규제가 없고, 상품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으며, 고 위험군에 대한 보험가입거절이나 보험금 지급거절 사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보험가입시 정보제공이나 보험상품에 대한 비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이를 규정하는 민영의료보험법을 제정하여 국민건강보험의 보충적 역할에 충실하도록 해야할 시점이며 이에 대한 법률제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의도 존재한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면 현재 무규제상태에 놓여있는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 질 것이며 이는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발전에 재앙적 요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2)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용 고착화
한미 FTA 협정이 서명된 후 3년이 지나 3 곳의 경제자유구역은 다시 3곳이 늘어 전국적으로 6곳이 되어있고 대구, 부산 및 인천, 경기도 화성 및 평택 등의 수도권을 포함하여 사실상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설립은 그 설립의 제한이 크게 완화되어 국내영리병원화가 진행중이며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특별자치법에 의해 현재 국내영리병원 허용 내용이 포함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한미 FTA 협정이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의 영리병원과 약국 등에 대한 규제조처는 되돌릴 수가 없다. 한번 개방하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던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한미 FTA에서 예외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지만 실제로 한국의 보건의료제도의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인 영리법인 병원의 규제가 한미 FTA로 되돌릴 수 없게되며 추후 경제자유구역이 추가로 지정되거나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에서 규제가 완화되면 이로인한 영리병원 허용은 자동적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내용이 된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그 비용이 높고 고용인원이 적을 분만 아니라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며 고소득을 유발하는 서비스만 선택적으로 제공하여 응급실 등의 필수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는 점은 여러 논자들이 자세히 지적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3)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또는 ‘복지국가’가 가능할까?
현재 민영의료보험의 규모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민영의료보험의 거대한 규모는 한국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에 기인하는 바 크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 한국의 민영의료보험상품의 시장은 크게 줄어든다.
현재 한국에서는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고 여야의 주요한 차기대권 주자들이 복지국가를 자신의 정치공약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이 통과되었을 경우 건강보험보장성 강화가 과연 가능할까?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민영의료보험시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암에 대한 보장성을 대폭강화하면 암 보험 시장이, 중대상병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면 이른바 중대상병 보험(CI 보험)의 시장이 대폭 축소된다. 이 경우 한미 FTA 협정에 따르면 보험회사들은 이러한 시장 축소를 정부의 간접수용으로 간주하여 투자자-정부제소 제도에 호소하여 보장성 강화를 막고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보건이나 환경관련 내용은 미래유보 조항으로 제외되어 있으므로 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미 FTA 협정문은 “대한민국은 (중략) 다음의 서비스가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설립 또는 유지되는 사회서비스인 범위내에서 그 서비스의 제공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할 권리를 유보한다. : 소득보장 또는 보험 사회보장 또는 보험, 사회복지, 공공훈련, 보건, 그리고 보육”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맺은 다른 모든 FTA에서도 이러한 규정은 존재하지만 미국이 FTA를 맺은 다른 나라에서 보건이나 사회보장, 환경에 대한 사회정책에서의 문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뉴 브런즈윅을 보자. 뉴 브런즈윅 의회는 2004년 4월 공적 자동차 보험을 도입할 것을 지자체 정부에 권고했다. 더 효율적이고 보험료를 220 달러에서 993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제도는 이미 브리티쉬 콜럼비아나 사스캐치완, 마니토바 등에서 시행중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온타리오와 마찬가지로 투자자 국가제소제에 의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포기되었다. 사적 기업의 시장지분을 정부가 잠식하는 것은 공공기관에 의한 간접수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래유보로 되어있는 보건의료관련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투자자-정부제소제의 대상이 된다. (현재유보조치에 대해서는 역진방지조치에 해당한다. 민간의료보험의 규제는 역진방지조항에 해당한다). 따라서 민영의료보험의 시장지분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할 것을 각오해야만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다. 아무리 미래유보로 규정해도 실제로는 투자자-정부제소 제도에 의해 현재 이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진다.
한국의 건강보험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예상이다. SSM 규제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있었으나 한미 FTA보다 훨씬 약한 한 EU FTA 위반이라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한 마디에 의해 이 여여합의는 무산되었다. 실제 위반일지 아닐지는 소송을 해보아야 알 수도 있으나 투자자-정부 제소제에 의한 소송의 위협만으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은 위축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된다. 이는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모든 사회보험과 사회정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복지국가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공약도 모두 공문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 의약품 및 의료기기 규제 불가능
한미 FTA는 한국의 지금까지의 의약품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이다.
첫째 한미 FTA 협정이 통과되면 특허의약품의 가격을 높이는 정책이 중심이 된다.
