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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첫 날.
게시물ID : gomin_16921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치마
추천 : 2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03 01:01:17
퇴사 첫 날. 밤새 잠을 설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왔다. 

 -어젯밤 무수히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여행이라는 건 언제든 어디로든 설레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설사 여건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계획만으로 즐겁지 않았던가?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 자체를 꽤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홍콩, 중국, 일본 항상 꿈꾸던 유럽마저도 설레거나 즐겁지 않은 밤이라니.  

영화는 혼영이 진리라며 혼자 영화관 찾는걸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라 여기지 않았었던가? 
혼자서 콜라를 사고 상영관을 찾아들어가는 것이 어색했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할만치 익숙한 행복인데도 썩 내키지 않았다. 
 왜지, 같이하던 네가 없어서 였을까?-  

시간 맞춰 나와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역시 즐겁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좋아하던 일이 좋지않아졌다는 사실이 그랬다. 
그래도 늘 그랬듯 콜라를 사들고 입장해 자리를 찾아앉고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광고가 나오는 스크린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나는 혼자 보는 영화를 참 좋아하지. 
그리고는 이내 영화에 빠져들었고, 온전히 영화와 나만 존재하는 시공간에 접어들었다.  
두시간쯤 흘렀을까, 엔딩크레딧이 올라오고 모처럼 만끽한 혼자만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건물 밖을 나선 시간은 저녁 여섯시. 거리가 밝아서 웃음이 나왔다. 
길어진 해가 봄이 찾아왔다고 알려주고는 이내 지겠구나. 

그렇게 걷다가 전화가 왜 꺼져있냐며 걱정하는 친구와 선뜻 약속을 잡았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에는 가장 좋아하는 초생달. 
중학생 무렵부터 달을 참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꽉 찬 보름달을 가장 좋아했던 건 왜인지 보름달이 소원을 이뤄줄 것만 같아서. 
언젠가부터 꽤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고 좋아하는 달을 잊고 지냈었다. 
그러다 서른에 접어든 지금은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곤 선명하게 보이는 얄상한 초생달에 이유없이 미소짓곤 하는 건 달이 예뻐서일까 달같은 사람을 만나서일까. 

이제 슬 어둑어둑해지는 연보라색 하늘에 초생달이 선명했다. 아, 기억났다. 입사 첫 날 퇴근길에도 예쁜 초생달이 있었고 설레는 마음을 담아 달에게 이야기했었지. 
그 날의 달과 그 날의 마음이 기억났다. 나의 달은 4년전 응원해준 시작의 끝을 또 한번 위로해준다. 

그래.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사소한 행복에도 감사한 오늘은 나의 달이 말해준 또 다른 시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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