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만 3500만장 이상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하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최고의 인기 밴드의 하나로 군림했던 건즈 앤 로지스는 Road Crew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더프 맥케이건(Duff 'Rose' McKagan), Hollywood Rose에서 활동하던 액슬로즈(W.Axl Rose)와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adlin)이 드러머 롭 가드너(Rob Gadner), 기타리스트 트레이시 건즈(Tracii Guns)와 의기투합해 1985년에 LA에서 결성한 밴드이다.
처음엔 세 가지의 밴드명을 생각해냈다는데 AIDS, Heads of Amazone, 그리고 Guns N' Roses였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들의 이름에서 따온 Guns N' Roses로 결정되었다. 그후 액슬과의 음악적인 견해차로 탐탁치 않아했던 트레이시 건즈는 밴드를 탈퇴해 독자적으로 L.A. GUNS를 결성했으며, 드러머 롭 가드너도 탈퇴했다. 그러자 더프는 Road Crew에서 같이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슬래쉬(Slash, 그 때는 약관의 나이로 무명이었다), 스티븐 애들러(Steven Adler)를 영입하자고 권유했다.
두 명의 멤버를 맞아들여 완벽한 라인업을 갖춘 이들은 더프가 성사시킨 첫 공연을 위해 시애틀로 떠난다. 그러던 중 이들의 운송수단이었던 자동차가 사막 한 가운데서 고장나자 이들은 악기를 둘러 매고 사막을 무작정 걷다가 간신히 트레일러를 얻어타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작은 공연을 마치고 LA로 돌아온 이들은 방세가 없어 샤워조차 할 수 없는 폐허 같은 곳에서 오직 음악적 열정만으로 생존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들은 밤마다 클럽에서 공연을 펼치며 메이저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Geffen사의 탐 즈타우에게 스카웃되어 본격적인 메이저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다. 마이크 클링크의 프로듀스로 첫 앨범을 녹음하던 와중에 그들은 자체 레이블인 Uzi Suicide에서 EP앨범인 [Live ?!@Like A Suicide]를 10000장 한정 발매해 4주만에 모두 팔아 치웠고, 87년 6월 드디어 이들의 공식 메이저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을 발매했다.
87년 11월엔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오프닝 밴드로 전미 투어를 하게되는데, 괴팍한 두 그룹이 만났으니 가는 곳마다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액슬이 니키 식스(Nikki Sixx: 머틀리 크루의 베이스), 토미 리(Tommy Lee: 머틀리 크루의 드럼)와 격투를 벌여 체포 영장까지 받은 적도 있고, 이지 스트래들린에게 위협을 가했던 빈스 닐(Vince Neil:머틀리 크루 보컬)과의 격투를 신청한 뒤 격투장소(LA의 한 레코드점)에 액슬이 총으로 무장한 보디가드를 데리고 나와 머틀리 크루 측이 도망가는 사건도 있었다.
Aerosmith, Alice cooper, Motley Crue등 대형 밴드들의 오프닝밴드로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진 이들의 데뷔 앨범은 발매 50주 만에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후 본 조비(Bon Jovi)의 [New Jersey], 데프 레파드(Def Leppard)의 [Hysteria], 유투(U2)의 [Rattle And Hum] 등과 함께 치열한 앨범차트 1위 다툼을 벌일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그들과 최고의 인기 밴드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무려 147주간이나 빌보드 차트에 머문 이 앨범은 현재까지 미국서만 1500만장이 팔려 나가며 역대 데뷔 앨범 순위 4위(1위는 세 팀, 1600만장을 넘어선 Alanis Morissette, Boston, Hootie & The Blowfish)에 올라 있다. 그 외에도 싱글로 발매된 'Welcome To The Jungle', 'Paradise City', 'Sweet Child O'mine'이 싱글차트에서 각각 7, 5, 1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88년 이들은 Megadeth, KISS, Iron Maiden 등의 밴드들과 함께 영국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들은 Helloween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 'It's So Easy'를 불렀는데 흥분한 관중들이 무대 위로 난입하는 바람에 세 시간 동안 공연이 중단되었다. 이 공연에서 두 명이 죽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Paradise City'의 뮤직비디오에는 이 공연 장면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해 "MTV 어워즈"에서 'Best New Artist'에 선정되었고, 'Welcome To The Jungle'은 비디오상을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예고했다.