둘째 한미 FTA 협정은 투명성을 명목으로 제약회사에 대한 규제조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경제성 평가나 포지티브 리스트 등 약값을 절감하기 위한 여러 정책은 백지화 될 것이다.
셋째 한미 FTA는 의약품 특허 및 자료독점권을 크게 강화하고 있어 의약품 가격을 크게 상승시킬 것이다.
가) “경쟁적 시장도출가격”, 즉 ‘선진국 평균약값’ 도입의 명문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적으로 의약품의 보험 적용과 가격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한 두번째 자유무역 협정에 해당한다. 첫 번째 사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 규정 때문에 호주의 의약품제도(PBS)가 특허의약품 가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 약값절감방안을 마련하면서 폐기했던 <혁신적 의약품에 대한 선진 7개국 평균약가> 지불규정이 한미 FTA협정으로 다시 약가제도에 포함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생겼다. “경쟁적 시장 도출가격(competitive market-derived price)”이라는 말이 협정문에 포함된 것이 그것인데 이 경쟁적 시장 도출가격은 선진국 시장의 평균가격을 뜻하므로 악명높은 선진7개국 평균약가의 부활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부는 경쟁적 시장 도출가격과 정부가 결정하는 가격을 병행표기 하였으므로 한국정부는 약값을 정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이와 유사하게 두가지 약값결정 근거를 병렬적으로 나열한 협정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 약가결정과정이 이원화되어 특허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결정이 별도로 산정되게 되어 약가 상승이 유발되었다.
나) 모든 특허의약품의 혁신성 인정
한미 FTA 협정은 협정문 5.2 “혁신에의 접근”의 장에서 특허의약품의 적절한 가치를 인정한다고만 규정함으로서 모든 특허의약품이 혁신성을 가졌음을 인정하였다. 이는 미-호주 FTA에서 “혁신적 의약품에 대한 시의성 있고 조달가능한 접근을 촉진한다”고 규정하여 호주 정부가 혁신적 의약품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모든 특허의약품을 혁신성을 가지는 것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독소 규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혁신성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특허의약품은 연구개발비용을 인정하여 선진국 평균약값으로 규정하고 복제의약품은 별도로 약값을 규정하게 되는 2원적 의약품 가격구조를 형성하게 될 근거가 될 것이다. 이는 당연히 약가 상승을 의미한다.
다) 보험등재 및 약제비 결정과정에 대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개입 허용
협정문 5.3 “투명성}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 및 국내제약회사가 의약품의 보험등재과정과 약가결정과정의 모든 단계에 개입하는 것을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약품 및 의료기기 분야에서 양국간 위원회 설치를 한미 FTA 협정에서 명문화 하였다. 이 위원회는 한국의 의약품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로서 작동할 것이다. 지금까지 근거가 없었던 임의기구인 한미 의약품 워킹그룹이 가졌던 영향력도 매우 커서 이태복 전 복지부장관이 미국의 영향력이 커서 장관 역할 수행하지 못했다는 퇴임사를 남길 정도였는데 양국간 위원회가 한미 FTA 협정으로 공식적으로 근거를 가지게 되면 그 권한은 매우 커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 협정은 부속서한을 통해 별도의 독립적 이의제기기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한다. 미-호주 FTA에는 “독립적 검토절차를 둔다”라고만 규정되어 있으나 한미 FTA에는 독립적 이의제기를 위한 별도의 ‘기구’(independent review body)를 규정함으로서 제약회사의 하고 이 기구를 정부와 별도로 둘 것을 상세히 규정함으로서 제약회사가 정부의 결정에 대해 번복할 수 있는 상시적 기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원심번복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기구의 존재가 한미 FTA 협정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이 이의제기기구는 정부의 약값결정이나 보험적용 결정과정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기구가 될 것이다. 물론 이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제약회사가 지속적인 개입을 할 권한과 거부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라) 의료기기분야의 포함
한미 FTA는 위에 지적한 모든 내용을 의료기기까지 적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내용은 한미 FTA가 최초이고 이에 따라 한 EU FTA에서도 의료기기가 FTA 협정에 포함되었다.
의료기기 분야는 현재 의약품 분야처럼 건강보험재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난청수술에 쓰이는 인공와우관은 2천만원이 넘는다. 또한 CT. MRI 등의 첨단 의료기기 등은 건강보험이 적용될 때 그 가격을 의료기기의 가격에 준하여 책정하게 된다.
