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큐+리얼 예능…단물만 쪽~ 뽑았다
나영석 PD의 ‘1박 2일’과 ‘꽃보다 할배’ 이후 방송계에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 소위 ‘여행 예능’ 붐이 일어났다.
‘1박 2일’은 강호동과 이수근 등 연예인들이 팀을 이뤄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특산물과 볼거리를 소개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내 ‘국민 예능’ 반열에 올랐다. ‘꽃보다 할배’는 칠순, 팔순에 달하는 원로 배우들의 외국 배낭여행기를 통해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 그 뒤로도 다양한 형태의 여행 예능이 등장했는데 대부분 나영석 PD가 만들어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 주로 여행지에서 미션을 수행하거나 출연자들이 자유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이제 슬슬 여행 예능의 ‘약발’이 떨어져 과거와 같은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란 말이 나오려는 무렵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
이 한 편 나왔는데, 자유여행이 아닌 ‘해외 패키지여행’을 소재로 삼아 주목받는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다.
이젠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진 스타들의 자유여행 대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패키지여행 과정을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패키지여행 소재, 발상의 전환 인정받아
#패키지 코스 그대로 따라가며 공감대 형성
#중장년층 여행 욕구 자극…시청률 6% 육박
‘뭉쳐야 뜬다’의 편성이 확정됐을 때 방송계의 반응은 사실 시큰둥했다.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정형돈을 캐스팅했다는 것,
여기에 김성주-김용만-안정환 등 흔치 않은 인물들로 팀을 이뤄 눈길을 끌었지만, 그 외에는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포인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제작진이 “우리 프로그램은 기존 여행 예능과 달리 패키지여행을 소재로 한다”고 특이점을 어필했지만
그것만으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다만,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여행 예능이 언제나 그렇듯 적당 수준의 고정
시청자를 불러모을 것이며 캐스팅이 좋은 편이므로 ‘평타’ 이상의 시청률은 기록할 것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일단 방송이 시작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유여행을 통해 끌어내는 재미도 한계점이 드러난 상황에 패키지여행
이 뭐 그렇게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킬까 싶었는데 의외로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예상보다 더 높았다. 지난해 11월 중순
첫회부터 비지상파 예능 오프닝 스코어로는 꽤 높은 2.9%(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방송 2회 만에 3%대에 진입했고 5회 만에 4% 고지를 넘어섰다. 이후 6%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로 동 시간대 비지상파
1위 자리를 고수하는가 하면 지상파 경쟁작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국 기준 시청률이 수도권에 비해 약하다는 게 비지상파의
약점이기도 한데 ‘뭉쳐야 뜬다’의 경우 전국 시청률 역시 만만찮게 높아 지역이나 성별 또는 연령대를 뛰어넘으며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패키지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특히 중장년층의 여행 욕구까지 자극해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뜨거운 호응을 얻는 중이다.
◆일반인 관광객과 어울려 자연스러운 웃음 끌어내
#일반인과 섞여 어울리는 연예인 출연자
#자유여행서 볼 수 없는 정겨움 느껴져
앞서 말한 것처럼 ‘뭉쳐야 뜬다’의 최대 성공 요인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해외여행 패키지 코스를 따라가며 시청자들
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연예인 출연자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감동을 자아내고 또
시청자를 웃기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반인 관광객과 함께 패키지 팀에 들어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보여줌
으로써 보는 이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일반인 관광객 틈에 섞여 그들과 대화하고 즐겁게 어울리는 연예인
출연자들의 모습은 ‘1박 2일’이나 ‘꽃보다 할배’의 연예인 출연자들이 여행객들과 만나 대화하는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재미를 준다. 단순히 ‘길 가다 만난 사이’가 아니라 패키지 코스 전체를 함께하는 일원이 돼 즐겁게 어울리는,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시간이 흐르며 친해지는 과정을 통해 자유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겨움을 느끼게
해준다. 굳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사연을 부각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이들이 함께 패키지 코스를 따라가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사이사이에서 재미를 찾아내 부각시킬 뿐이다. 태국과 방콕, 중국 장가계, 일본과 스위스,
베트남-캄보디아에 이어 싱가포르까지. 지금 당장 여행 사이트나 소셜커머스를 뒤져봐도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의 코스 하나를 골라 그대로 따라가며 그 나라의 명물을 보고 음식을 먹고 독특한 놀이거리를 찾아 체험한다. ‘따로’가
아닌 ‘함께’ 체험한다. 자칫 ‘협찬받은 패키지 상품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를 자아낼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효과적으로 패키지 상품을 보여주며 그 내용을
프로그램의 재미에 활용해 광고주와 프로그램이 동시에 ‘윈윈 효과’를 누리고 있다. ‘상업 방송’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살려낸 셈이다. 물론, 앞으로도 적당 수위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게 제작진이 숙지해야 할 과제다.
