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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우가 될 때가 있다.-어린왕자.
게시물ID : readers_131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잣황잣자연산
추천 : 4
조회수 : 2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26 01:58:38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참 많이 고개를 끄덕인것은 보아뱀 그림도, 어린왕자가 돌아다닌 별이야기도 아니라 여우의 소박한 고백이었다.
 그 넓은 사막에서 끝 없이 표류하며 고독 속에 살던 여우는 어린왕자를 발견한다. 여우는 그랬을 것이다. 
어린왕자라는 존재를 원했다기보다는 단지, 간절히 그저 누군가를 원했을 것이다. 나의 야이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 작가는 던져준다. 군중 속의 고독. 
 사실 사막이란 그 어떤 곳에도 존재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속한 집단, 또는 번화한 거리. 그 어떤 곳이든 본인의 마음에 따라 사막이 되어버리곤 한다. 끝없이 삭막하며 혹여 입속에 모래가 들어갈까봐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텁텁한 그런 공간. 내 마음이 만들어낸 어둠보다 더 짙은 고독의 공간. 혹은, 항상 사막속에 있으면서 그 사막을 모르고있다 별안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오래있다보면 그저 누군가를 바라게 될 때가 있다. 여우는 그렇게 어린왕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길들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나에게만 특별한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누구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기만을 바란 철없고 나약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우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 
 가끔 살아가면서 이 곳이 끝없이 펼쳐진 백열의 사막이라고 느껴질 때면 나도 여우가 될 때가 있다. 그저 나를 특별하게 불러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 무채색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와 빛깔이 되고 나비가 되고 꽃이 되어줄 사람, 그리고 나를 그렇게 대해 줄 사람. 그저 안기어 어리광을 부려도 나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감싸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를 다잡기 위해 말 없이 떠나버린 어린왕자를 생각해본다. 장미를 이야기하던 여우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리도 나와 닮았을까. 
 장미를 말하는 여우는 그랬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차오르고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채념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어린왕자와 장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보다는 무기력함이 더욱 빨리 찾아왔을 것이다. 
 지금 이 이야기들을 너에게 하는 이유는 그저 아무나 찾아왔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나를 낮추고 폄하하면서 이 슬픔을 잊기 위함이지만 그럼에도 이 넓은 사막에서 오로지 너만 보였다는 나의 비겁한 변명을 하기 위해서이다. 여우는 그랬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말라비틀어진 이 공간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이다. 바로 어린왕자. 바로 너. 그래서 다가갔을 것이다. 지치고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지만 간절히 기다려온 그 오아시스를 향해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격하게 달려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장미를 말하는 어린왕자의 눈을 보고 그 오아시스가 오아시스가 아닌 신기루 였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서야 하기 때문에 여우는 그 누구라도 괜찮았던 것 처럼 멀어졌을 것이다. 마치 단 한번도 목 마른적이 없었던 듯 아무렇지 않게 탐스러운 신기루를 지나쳐야 했을 것이다. 
 사랑을 말하기가 때로는 부끄럽고 없어보이고 추해보일 때가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한 없이 초라해 스스로 입을 다물어 버릴 때가있다. 그리고 뱉었던 말들이 너무 후회스러워 잠 못 이룰 때가있다. 때로는 아프려고 사랑하는 것이라 하지만 왜 사랑이 아파야 하는지 반문하고 또 아프지 않으려고 사랑하는 것이라 외쳐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죽어가는 여우와 장미꽃을 생각한다. 아무리 다가가 손을 내밀어도 닿지 못한 어린왕자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장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왕자에게 매달리려 했다. 
 그러니 너는 말 없이 돌아가 이 별에서의 기억을 지워도 좋다. 어차피 길들임이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단지, 가끔 그 장미와 시리도록 행복할 때 내가 그 행복을 실마리를 주었다는걸 기억해준다면, 너에게 딱 그정도만 특별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시간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툴러 더욱 상처뿐이던 내 사랑아. 흔적조차 없는 너의 길을 나는 그저 바라보며 한 동안은 이 사막에 갇혀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은 가만히 이 자리에서 녹을 듯 뜨거운 낮과 얼어서 조각이 날 정도로 차가운 밤을 버티며 서 있으려고한다.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더라도 그게 신기루 일 것 같아 내 발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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