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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매가 좋다.
게시물ID : boast_170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cetyl-CoA
추천 : 7
조회수 : 94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3/01 19:14:28

34-24-36. 다들 부러워한다는, 서구적인 신체 사이즈.

하지만 낮은 자존감은 이를 필사적으로 가리게 만들었다.


어릴 적 부터 엉덩이가 유달리 컸다. 그리고 언제나 들어온 말들.

엉덩이 빼고 걷지 마라

엉덩이 씰룩거리지 마라

치마 일부러 뒷쪽만 줄이지 마라


항상 밝게 웃고 다녔지만,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말들에 받아치기는 힘들었다.

학창시절 이유없이 왕따를 당할 때, 나를 지칭하는 말은 '그 엉덩이 큰 애' 였다.

물론 엉덩이가 크다는 이유로 따돌림이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아니꼬왔는데, 특징이 엉덩이가 컸다는 것일 뿐.

하지만 당시 내겐 그 말을 필터링 할 자존감이 없었고, 그런 말이 들려올 때마다 점점 더 몸매를 가렸다.

그리고 학원 선생에게 당했던 성추행은, 내가 더 옷을 꽁꽁 싸매 입도록 만들었다.


언제나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절대 튀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엉덩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리는 교복치마를 자꾸만 끌어내리고, 사복을 입을라 치면 펑퍼짐한 바지에 엉덩이를 가리는 긴 옷을 입었다.


대학에 오니 여리여리해 보이는 가디건에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동기들이 너무나 예뻐보였다.

하지만 오랜 운동으로 떡벌어진 어깨는 가디건만 입으면 덩치가 어마어마해 보였고,

플레어스커트는 엉덩이 때문에 자꾸만 들리고 핏도 예쁘지 않아 포기했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은 한계가 있었다. 고무줄 바지와 긴 옷. 그리고 일자로 떨어지는 베이비돌 원피스.

거기다 얼굴이 통통하고 둥글둥글, 순둥순둥한 편이었기에 아마도 다들 '통통한 애'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다 얼마전 현장실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구매한 검은색 스키니.

아무곳에나 들어가 사이즈도 모른채 스판 적당한 옷을 샀기에 허리는 많이 남아 돌았고, 엉덩이부터는 딱 달라붙는 모습이었다.

벨트를 구매해 허리에 착용하자 바지의 허리부분이 쭈글쭈글 해졌다. 그 안에 셔츠를 집어넣자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적나라하게 몸매를 드러내는 옷은 처음이어서, 출근하기 전 거울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목적지에 도착해 겉옷을 벗을때까지 머릿속엔 수많은 걱정들이 스쳐지나갔다.


모두들 내 엉덩이를 보고 흉을 보는 게 아닐까?

엉덩이 때문에 둔해보인다고 하지 않을까?

왜 그런 옷을 입었냐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들은 말들은 당황스러울 만큼 많은 몸매 칭찬이었다. 처음엔 믿지 못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내 엉덩이가 어딜 봐서 예뻐, 무식하게 크지.

하지만 한달가까이 이런 이야기를 듣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바뀌었다.

알고싶지 않아서 줄자를 들이대본 적 없는 허리와 엉덩이 둘레를 측정해봤다. 24, 36이었다.

맞는 바지를 좀 더 사고싶어서 시내에 갔더니 꼭 맞는 옷이 없었다.

그래서 패션 게시판에 글을 썼더니 누군가가 축복받은 것 아니냐고 묻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됐다.


좋은 신체 사이즈를 가졌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주변이었다. 어릴 적 내 주변인들에게 내 몸매는 '비정상' 이었고 놀림감일 뿐이었다.

지금의 주변인들은 내 몸매를 다들 좋게 봐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집밖을 나가기 전에 항상 걱정한다.


정말로 내 몸매를 좋게 봐주는 것일까?

그냥 빈말이 아닐까?

칭찬할 게 없어서 하는 말 아닐까?


어릴적 바닥을 쳐버린 생각은 아직도 올라오려면 한참 멀은 것 같다. 언젠가 올라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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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자랑게로 왔습니다. 오유에서는 엉덩이가 큰것을 자랑이라고, 축복이라고 여기더라구요.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신다면, 제게 몸매칭찬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몸매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집밖을 활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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