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합니다.
막혀서 고이고 쌓이다 보니 흘러 넘쳐도 이상하지 않을 양이 되었고,
거기에 살짝 구멍이 생기니 그 구멍을 깨고 엄청난 수압으로 쏟아질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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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봇물 규모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절반이 수십년간 겪었던 문제입니다. 수천만에 이릅니다.
이정도면 백두산이 폭발해서 천지물이 쏟아져 나온 정도로 봐야겠죠.
이 담론이 시작된게 적어도 20년은 됩니다.
그런데 그 20년간 중간에 막힘없이 담론이 쭉 이어져 왔나요?
아니요.
제일 처음 논란이 터졌을때, 헌정 이후 군대와 관련한 남성들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분출됐습니다.
그런데 외면당합니다. 심지어 같은 남성들도 무관심과 배척하는 태도를 보였던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온갖 서러움과 분통함을 쏟아내도 제도권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나마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도 지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또 잦아듭니다. 우악스럽게 구멍이 메워지고 논로는 막힙니다.
논로가 막히는 사이에 또다시 고통스러운 경험과 기억과 분노와 원통함이 고이고 쌓입니다.
뭔가 이슈가 터집니다.
그러면 또다시 그 사이에 고이고 쌓였던 사람들의 온갖 서러움이 한꺼번에 쏟아지게 됩니다.
여전히 제도권은 꿈쩍도 않고 있고, 쏟아지는 물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떠납니다.
이게 계속 반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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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물이 계속해서 흐르게 두어야 했던겁니다.
물이 막히지 않게 끊임없이 살펴야 했던겁니다.
물이 넘칠때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절하게 치수를 해야 했고, 그 전에 억지로 물을 가두려 들지 말았어야 했던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논의 자체가 중단되지 말았어야 했고, 어떤 경우에도 논의 자체를 외면하고 회피하지 말았어야 했던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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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경험했던 성추행 및 성폭행 경험을 며칠동안 한꺼번에 쏟아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는 가해자를 넘어 그가 속한 집단 전체에 저주섞인 말을 내뱉을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에 지쳐 그만 외면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그저 한풀이로 끝나버리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같은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건 논의가 계속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가장 필요한건 참을성입니다. 서로 양보해야 할 것이지요.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잔뜩 벼려온 칼을 그만 내려놓아야 하고, 누군가는 잔뜩 상처받은 마음을 그만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않게 노력해야 하고, 혹시 상처를 받아도 피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 상황이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우려하는 마음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