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제목만 있고 내용은 아예 없다. 그래서 이 시는 반미학의 성격을 예지없이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여백으로 이루어진 침묵이 바로 시적 내용인 것이다. 작품 제목에서의 "5분 27초"는 사회현실적인 문맥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일종의 시사적인 인유이다. 5분 27초는 5월 27일, 즉 광주항쟁에 대한 전면적인 유혈진압이 감행된 날을 의미한다. 그래서 5분 27초간의 묵념은 다름 아닌 광주항쟁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묵념인 것이다. 제목만 제시되어 있는 이 시는, 광주의 피흘림으로 시작된 암울한 시대인 1980년대, 그 기나긴 묵념과 침묵의 시대상황을 내용없는 침묵으로 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비평의 줏대와 잣대, 새미, 고현철,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