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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만난 탈북 여학생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3264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urelius
추천 : 5
조회수 : 4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6/14 11:07:26

잘 살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이미 못본지도 7년 넘었으니...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북한 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

강사가 막 강의를 하면서 같이 수업을 듣던 여학생에게 자기가 하는 말이 맞는지 

계속 확인을 요청하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아니 강사가 알면 더 잘 알겠지 왜 저 여학생에게 계속 자기 말을 컨펌받으려고 하는걸까,

 

알고보니 그 여학생이 탈북자였더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뭔가 이국적으로 생기긴 했지만 탈북자라고는 생각 못했거든요.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것도 뭔가 서양 혼혈 느낌이었습니다. 체구는 많이 왜소했지만.

외모에서의 분위기는 뭔가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 느낌이랄까

 

멜라니 로랑

 

보통 우리가 탈북녀 생각할 때 뭔가 조선족 느낌을 연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탈북자를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신기해서 민망함을 무릎쓰고 말을 걸어보고 수업 끝나고 커피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뭐 썸타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고, 그냥 친구로 지냈습니다.

다른 일반 수업에서 어려운 점 있으면 도와주고, 영어과제 있으면 도와주고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탈북자 중에서도 드문 평양 출신이더군요.

 

아버지는 당간부 그리고 어머니는 대학교사

나름 화목한 가정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녀 혼자 탈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유로. 

 

그녀의 아버지는 햇볕시대 때 대남교류사업을 맡고 있었는데, 그 때 종종 남한사람들로부터 남한방송매체 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혼자 술마시고 취했을 때는 자기한테 "사실은 북한이 먼저 침략전쟁을 시작한 거라고" 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기겁하면서 당신 아이한테 헛소리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라고, 그리고 자기한테는 "절대로 밖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답니다. 

 

평양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녀가 얘기하길 남녀학생이 동급생이어도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완벽히 지켜진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여자들도 반발하면서 막 대들고, 남자들은 이것봐라 애들이 대드네하면서 서로 티격대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 전에 북한식 공산주의 사회의 특유의 "자기비판"을 하는데, 보통의 경우 자기비판이란 수령에 대한 불충을 반성하는 시간인데, 그녀의 가정에서는 각자 잘못한 일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부모님께 불효했던 점을 말하고 반성하고, 어머니는 가사일을 소홀히했던 점에 대해 말하고 반성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가정에 잘못한 일에 대해 얘기하고 반성하는, 어떻게 보면 되게 기독교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녀의 집은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개도 자기비판 시간에 참여했다고... 개한테 반성할 일 없냐고 물어보고 개가 왈왈 짖으면 대답한 거로 간주하고 자기비판 시간을 종료했다고 합니다. 

 

평양에서도 사람들이 자유연애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학생들도 부모 몰래 연애하고 대동강 근처에서 자전거 타면서 놀러다니고, 강변에서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거기서 아이스크림 사먹었다고 말이죠.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다르게 부르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옛날에는 얼음보숭이가 표준어였는데, 실제로 그렇게 부르는 사람 거의 없다고 말하더군요. 

 

북한사람들이 수령체제에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김일성은 대다수가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김정일에 대해서는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런 감정을 쉽게 내뱉을 수 없지만요(그녀가 탈북했을 시점에는 김정일이 아직 살아있었어요)
 
핵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녀는 핵개발에 대해서는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분명 한민족의 쾌거 아니겠냐고. 
그래서 제가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얘기해줬습니다. 북한의 핵은, 심지어 그게 남한의 핵이더라도 핵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수 있고 일본과 대만도 핵무장을 하고 전쟁위기를 더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이죠.
의외였던 것은 그녀가 핵도미노 현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학기 정도 커피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고 수업과제도 도와주면서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대다수의 북한사람에 비해서는 분명 특권층의 삶을 누렸는데, 왜 탈북했을까..

그것도 단신으로. 

 

그 이유를 들으니 굉장히 숙연해지더군요.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젊고 앞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일을 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여기서 썩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래서 나름 아는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탈북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나름 당간부였기 때문에 여러 연줄이 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험했습니다. 중국과 태국을 거쳐서 한국에 와야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녀가 탈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대남교류사업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당했다고 합니다. 

햇볕정책 중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죠.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외동딸을 홀로 황급히 탈북시킨 것은 숙청을 이미 예감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 후 저는 군대를 가고 그녀와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보통 군대 다녀오면 늘 그렇듯이 인간관계가 한 번 쫙 정리되죠. 

 

그런데 어제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보는데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혹시나 해서 7년 전에 저장되어 있던 번호로 연락을 해봤는데 역시 바뀌었더군요.

 

그래도 나름 인상 깊은 에피소드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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