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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주의]강남역 사건으로 인한 남혐,여혐에 대한 개인적 생각(반말주의)
게시물ID : freeboard_13175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신성
추천 : 3
조회수 : 35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21 13:42:51
(매우 길어요. 그냥 나오는대로 쓰다보니...) + 반말주의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음...

다들 정말 쓸데없는데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남자를 혐오하는 측도 그렇고, 여자를 혐오하는 측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젼나 짱짱맨이다! 그러니까 너네 다 바보! 라고 하는 그런 멍청이는 아니니 오해하지말길 바란다. (애초에 짱짱맨도 아님... ㅜㅜ)

남성들 중에서도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듯, 여성들 중에서도 남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 

이걸 보는 그들은 '우린 니네랑 다르거든여 빼애애에엨', '니네가 먼저 시작해서그런거거든여 뺴에에에엨'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반대쪽도 마찬가지겠지... 라는 생각은 절대 못할것이다.

결국 성적 혐오라는것은 여자나 남자나 모두 비슷한 이유로 시작한것이다. 

사실 남자를 혐오하거나 여자를 혐오하는 사람들 또한 은연중에 알고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쓸모없는짓임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왜 하는걸까? 



미워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될 경우 그것을 회피하려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경우다.

그러나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기자신이 스스로에게 비난하려 할 때, 대다수는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방어하려 든다.

그렇다. 탓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만들어내서라도 미워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자기자신을 지킬 수 있고 보호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자기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특이한 점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좀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과연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을 느끼면서

바로 눈 앞의 자기자신의 자아를 지키면서 느끼는 안도감, 평안함을 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성적인 혐오들은 이러한 이유로써 생겨났다고 본다.

사회적 불안, 경제적 불안 등의 많은 요인들로부터

자기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비롯 거짓되고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성적 혐오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남성 우월주의의 사회가 (고대를 강조한 이유가 밑에 조금 있어요 오해 ㄴㄴ)

현대로 넘어오면서 여성주의의 대두에 의해 여성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남성들이 증가했으며

변화하는 사회적 양상에서 과거,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지만 

여성보다 우위에 설 수 없게 되자, 열등감,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이것이 여성에 대한 혐오, 즉 현대의 모든 성적 혐오의 시발점이 되었다 라고 본다.



그리고 성적 혐오,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이러한 점을 알고있으면 이해하는데에 좀 더 좋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여

빈약한 정보력과 필력이지만 열심히 써 보았다.


1. 왜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가?

2. 여성의 인권이 신장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인가? 

3. 부계사회와 모계사회, 과거의 인류는 어떠하였는가? 가부장제는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가?



1번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결국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남성의 상대적 조건 (신체적 능력 등) 이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여성보다 큰 기여를 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법제화되지 않은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는 남성이 수행하기 용이하며

여성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성이 수행하는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 여자들도...)

의무가 동반되어야 권리 또한 따라온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번 또한 다들 잘 아시다시피...

제 1차 세계대전이다.

1차세계대전은 국가간의 전쟁이 '국가총력전' 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진행되면서 

국가의 모든 시스템은 전쟁을 위해 돌아가게 되며, 1명의 남자라도 전선으로 보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남성들의 빈 자리를 모두 여성들이 채우게 되면서 

비로소 여성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남성이 하는 일은 여성도 할 수 있음) 길이 열렸으며

그 능력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 지위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성인권의 신장에 매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http://blog.daum.net/nebelstern1967/1855 제1차 세계대전 - 여성들이 만든 중요한 생산품 Top 10

http://blog.daum.net/nebelstern1967/1855 제1차 세계대전 - 우리가 몰랐던 여성의 8가지 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러시아의 10월 혁명 (볼셰비키 혁명) 또한 여성인권, 특히 정치적 권리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당시 러시아의 혁명 정부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완전히 동등한 정치권을 주었으며

가정 외의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인 장치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여성참정권은 1차세계대전이 계기가 아닌

프랑스 혁명 당시 '니콜라 드 콩도르세'와 '올랭프 드 구주' 등이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참고로 니콜라 드 콩도르세는 남자다.)

이후, 1918년 영국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1920년 미국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다. 

그저 널리 확산될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이다.




3번은 음... 많이 길다... 그냥 개인적으로 알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 연관있지는 않다)

이것 또한 다들 들어보셨을 내용인데

현대 사회의 대부분은 부계사회지만, 모계사회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모계사회란 

부계사회와 반대되게 모계 혈족이 중심이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모계사회 ≠ 모권제 사회 라는 것이다.

애초에 모계사회와 모권제 는 다른 말이다. ( 모권제 = 가모장제 )

그리고 특이하게도, 모계사회는 모계 혈통의 남성이 높은 권한을 가졌다고 한다. 

