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를 봤을때는 2011년 봄이었다.
나는 11학번 새내기로 들어와 쭈뼛거리며 동아리 선배였으며 10학번이었던 너를 맞이했지.
학번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가 사정때문에 대학교를 1년 늦게 들어왔어서 우리의 나이는 동갑이었고,
토론 동아리였던 우리 동아리를 내가 꽤 좋아했어서
선배들에게 나름 이쁨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너와도 금방 스스럼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총무였던 너는 나름 귀엽게 구박받는(?) 포지션이었지, 그만큼 너는 남들에게 친근했고 착한 친구였다.
그떄는 너에게 별 다른 감정이 없었었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 나는 니가 꽤 이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근한(?) 매력에 묘하게(?) 묻혀(?) 버렸고,
별 탈 없이 우히히 웃고 떠드는 사이로 발전해서 만날 때마다 그저 즐겁게 지냈었었지.
그렇게 나는 군대를 갔다왔다.
그렇게 내가 본격적으로 2학년 생활을 시작했을때, 너는 이제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되었지.
그때 우리 둘의 대화는 거의 항상 동아리 행사가 있을때마다 내가 너를 오라고 꼬시고 너는 한 발짝 물러나는 형식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나 : ㅋㅋㅋ 고기 먹으러 와 고기! 오늘은 XX누나도 오는데? 그러니 너도 와도 된다 ㅋㅋㅋ
너 : 참가 학번이 높아지니 나를 부르는군 이녀석아 ㅋㅋㅋㅋ)
그런식으로 참 희한하다면 희한할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었다.
난 사실 너가 이런 행사에 오기 힘들거라고 생각하고서도 너를 불렀었지.
너는 열 번쯤 꼬시면 세 번쯤은 나타나 주었었고, 난 그런 너가 이유없이 참 좋았었다, 그래서 계속 불렀었나 보다.
이듬해 새해 첫날 변함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니 번호가 부재중전화로 찍혀있길래 갑자기 장난기가 돋아서 회신전화를 걸었던 이야기도
니가 졸업하고 얼마 있다가 만난 동아리 술자리에서
완전히 취한 니가 샐쭉한 표정으로 아직 내 번호를 몰랐어? 라고 물으며 나한테 번호를 찍어주고 있었고
나는 네 술잔에 몰래 물을 채워놓으며 "내가 니 번호를 왜 몰라 야 정신차려 ㅋㅋㅋㅋㅋ" 이러면서 네 머리를 붙잡고 흔들었던 이야기도
(이건 기억을 못하겠구나 넌..ㅋㅋㅋ)
이상하게 너랑 있었던 에피소드들은 전부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렇게 너는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휴학을 거쳐 졸업반이 되었다.
그래도 나름 자주 있었던 우리 둘의 대화는, 이제 생일때마다 전화 한 번 걸어서 말하거나 카톡 한 번 걸어서 말하는게 전부가 되었구나.
올해도 니 생일이 떠올랐던 난 생일마다 연락하는 주제에 맨입으로 하기가 뭐해서 커피 한 잔을 선물로 보냈고
너도 이주일 후에 내 생일이 이틀 지난 그때 늦어서 미안하다고 민망해하며 축하를 해주더라
그런데 참 이상하지. 무엇이 미련이 남았을까.
니가 내 생일선물로 똑같이 보내준 커피 한 잔을 받아서 마시며 괜시리 난 너에게 인증샷을 보냈고
거기에 넌 웃으며 자기도 꼭 인증샷을 보내겠다고 대답해 주더라.
짧은 두 마디를 더 나누고,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를 서로 하고.
거기에 내 마음이 이상해져 버렸다.
오유 연게를 눈팅하다가 본 말이 있었다. 연애감정이란 뭔가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갑자기 들이닥친다고
너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박힌 거대한 초대형 트레일러가
정말 예상 못한 곳에서 나타나 나를 사정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너의 프사가 눈에 들어오고
나에게 변함없이 친근하고 살짝 애교섞인 네 어조로 너에게 이미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주말 내내 1학년부터 알고 지내왔던 너에 대한 기억
그동안 너와 내가 했던 카톡들을 읽으며 내가 왜 이럴까 계속 생각했다.
2017년이 시작되었다. 나의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이때
나는 정말로. 큰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