최근 PET/CT나 다빈치 로봇시술기기 등의 첨단 의료기기가 전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빨리 도입되고 있다. 다빈치 로봇수술 기기는 현재 아시아 전체에 32대인데 한국에만 29대가 있다. 의료기기 도입이나 설치에 대한 규제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더라도 의료비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의료기기에 대한 의료기기 회사들의 정부결정과정의 개입은 건강보험 적용과 그 수가책정에 영향을 미쳐 의료비 상승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의료기기가 발전할수록 의료기기를 한미 FTA 협정에 포함시킨 이 조항의 악영향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마) 의약품 허가-특허연계 등 특허강화 및 자료독점권 강화
한미 FTA 협정 중 의약품 관련조항에서는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 불릴 만한 것은 다름아닌 허가-특허연계조항이다. 이 부분은 지재권 분야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몇가지 점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첫째 이 조항은 미국 민주당과 부시 행정부가 2007년 5월에 합의한 “신통상정책(New Trade Policy for America)”에서 독소조항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맺은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등에서 이 조항은 삭제된 바 있다. 따라서 한미 FTA 협정에 이 조항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둘째 이 허가특허연계 조항은 한 EU FTA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한 EU FTA의 미래 최혜국대우조항에 의해 유럽의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 EU FTA에는 이 허가특허 연계조항이 ‘EC law'와 상충된다는 지적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EU 집행위원회는 한 EU FTA와 연관하여 ‘허가특허 연계조항이 EC law와 상충되지 않은가’라는 EU 의회에서의 질의에 “다른 국가가 FTA로 인해 얻는 이익을 EU가 포기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즉 한미 FTA에서의 허가특허 연게조항은 한 EU FTA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제약회사에도 적용될 것이고 이는 한미, 한 EU FTA의 상호 악화작용의 하나의 예다.
(자료독점권 부문은 생략)
한미 FTA 협정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의 비영리법인병원 제도 등의 의료공급체계, 건강보험제도와 민영의료보험규제, 의약품 및 의료기기 관련 제도 등 전반에 걸친 계산하기 힘든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의 보건의료제도와 건강보험제도는 한미 FTA로 인해 그 발전가능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협회(PhRMA)와 미국보험협회(AIA, ACLI)는 한미 FTA 협정에 전적인 환영과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빠짐 없이 보험회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도 한미 FTA 협정에 찬성을 하고 있다. 한미 FTA 협정이 누구를 위한 협정인가를 물어야 한다.
2. 한미 FTA와 사회정책
한미 FTA는 보건의료정책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보건의료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과 똑같이 마찬가지로 사회서비스의 모든 분야에 관련된다. 이는 공기업이나 금융서비스, 교육, 환경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한미 FTA가 단지 관세장벽을 허무는 협정이 아님은 이미 4대 선결조건에서 명확해졌다. 4대 선결조건 즉 미국산 쇠고기 개방, 자동차 환경관련 및 특소세 관련 세제 개편, 스크린 쿼터 축소, 약값절감정책 도입 불가 등은 관세장벽과 무관한 것이다. 이것들은 각각 검역정책, 환경 및 보건정책, 문화정책 등으로 공공성을 지키려는 사회정책들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애초에 시작도 되기 전부터 이러한 사회정책을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하여 사전조건으로 내걸었고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이를 관철하였다.
사회정책은 기본적으로 사적 이익이나 경제적 이익을 사회공익적 목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이러한 사적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제한하는 모든 법률과 제도를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보는 협정이다. 이를 위한 강력한 제도가 바로 한미 FTA 협정의 서비스의 포괄적 개방, 역진방지(래칫), 투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 및 투자자-정부 제소 제도이다.
1) 서비스분야 포괄적 개방
한미 FTA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나 현 이명박 정부나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강조하면서 내세웠던 것이 바로 이 서비스 상품의 포괄적 허용(네거티브 리스트)이다. 현재 협정문에 유보조항으로 명문화된 내용 이외에는 새로운 상품규제를 할 수 없게 한 조항이 이것이다.
미국 정부는 의회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에 대한 수출이 97억~109억 달러 정도 증가될 것이라고 밝혔고 또 “이와는 별도로” 같은 규모 정도의 서비스 상품 수출 증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노리는 바는 상품수출만이 아니라 서비스부문의 개방을 통한 이익이다. 이는 교육이나 의료, 공기업 민영화를 노리고 있는 한국의 기업에게도 이러한 서비스 분야의 민영화가 커다란 이득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미 FTA에서 말하는 “서비스”는 사회정책의 모든 분야를 말한다. 철도, 가스, 전기, 물, 교육 및 의료, 교도소 및 국방, 연금, 부동산 등 모든 분야가 서비스 상품이다. 흔히 상상하기 힘든 분야도 서비스분야로 포함되는데 호주의 경우 혈액공급 ‘서비스’를 개방하였다가 미국이 이 부분을 독점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 기업의 운영에 문제가 생겨 이에 따른 혈액공급 부족사태로 큰 사회문제가 발생한 바도 있다.
