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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독후감인데요. 레포트로 내라고 해서 억지로 분량 늘리고 쓴말또써서 좀그렇긴한데.......
어차피 내일 내야하고 수정도 못하겠지만 ㅜㅜ
내용도 엉성하지만 그냥 책게가 떠올라서 올려봅니당 ..
부끄러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읽고
목차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내 눈을 의심했다. 미친걸까? 이건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 아니라 토론대상이랑 인연을 끊는 38가지 방법이었다. 이런 걸 실제로 행했다간 말싸움에선 이길지언정 소모적인 진흙탕싸움만 벌어지고 말 것이다. 결론 없고 사실도 없으며 감정의 골만 남을 것이 뻔해보였다.
그래도 레포트 주제로 선정된 책이니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 천천히 읽으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혹시 부제는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라’ 라고 하면서 정작 내용은 ‘태도는 정중하게 하라’ 라는 내용이 적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그러한 내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대체 뭐하는 책이지? 의문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저자는 이러한 방법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논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서로에게 이런 논법을 쓰다보면 점차 소거법 형식으로 올바른 토론이 진행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공격적인 논법으로 상대의 치부를 잘 까발리기로 소문난 독사 소크라테스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인 것 일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상대에 대한 배려 또한 존재 하지 않았다.
그러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문득 수업시간에 들었던 몇 가지 말이 떠올랐다. ‘논쟁이란 사실유무보다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책이 진심이라는 생각에 점점 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이런 논쟁법을 따라했다간 특히 어르신들과 정치이야기라도 했다간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기 쉽상 이다.
‘24번째 거짓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결론을 끌어내라.’ 이쯤 되자 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필독서가 이 책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레포트 주제를 바꿀까? 하지만 그러기엔 통섭도 내 마음에 드는 책이 아니었다.
고민을 점차 하다가 결국 이놈의 저자인 쇼펜하우어가 어떤 인간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납득했다.
쇼펜하우어는 당대 계몽주의와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철학에서 외면 받고 부정당했던 세상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정면으로 껴안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추악하고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었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조사 끝에 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생략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논쟁에서 이기‘려 들 때 쓰’는 38가지 방법.
가만 생각해보면 이 책에 나와 있던 방법들은 누가 가르쳐줘야 아는 방법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논쟁하다보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논법이었다. 소모적이고 비이성적이지만 결코 악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논법.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자연적으로 발현하는 방어기제 논법. 그러한 논법을 모아둔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책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자 지금까지 보였던 악의적인 논법은 사라지고 남은 건 인간의 방어기제와 측은하리 만큼 허술한 방패였다. 그렇게 나는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글쓴이는 말한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이고 어떻게 보면 추악해 보일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자연히 발현하는 방어기제일 뿐이야.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다만 우리는 이러한 논법을 정리함으로써 이러한 인간적인 함정에 걸리지 않고 포옹하며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한 나는 바로 이 논쟁 법을 쓰는 사람들을 보기위하여 인터넷의 전쟁터인 정치게시판으로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글과 그 덧글에 달린 흔히 ‘일1베1충’, ‘어그로꾼’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덧글을 남기고 있었다.
본문에서 주장하고 있던 내용은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었고 이를 추모하고 규탄하기 위한 시위를 정부는 탄압하고 있다.’이었다. 그리고 이에 달린 어그로 댓글중 첫번째는 피를 흘리고 있는 시위대 사진을 올리고 ‘ㅎㅎ’라고 쓴 댓글이었다. 사진을 조사해본 결과 그 사진은 2004년도 시위 사진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댓글은 ‘이 사진은 노무현때 있던 건데 웃기네요. ㅎㅎ 박근혜는 비판하면서 노무현은 되나봐요 ㅎㅎ’.
어그로 꾼의 논쟁법을 정리해봤다.
1. ‘시위’ 사진만 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결론을 예측 못하게 했다.
2. 논쟁의 진행을 방해하고 흔히 물타기라고 하는 전혀 다른 ‘노무현’정권 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 노무현은 되고 박근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무도 한적 없다. 거짓 추론과 왜곡으로 억지로 결론을 낸 것이다.
이에 댓글을 달았다.
“이 사람 자꾸 딴소리하네. 노무현 정권이든 박근혜 정권이든 정부가 잘못하고 있으면 비판받아 마땅한건데. 노무현 정권 때 사진 한 장 들고 와서 그때도 그랬으니 지금도 해도 된다?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이건 무슨 헛소리야. 세월호의 문제가 커진 이유는 정부의 무능함 때문이었으니까 추모와 동시에 비판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노무현 때 잘 못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은 진짜 관계 전혀 없는 사진 들고 와서 분탕질 밖에 더되나?”
이에 대한 답글
“와~대단하시네. 길거리 막고 불법집회 가지는 사람들 연행하면 탄압이라니...그냥 쿠테타 일으켜도 그거 진압하면 나쁜놈이니까 전두환은 잘한 놈이네요;;?”
문제점
1. 거짓된 전제를 사용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불법집회는 없다. 모두 합법이지만 불법집회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사용했다.
2. 상대방에게 질 것 같으니 화제를 넘겼다.
3.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속에 넣으려고 했다.
공격할 부분은 많았지만 일단 상대의 논점을 확실히 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모순을 이해 사키기로 했다.
“사실 관계는 둘째 치고 '노무현'정권때 비슷한 일을 했고 이건 잘못했다. 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그 일과 같은 '박근혜'정권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네요?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박근혜정권이랑 노무현정권이랑 둘 다 잘못했다 인지. 둘 다 괜찮다 인지 논점을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그러자 상대방은 사라졌다.
논쟁에서 이겼다라고 단정 짓기엔 애매한 점이 있지만 사람의 생각을 체계화하고 무엇보다 상대를 보는 관점을 객관화되었기에 상대의 의표를 감정소모 없이 잘 찔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책 자체에선 인간의 본성이 어떤지만 알려줄 뿐.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이나 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전제품 설명서로 예를 들면 주의사항이나 원리만 잔뜩 나와 있을 뿐 이에 대한 해법은 전혀 나오지 않은 것과 같다. 물론 인간에 대한 완벽한 해법이 어디 있겠냐 만은 그러한 시도조차 없다는 점은 굉장히 의아스러웠다. 추측컨데 이 책의 저자 쇼펜하우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볼 뿐 그 이상의 것을 추구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도의 입장에서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책 내용은 매우 마음에 들었으나 공학도의 입장으로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 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혹시 쇼팬하우어의 일상 기록을 보면 인간의 추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알 수 있을까 싶어 몇 가지 일화를 찾아보았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헤겔과의 일화이다. 헤겔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인기 철학교수 였던 반면 쇼펜하우어는 새파란 교수였다. 헤겔의 강의실은 매번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에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날 같은 시에 그와 같은 철학 수업을 열었고 정면 대결을 걸었다. 그야 말로 무모하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사회에 반항하는 청소년 같은 도전. 결과는 당연히도 쇼펜하우어의 패배.
이 일화를 통해 위에서 말했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는 얼핏 보기에 인간의 추악함과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나고 까발리는 것이 마치 염세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까발린 인간의 추악함과 이기적인 면모를 그대로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고 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아니고 인간의 추악함까지도 포용했던 그야말로 인간의 화신이었다고 확신한다.
다시 책의 서술 방식을 살펴보면 자신의 행동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란 인간을 관찰해 그 속에 인간적인 면을 직시하고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쓰고자 한다.
“인간 쇼펜하우어가 논쟁에서 이기려 들 때 썼던 38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