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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는 패배의 역사였다
게시물ID : sisa_8629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azywhale
추천 : 4
조회수 : 3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10 1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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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패배의 역사였다.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일신의 영달과 부귀만을 꿈꾸는 이가 외세와의 협상을 통해 나라의 수장되는 자리를 꿰찰 때부터, 그 시작이 좋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은 걱정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그는 외국으로 도망가버렸고, 그 빈자리를 호국선열들의 희생으로 겨우 틀어막고, 그가 남긴 패배의 뒷감당은 풀뿌리 같은 사람들의 인내로 겨우 채워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모양만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할 뿐 군사권력을 통해 독재자와 그 일당들은 권력을 누려왔고, 꽃 같은 젊은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유도 없이 그들에게 술을 따라야만 했다. 두발의 총성이 해당 국면을 전환시켰고, 혹한의 대지 안에 잠들어있던 민주주의 씨앗은 드디어 땅 위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고대했다.


그러나 또 다시 민주주의는 패배해야만 했다. 분명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납득할 수 없었고, 납득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그동안 뜨거운 화염병을 들어 임이 오기를 기다린 수많은 젊은이들은 좌절하고 고통 받아야만 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가슴 속에 타오르던 불꽃이 시들어버렸을 것이고, 그마저도 넘어선 이는 스스로가 믿어왔던 모든 것을 내어던진 채 그들의 줄에 서기로 결심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유 없는 폭력의 행사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 어떤 커다란 정의감이 아니더라도 그저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무등산 옆 도시에 사는 누군가는 그들의 행사를 막아섰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여태까지 겪어온 수없는 패배 중에 얻은 한번의 승리임이 분명했지만, 내 가족과 내 이웃을 모두 잃고 나서야 얻은 승리였다. 시대를 역행해보겠다는 멍청한 발상으로부터 시작된 패악질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만 했다. 그곳만이 허울좋게 민주화의 성지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을 뿐, 여전히 그들의 가족과 이웃은 돌아오지 못했기에, 그들 스스로도 이를 승리라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승리라고 하기엔 너무 뼈아픈 승리였으니까. 더군다나 하나의 도시라는 너무나도 작은 공간에서 일어났기에, 그저 그들만이 그 저항과 희생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그 승리의 경험은 모두에게 공유되지 못했다.


이후로도 연이어 패배의 연속이었다. 혹자는 무승부 쯤으로 표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모든 구성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제도가 분명하고, 그렇기에 여전히 권력을 쥐고 흔드는 그들 또한 그 구성원의 일부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미명하에 그들과 타협해야만 했고, 시대의 뒷전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바람대로 시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마냥 느리게 흘러갔다.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통해 시대의 흐름은 늘 그곳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고작해야 나라의 수도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올라온 건방진 촌놈, 대학에 발조차 들여보지 못한 무식한 민변 출신의 변호사 하나는, 그들의 줄다리기 가운데서 끝끝내 버티어 통한의 승리를 가져온다. 그를 뽑은 시민도, 그를 뽑지 않은 시민들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와 확신하건대, 그들 중 대부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가까스로 일궈낸 승리의 성과물을 향유하기만 했다. 그것은 엉겹결에 찾아온 승리였다. 승리인 줄조차 모르는 승리였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투쟁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 승리가 얼마나 값지고, 귀중한 것인지를... 잃고 나서야만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영리한 악은, 왜 세상이 바뀔 수 있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승리가 주는 성과물에 젖어 기쁨을 누리고 있던 이들을 교묘히 속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잘못되면 모두가 그 한 사람 탓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시민들 모두에게 권력을 돌려주려 한 그의 행동들 덕분에 그가 해온 모든 일들에 거대한 실패의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다시 뒤로, 또 뒤로 굴러갈 수 있었다. 그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힘이었지만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끊임없는 패배의 역사는 그들의 지배에 저항할 힘을 빼앗고 다시금 주저앉게 만들었다.


녹색 강물이 드리운 날, 그렇게 독재자의 딸은 다시 한 번 아비의 동상을 커다랗게 세울 수 있었다. 사실 독재자의 딸이 세운 건지, 무당이 세운 건지는 알 수 없다.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별이 되어야만 했다. 누군가의 욕심이 가득차 하염없이 무거웠던 낡은 배 한 척은 그렇게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세월을 가지고 침몰했다. 왜 별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조차 추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놔두어서는 안 되었다. 누군가의 아이이기도 하지만, 그게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시민들의 손에 뽑힌 이들은 현실을, 일상을, 혹은 제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타협했다.