한미 FTA 협정에 규정되지 않은 모든 서비스는 개방되며 더 이상 규제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금융서비스의 경우 새로운 규제를 할 수 없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직접적 계기가 된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금융상품에 대한 새로운 규제는 한미 FTA 협정 위반이다. 앞서 말한 민영의료보험상품에 대한 새로운 규제도 한미 FTA 협정 위반이 된다. 연금상품에 대한 소비자 보호조치를 새롭게 취하려 해도 이른바 ‘건전성 조치’외에는 더 취할 방법이 없게 된다. 심지어 그린벨트와 같은 부동산관련 규제조차 새로운 규제조치를 실행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이 이러한 예를 보여준다.
2) 역진방지
래칫조항으로 불리는 조항으로서 한번 개방된 조치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규정이 한미 FTA의 핵심적인 문제중 하나다. (이른바 ‘낙장불입조항’). 현재유보조항에 열거된 내용들은 이러한 개방조처를 되돌릴 수가 없게된다. 앞에서 언급한 경제자유구역내의 영리병원 허용이라든지 교육서비스에서의 외국인학교 설립규정의 내용 등은 되돌릴 수 없다. 이는 한미 FTA 위반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현재에도 매우 많은데 이미 양허된 분야들 예를 들어 하수처리관련 내용이나 여러 환경서비스들, 가스나 전기분야의 개방된 분야들이나 철도분야의 개방된 분야들 중 현재유보조항에 해당되는 부분들은 다시 이를 규제하거나 재국유화 할 수 없다.
3) 투자에 대한 매우 넓은 규정과 투자자 정부 제소 제도
한미 FTA에서는 다른 FTA와 달리 투자를 매우 폭넓게 규정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한미 FTA 11.28에는 기업의 민영화관련 사업권을 '투자 계약'이라는 내용으로 독립적으로 포함시킨 바 있다. 다른 FTA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한미 FTA가 보호해야할 사업권을 규정한다.
“투자자가 전력 생산과 배전, 상하수도 및 통신과 같이 국가를 대신하여 대중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권리, 또는 대중이 이용하는 도로, 교통, 운하의 건설과 같은 기반 시설 사업권"
간단히 말하면 공공 서비스 사업을 한번 민영화하면 이를 투자의 내용으로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민영화된 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물론 공기업이 앞으로 민영화 할 부분을 재국유화하려 할 경우 미래유보조항에 포함되어 있는 부문의 경우 가능은 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국유화조치는 투자자-정부 제소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한미 FTA가 지적하고 있듯이 전기, 상하수도, 통신과 그 외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도로, 교통, 운하 등 모든 공공서비스 일반이다.
여기에 한미 FTA는 투자의 내용에 ‘시장점유율’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을 강화하여 연금상품의 시장지분이 삭감되면 투자자 정부제소대상이 되며 건강보험을 강화하여 민영의료보험의 시장이 잠식되면 이 또한 투자자-정부 제소대상이 된다. 한마디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사회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 외에 다시 공공성을 강화할 길이 없어지거나 지극히 어렵게 되는 것이다. FTA를 왜 사유화(privatization) 또는 민영화나 상업화로 가는 편도차편(one way ticket)이라고 부르는가가 여기에서 설명이 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 투자자는 단지 미국기업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SSM 규제가 한 EU FTA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이 단지 영국의 테스코만이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재벌인 것에서 보이듯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려워 지는 것은 미국기업에 대한 규제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기업도 마찬가지다.
또한 한국기업의 경우 웬만한 대기업은 외국인 투자자가 상당수 지분을 차지한다. 결국 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미국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도 해당한다. 한국 기업들이 한미 FTA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수출을 일부 늘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기업의 권력강화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자본에게는 최대한의 권력을 주고 한국 국민에게는 사회정책의 공공적 강화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따라서 사회적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 한미 FTA다. 사익을 제한하고 공익을 강화하는 것을 그 요체로 하는 사회정책의 시행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미 FTA에는 사회정책의 집행을 방해하는 직접적 요소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 다른 국가와 무역협정을 맺었을 때 이를 미국 측에도 적용해야 하는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도 있어서 한 EU FTA의 경우 조금이라도 미구에 유리한 조항이 있으면 이를 한미 FTA에도 곧바로 적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금융 세이프가드를 엄격한 전제조건을 붙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점, 공기업 상업적 운영 원칙 도입, 지적재산권에 대한 대폭 강화,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규제완화 등 독소 조항 몇 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협정 전체가 재앙인 협정이 바로 한미 FTA다.
한미 FTA는 한국사회의 현재과제인 공공성 추구를 사실상 어렵게 만드는 협정이다. 복지국가로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다. 한미 FTA 협정에서 말하는 무역장벽은 바로 사회정책과 민주주의며 따라서 한미 FTA 협정의 폐기가 한국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