즉, 부권제 사회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잠시 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과거 신석기 시대는 모계사회였다는 말이 있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은 가장 중요한 자본이었고

원시사회에서는 난혼에 가까울 정도로 현대 사회보다 더욱 자유롭고 더욱 고도의... 성적인 관계가 이루어졌기에

모계사회가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버지를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아있는 수렵채집 민족인 하드자베 족, 원시사회를 유지하고있는 아프리카의 부시먼 족, 피그미 족은 물론이고

아메리카 인디언들 또한 부계사회를 유지하고있다.

특히 인디언들은 빙하시대에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빙하시대가 종결된 이후 줄곧 격리된 채로 독자적 사회발전을 계속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과거는 부계사회였다는 설과, 부계-모계가 공존하는 쌍계사회였다는 설 또한 있다.

뭐... 원시 모계사회설 자체가 어떤 학자가 가볍게 던진... 말로부터 시작한거라... 현재는 학문적으로 폐기된 상태이다.

여하튼, 이런 다양한 설이 있으나... 원시사회에서도 부계사회가 많았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사유재산의 등장으로 인해 가부장제가 확립되었다는 설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84년 자신의 저서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에서 서술한 것으로 정확한 고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엥겔스는 사회주의 철학자,경제학자로써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중의 한 명이다.)




인류학적 증거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사 수렵채집사회들은 비교적 평등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농업과 가축화가 진행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권제 구조는 발달하지 않았으며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기원전 4000년경 '아버지' 라는 개념이 싹텃고 이것이 부권제 확산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리학적 기록으로는 기후변화에 의한 5.9천년 사건 ( 기원전 3900년경 일어난 대규모 사막화 사건을 말한다 )

에 의해 사하라, 아라비아, 중앙 아시아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으며 이로인한 식량 확보를 위해 

호전적, 부권적인 구조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부권제 구조가 확립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 또는 부권제가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 등에 대해서는 

역사학, 고고학적인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명확히 발견되는 것은 

기원전 32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남성들은 여성의 생식능력을 제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소외시켰으며

히브리인의 출현과 함께 '인간-신의 약속에서도 여성은 소외되었다.'  고 한다. (초기 청동기 이전, 즉 신석기 말 이다)


중국의 경우 신석기 시대의 룽산 문화 (기원전 3000년 ~ 2000년) 대에 부권제 사회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권제의 확립은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문명에도 그대로 전파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남성에 비해 도덕적, 지적,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았다.

이후,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이집트에까지 전파되고 (그 이전의 이집트는 여성이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후에 쭉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모권제는... 역사적,고고학적 실증이 부하여 모권제 사회는 없었다는 것이 주류 인류학계의 견해이다.

신화적으로는 아마조네스가 있고

역사적으로는 사르마티아 인들의 유적 중에 무장을 한 여성의 무덤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스키타이-사르마티아의 '전사들의 무덤' 의 20%는 여성용 전투 복장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하며.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 신화 아마조네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권제 사회였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학자들은 모권사회 성립의 실존 여부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 부정적이며 

모권제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추세에 이르렀다.



이렇듯 인류학적으로는 모권제가 사실상 폐지 단계에 가깝지만

페미니즘에서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대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한 운동양상을 보면 평등주의를 넘어 모권제를 주장하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어 다시금 남혐, 여혐의 성적 혐오가 다시금 대두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남자를 혐오하는 측에서 내건 슬로건인 '女자라서 죽었다.男자라서 살아남았다.' 라던지...

남성이 범죄율이 더 높다는 등의 말을 하는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저 말에는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피해자의 남자친구와 가족들에 대한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는 문구이자 

특정 사건을 기회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려는 이해타산적인 의도가 다분히 보이면서 동시에...


성별만을 강조하면서 현대에 사라져가고 있는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의도적으로 은연하게 강조하면서

남자라서 그랬다는 식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여자라면 안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여성중심적이고 여성우월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권적 주장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판단된다.




세계적으로도 페미니즘 운동은 양성평등주의의 성격 보다는 여성 우선, 여성 상위의 색채를 띄어가고 있는 과격파의 성향을 띄면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하며 양성 평등주의에 기반한 운동을 다시금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돋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운동이 생각보다 빠르게 과격한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무는 우선시 되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권리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의무와 권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본질적으로 그 뿌리는 같다.

진정으로 양성 평등을 생각한다면, 의무와 권리는 동반됨을 인지하고

권리를 획득함과 동시에 의무의 수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양성 평등주의를 제창하는 여성운동가들은

과거,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제,남성 우월주의는 왜 발생고, 왜 유지가 되었으며, 당시에는 그게 왜 필요했고

과거와 현대는 무엇이 다른지, 지금은 왜 양성이 평등해야 하는지에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프랑스 혁명 등에 기초한 자유 · 평등 · 박애 를 빼고 말이다.

왜 빼느냐 하면,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으로 말하기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조금이라도 와닿을 수 있는 좀 더 이해타산적인 접근이 설득에는 용이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하다면 좀 더 빠르게 양성 평등주의가 확산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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