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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게시물ID : freeboard_13177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감탄사연발
추천 : 0
조회수 : 2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21 18: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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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어머니 앞에서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감당키 힘든 불행 앞에 그 잔인함은 곱절이 된다. 현재를 극복할 힘이 되면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쫓고 만다. 비겁한 변명 혹은 도피처를 찾는 나약함은 아닐 것이다. 다음 1초가 고통스런 이들에게 미래는 불행한 현재의 반복이기에, 결국 그리고 언제나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두운 골방에 움츠리고 최초의 태아가 그랬듯 조용히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그 과거는 어김없이 현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래서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내 어깨를 감싸는 누군가의 위로가 그저 미안한 이유는 나는 아직 절망하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깨 위의 손을 물리치며 생각한다. 나의 좋았던 순간은 괜찮을까?

 

우리 주변엔 쓰라린 아픔에도 눈물짓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에, 아니 쓰라림으론 표현키 힘든 고통이 넘쳐나기에, 나는 감히 그들의 불행을 위안거리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아직은 괜찮아나는 여전히 내가 가진 행복을 나누지 못했다. 단 한줌의 행복이 새어나갈까 스스로를 끌어안아 본들 흘러넘치는 건 가슴을 휘젓는 부끄러움뿐임에도, 나는 그 부끄러움이 부끄러워 다른 이들의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내게 남은 좋았던 순간이 잔혹함으로 변할까 두려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하지만 아픔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눈을 감을 것인가 끌어안을 것인가. 끝없는 외면의 반복 후 결국 나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군가의 좋았던 순간은 괜찮을까?

 

잔인함은 외면을 통해 자라난다. 길게는 13년의 세월을 오로지 홀로 버텼을 그들에게 온전히 남아있는 좋았던 순간이 있을까. 과거의 추억이 오늘의 눈물로만 남은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야 하는 걸까. 잔인함으로 변한 과거에 그들은 절망했고, 절망은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무너뜨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디 절망한 이들이 가습기에 아이를 잃은 어머니뿐이겠는가. 모든 것이 내 탓이 된 사회에서 절망은 쉽게 뿌리내린다. 그저 밥이라도 빌어먹고 살기위해 눈을 감고 외면하는 부끄러움이 미덕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결국 외면된 개별적 절망들은 뭉쳐진 분노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절망은 쉽게 감춰졌다. 이젠 모두가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좋았던 순간은 괜찮을까?

 

우리 사회의 좋았던 순간이 잔인함으로 변하고 나면 부끄러움 대신 얻은 조그만 위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이 오로지 과거의 유물로써 박제된다면 절망은 사회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 외면 받은 절망이 당신만은 피해갈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결국 흩뿌려진 절망은 사회 전체를 무너뜨린다. 남는 것은 부끄러움 그리고 뻔뻔스런 욕망뿐이다. ‘내 탓내 것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는 살아갈 자신이 없다.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 아픔과 치유가 모두 개인의 문제라면 우린 사회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도 늘 그렇듯 안녕하십니까? 혹여 부끄러움이 넘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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