그렇게 진실은 인양되지 못한 채 끝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악이 어설펐기 때문에 이리 된 게 아니다. 악이 영리하건, 교묘하건, 늘 끊임없이 누군가는 깨어있으려 노력했고, 목숨을 걸고 진실을 이야기했다.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돌은 수없이 부딪히는 물방울에 점차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음모들에 한발 앞서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이러한 문제 의식에 공감한 이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드론을 날지 못하게 해도, 누군가의 입을 막아도, 사람들은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날씨만 추웠던 게 아니었다. 민주주의기 때문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합집산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무수한 선동과 날조, 분란에도 그 힘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촛불은 환하게 거리를 밝혔다. 


거리 그리고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지나다니는 공간적 속성을 넘어서서, 부당한 횡포와 폭력에 끊임없이 고통 받아야만 했던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치유 그리고 연대의 장이었다.


그 겨울은 마냥 춥고 조용한 겨울이 아니라, 삶기면 삶아질 줄 알았던 어리석은 개구리들이 솥을 박차고 나와 봄을 찾아 끊임없이 울어대는 겨울이었다.


누군가가 방구석에서 저 촛불이 언제 힘을 잃을까 조마조마한 와중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용기있게 거리로 나아갔다.


거리의 촛불들이 겨우내 투쟁해왔음에도 그들은 그 승패를 어떻게든 유예해왔다.


그리고 봄이 찾아올 무렵인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국 작지만 커다란 소식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그 소식은 하나의 도시에서, 혹은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승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열망했고 그들 중 일부가 참여해 꿋꿋이 이어져온 촛불들의 행진들이 쟁취해낸 승리를 알리는 승전보였다.

돌이킬 수 없는 내 가족과 내 이웃의 희생이나, 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촛불들의 참여로 떳떳하게 얻어진 승리였으며, 드디어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형태로 승전보가 울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패배의 역사였고,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에 늘 절망하며, 오갈 곳 없는 분노로 스스로를 갉아먹어가며 우울함에 잠식되어야만 했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좌절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변절하는 등, 너무나 아픈 일들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한 와중에 얻은 이 승리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졌다. 적어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간 이들에게 있어서는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이 무엇이고 그 크기가 얼마나 커다란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승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승리했다. 그것을 확실히 해야하며, 공공연히 그리고 널리 퍼뜨려 알려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가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이 해봤자 소용없는 일, 부질 없는 일이라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넘어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모든 부정과 부패에 맞서 저항한 이들에게는 이 기쁨과 환희를 온몸으로 누릴 자격이 분명히 있다. 뿐만 아니라, 설령 에이 이번에도 안 될거야, 라며 고개를 돌린 채 외면한 이들에게도 우리는 이 기쁨을 전해줄 것이다. 이번에도 됐으니까 다음에도 될 수 있을 것이기에, 이번의 기쁨이 그들의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우리는 기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모든 이들이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냉정해져야만 할 것이다.


그저 이토록 끊임없이 패배해온 민주주의가 오늘날 극적으로 승리한 것을 마냥 기뻐하는 것으로 끝을 내서는 안 된다.


아직 이 이야기의 끝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오늘의 일을 끝으로 하기 위해 치열하게 수작을 부릴 것이고,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의견에 여러 이유를 핑계로 동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미답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고, 않아야 한다.


여전히 진실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야만 한다.


오늘의 승리에 기뻐하면서 주어진 일들에 대해 냉철하게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지 않던가?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잘 해나갈 수 있음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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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울면서 쓰여진 글입니다. 어쩌면 비문이나 중언부언이 참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글을 쓰다보면, 정말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단어 하나를 적을 때도 의미를 정확히 하기 위해 말을 골라야하고, 문장 한 줄, 더 나아가 문단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알아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나의 틀림은 나만의 틀림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공감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틀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 개인의 생각(또는 편견)이 많이 들어간 글임에도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불편하실 수도 있고, 다른 의견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음, 그렇지만 뒤로 가기라는 좋은 버튼이 있습니다.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동시에 이 글은 오늘 일어난 일로 비롯된 기쁜 마음에서 쓰여진 글입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을 차갑고 냉정한 시각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논리적 도구인 까닭에, 마냥 기뻐하지 못한 채 염려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기쁨에 젖어, 이 일련의 사태들을 유야무야 끝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늘 걱정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제 생각에 공감하고, 좀 더 끈질기게 진실을 인양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버텨주길 바라면서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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