이들은 여세를 몰아 88년 12월에 클럽 시절의 라이브 4곡과 어쿠스틱 버전 4곡이 수록 된 [Lies]를 발표해 차트 2위에 올려놓으며 데뷔앨범과 함께 두 장이 앨범차트 5위안에 머무는 진기록(그러나 단 한 주간만)을 세우게 되었다. 국내 커피 광고에도 삽입 된 싱글 'Patience'는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으며 앨범은 500만장 이상이 팔렸다. 90년에는 두 장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는데 [Days Of Sunder]와 [Nobody's Child]에서 각각 'Knockin' On Heaven's Door(밥 딜런의 커버곡)'와 'Civil War'를 발표했다. [Lies] 앨범 발표 후 한동안 개인적인 활동을 한 슬래쉬는 이기 팝, 레니 크래비츠, 밥 딜런, 마이클 잭슨등의 아티스트의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스티븐 애들러가 약물 문제로 팀에서 해고당하고 컬트(Cult)의 드러머였던 맷 소럼이 영입되고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Dizzy Reed)도 영입되어 6인조로 팀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You Could Be Mine'을 [터미네이터 2]에 삽입하면서 새 앨범에 대한 팬들의 기대를 한층 높게 한 후 드디어 91년 10월 17일 [Use Your illusion 1,2]를 발표했다.
더블앨범이 아닌 개개의 앨범으로 2장을 같은 날 발매한 최초의 '정규'앨범(라이브까지 치면 Aerosmith의 [Classic Live 1, 2]도 있고...)이기도 한 이 앨범은 발표된 지 2시간만에 무려 50만장이 팔려 나가며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 2로 데뷔하게 되었다. 원래 총 36곡을 만들었던 GNR은 모든 곡을 4CD 박스로 발매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회사측에서는 가격이 너무 비싸질 것을 우려하여 30곡을 두 장의 CD에 나눠 발매한 후 나머지 곡들은 추후에 싱글이나 EP형태로 발매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Use Your Illusion 1, 2]에는 이들 최고의 곡으로서 익히 알려진 'November Rain'과 파워 발라드 'Don't Cry', 각각 폴 매카트니, 밥 딜런의 곡인 'Live And Let Die', 'Knockin' On Heaven's Door', 'November Rain'에 필적하는 대곡이자 슬래쉬의 기타가 일품인 'Estranged', [터미네이터 2]에 삽입되었던 'You Could Be Mine', 'Civil War'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음악적으로 상당히 호평을 받았는데, 각종 잡지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앨범 50'등에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한편 Use Your Illusion 1의 국내 라이센스 판은 두곡이 삭제되었다).
각각 700만장씩의 판매고를 올리며 또 한 번 전세계를 떠들석하게 한 이들은 투어를 시작하려던 차에 기타리스트 이지의 탈퇴를 맞이했다. 음악적 견해 차이가 공식 이유였다. 액슬은 15년 친구인 이지가 탈퇴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다고 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투어를 하려던 이들에게 당장 필요했던 기타리스트는 길비 클락(Gilby Clarke)이 맡게 되었다. 그리고 백 코러스까지 대동한 이들은 동경을 시작으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를 계속하던 중 GNR은 92년 4월 20일에 열린 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추모 공연에 참가했다. 위성을 통해 생중계 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본 것으로 기록된 이 공연에는 메탈리카, 익스트림, 엘튼 존, 데프 레파드, 조지 마이클 등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했다. GNR은 이 공연에서 'Knockin' On Heavens' Door'와 'Paradise City'를 불렀는데 액슬은 그의 영웅인 엘튼 존과 함께 'Bohemian Rhapsody'를, Queen의 잔여 멤버들과 'We Will Rock You'를 불러 팬들을 열광시켰다. 슬래쉬는 데프 레파드의 보컬 조 엘리엇, 그리고 퀸 멤버들과 함께 'Tie Your Mother Down'을 연주했다. 'Knockin' On Heavens' Door'는 공식 에이즈 퇴치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슬래쉬는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를 만나 두 밴드의 합동공연을 열기로 잠정 합의 한 후 오프닝으로 너바나를 세우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추모 공연 후 처음 가진 투어는 U2의 고향인 아일랜드였다. 비밀리에 공항으로 들어오려던 이들은 눈치 빠른 기자들에 포위 당해 인터뷰를 한 후 팬들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U2는 이들에게 위스키 박스를 보내 아일랜드에 온 것을 환영하기도 했다. 페이스 노모(Faith No More)의 오프닝으로 시작된 아일랜드 공연을 끝내고 체코 헝가리 등을 거쳐 이들은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때 마침 오스트리아에 머물던 U2의 멤버들이 이들의 공연을 보러 오고 일요일날 열린 U2의 공연에는 액슬이 게스트로 참가해 'Knocking' On Heaven's Door'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협연하기도 했다. 그 후 벨기에 공연에는 Jeff Beck이 참가해 'Locomotive'를 협연하기도 했다. 또 파리 공연에는 액슬과 슬래쉬가 가장 존경했다는 Aerosmith, 그리고 슬래쉬와 친구인 Lenny Kravitz가 참가해 멋진 공연을 보여줬다 (굉장히 모난 성격의 소유자인 액슬이지만 이렇게 보면 뮤지션들과는 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듯 보인다). 그리고 투어 중간 중간에 더프가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을 하는데 액슬은 이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그리고 92년 7월 17일 대망의 메탈리카와 건즈 앤 로지스의 합동 공연이 시작됐다. 기타리스트 슬래쉬는 지금부터는 역사라며 공연의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약 5개월간 계속 된 이들의 합동 공연에는 모터헤드, 세바스찬 바하, 마이크 먼로등이 우정 출연하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액슬의 목에 이상이 가고 제임스 헷필드가 부상을 당하는 등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성공적으로 끝난 공연이었다. 또 'November Rain' 뮤직비디오가 "MTV Vanguard"에서 'Best Cinematography'를 수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에는 이지가 결성한 Izzy Stradlin & Ju Ju Hounds의 앨범이 발표되었으며 12월에는 도쿄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Use Your illusion 1&2]가 홈비디오로 출시되었고 'Don't Cry'와 'November Rain'의 제작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출시되었다.
