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기 문화현상에 대해 살펴보다 재미있는 연구를 하나 발견해서 소개해 봅니다.
아래는 1920년대, 즉 3.1운동 이후 <동아일보>에 소개된 서적광고의 빈도를 나타내는
수치인데요, 흥미롭게도 다소 야릇한 내용의 서적이 많아 보이네요 ^^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3위에 후쿠다준지로(福田順次郞)의 <남녀 성욕과 성교의 신연구>, <도해, 처녀와 부녀자의 생활>(4위)이
보이네요. 또 9위에는 <나체미인사진화집>이 그리고 24위에는 <냠녀 정과 욕의 사십팔수>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4위의 책이 조금 흥미로웠는데요(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사전을 찾아보니 "사십팔수(四十八手)"는 '일본 씨름 기술의 총칭이자, 사람을 조종하는 각종 수단"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의미상으로보면 '모든 방법'이라고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3.1운동 이후라는, 그 엄혹하고 차가웠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음란서적(?) 광고가
판을 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성의 문제는 문화정치기가 허용한 자유의 성격을 암시한다. 식민지인들이 몸의 쾌락에 대한
자각과 정치적 자의식의 거래를 요구받았다고 판단해도 될 대목이다" .
정리해보면, 3.1운동 이후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를 좀 더 개방적이고 활발하게 만들어야 했을
총독부 차원의 공작이 개입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들은 이른바 '근대적 자유'라는 외관을
확보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개방된'성'관념을 들고온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자본과 밀접한 출판시장을 통해 확산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대대적인 광고가 이를 반영한다 할 수 있죠.
이른바 독서 미디어를 통한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찌보면 성을 도구로 또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하는 근대적 출판물이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 시점이 바로 1920년대가 아닌가 합니다.
과연 이 책들을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봤을지는 불가지의 영역이지만 대략 100년전 출판지형에서
"성"의 문제는 다소 흥미로운 풍경이네요.
출처 |
한기형, <지식문화의 변동과 문학장의 재구성>. <<반교어문연구>>38, 반교어문학회,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