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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까는 밤
게시물ID : humordata_13252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아침뱃살
추천 : 3
조회수 : 209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2/27 12:53:52

 

 

콩 까는 밤

 

대보름이 지나가는 방안에는
땅콩이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봉지 속의 콩들을 다 까낼 듯합니다.

 

손바닥에 하나 둘 새겨지는 콩을
이제 다 못 까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곧 주문한 치킨이 도착할 때가 되는 까닭입니다.

 

콩 하나에 추억과
콩 하나에 사랑과
콩 하나에 쓸쓸함과
콩 하나에 맥주와
콩 하나에 다리저림과
콩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콩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국민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실바나스, 제이나, 티란데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칼이쓰마, 이말년, 조석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연애가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한강 건너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땅콩이 쌓인 방구들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콩깍지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노는 백수는
부끄러운 잔고를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방에도 봄이 오면
서울 도심에 매운 연기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책상 위에도
자랑처럼 일거리가 무성할 게외다.

 

 

원작 - 윤동주 '별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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