◆즐기며 웃음 주는 연예인 출연자들
#김성주`김용만`안정환`정형돈 ‘브로맨스’
#적절한 웃음으로 ‘상업 방송’ 우려도 덜어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고 해도 역시 연예인 출연자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이 여행사와 손잡고 패키지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며 진행되는 터라 그 과정에만 충실하다 보면 자칫 뻔한 여행 다큐멘터리로 변해버릴 가능성도 다분하다.
프라임 타임에 배치된 ‘예능’의 본질을 잊지 않고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는데, 다행히도 이 부분을
김성주-김용만-안정환-정형돈 등 네 명의 출연자들이 찰떡같이 호흡을 맞춰 잘도 풀어낸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대면한 김용만과 안정환은 첫 번째 여행지인 태국에서 불과 하루, 이틀 만에 ‘절친’이 돼 서로
챙기며 ‘바깥사람-안사람’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 사이에 안정환은 극도의 깔끔한 면모와 함께 은근히 겁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친근한 ‘허당 캐릭터’를 구축했다. 김용만 역시 오랜만의 방송 출연인데다 그의 이력에선 생소했던 리얼 예능인데
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해 현장을 리드했다. 여행 과정에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나오면
적절히 강조하고 부각시켜 보는 재미를 더하는 등 ‘명 MC’로 활약하던 과거의 실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매 여행이 시작될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새 옷으로 치장하고 나타나는 등 특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성주는 여행 과정에서도 틈틈이 민국이와 민율이 등 과거 ‘아빠 어디가’를 통해 대중에 잘 알려진 자녀의 근황을 전해
시청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가 하면 틈만 나면 ‘깨방정’을 떨며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면모를
드러냈다. 그 ‘깨방정’이 유치하지만 밉살스러워 보이지 않아 프로그램의 웃음지수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형돈도 충분히 기대에 부응한다. ‘뭉쳐야 뜬다’는 앞서 극심한 공황장애 증상 탓에 방송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이 유일하게
선택한 ‘신작’이다. 실제로 정형돈은 그가 기존에 출연하던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복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웃음 경쟁에 대한 부담 등이 크게 작용한 것 같은데 그나마 ‘뭉쳐야 뜬다’는 그 부담을 최소화하고 참여할
수 있으니 정형돈 입장에서도 편안하게 다가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치열한 웃음 경쟁을 뒤로하고 출연자들이 편안하게
패키지 코스를 따라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프로그램. 그래서 사방팔방에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리얼 예능
임에도 ‘뭉쳐야 뜬다’에 출연하고 있는 정형돈의 표정은 시종일관 밝고 편안해 보인다. 옷차림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연
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러면서도 여행 과정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리액션으로 웃음을 전달하며
예능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남을 웃기려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카메라 앞에서 즐거운 척하던 이들이 그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고, 실제로 즐기며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부담을 덜어내고 웃고 떠들어
대니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