93년에는 팀 와해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데 리듬기타를 맡고 있던 길비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자 이지가 잠시 연주를 하게 되었다. 한편 전 드러머였던 스티븐 애들러는 GNR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더프는 [Believe In Me]라는 타이틀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해기 시작했다.
그러나 93년 10월에는 펑크와 고전 커버 앨범인 [The Spaghetti Incident?]를 발표해서 해체를 우려하던 팬들을 안심시켰다. 스파게티는 27개국에서 열린 192회의 대규모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으로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으로, 음악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전에 발표했던 앨범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이유로 상업적으로는 전작들에 크게 못미치는 성적을 보였다. 그러나 'Since I Don't Have You'나 'Down On The Farm' 같은 곡들은 한 번 들어볼 만하다. 또 맨 끝 곡에는 희대의 살인자 찰리 맨슨의 커버가 히든 트랙으로 들어 있기도 하다.
이 앨범 발표 후 [Estranged]의 제작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출시되었고 길비의 솔로앨범인 [Pawnshop Guitars]가 발매 되었다. 그리고 슬래쉬는 폴 로저스와 함께 우드스탁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때 드럼은 존 본햄의 아들인 제이슨 본햄이 담당했다. 이 와중에 액슬은 팀의 음악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 길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그를 해고했다. 길비를 해고한 후 GNR은 게펜사의 작품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롤링 스톤즈의 커버 곡인 'Sympathy For The Devil'을 삽입하게 되었다. 이 곡은 슬래쉬, 더프, 맷이 먼저 녹음한 후 일주일 후에 액슬과 그의 친구인 폴 휴즈가 그 위에 녹음을 했는데 액슬은 슬래쉬에게 폴 휴즈가 기타를 입힌 것을 말하지 않아 둘의 관계가 불편해졌다. 그리고 95년 슬래쉬는 길비, 맷과 함께 자신의 밴드인 Slash's Snakepit을 결성해 [It's Five O'clock Somewhere]라는 앨범을 발표했으며 96년에는 Slash's Blues Ball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또 더프와 맷은 스티븐 존스, 존 테일러와 함께 4인조 펑크 프로젝트인 Neurotic Outsiders를 결성해 앨범을 발표했다. 이렇게 각자 활동을 하자 밴드가 반 해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액슬은 MTV에 슬래쉬는 더 이상 건즈 앤 로지스의 멤버가 아니라는 팩스를 보내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97년에는 액슬의 친구인 폴 휴즈, NIN의 기타리스트였던 로빈 핑크와 GNR의 키보디스트 디지등이 참여해 새 앨범을 발표할 것이며 액슬이 직접 리듬 기타를 친다고 하였으나 그냥 소문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GNR의 여러곡에 공동작곡가로 참여한 웨스트 아킨이 약물과다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Hollywood Rose의 멤버였던 크리스 웨버가 'Shadow Of Love'와 'Back Off Bitch'의 공동작곡가로 참여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액슬을 고소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듯 음악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한편 길비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인 [Hangover]를, 이지는 [117 degrees]를 발표했으며 슬래쉬는 힙합그룹 Blackstreet과 함께 'The Fix'란 곡을 MTV에서 연주하는 등, GNR은 완전 해체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파게티 앨범 이후 활발히 활동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고소와 경찰에 체포되는 등 음악 외적인 일로 바빴던 액슬 로즈는 98년 10월경부터 서서히 GNR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98년 10월에 부틀렉이 아닌 게펜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Welcome To The Video]가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비디오에는 그들의 전성기 시절 뮤직비디오 13곡이 담겨 있다.
98년 말과 99년 초 사이에 액슬은 밴드 멤버를 최종 확정하고 99년 초부터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컬에 액슬 로즈, 키보드에는 디지 리드, 기타에는 폴 휴즈, 세션 기타리스트로는 로빈 핑크, 베이스에는 토미 스팅슨, 드럼에는 조시 프리즈가 영입되어 새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초에는 앨범 발표 후 우드스탁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앨범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