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인구의 투자와 미래』를 읽는 내내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 영화처럼 비장미가 넘치고, 통쾌하다. 그리고 1958년 개띠가 등장한다. 아니 무슨 책이 비장미가 넘치고 통쾌하기까지 한대? 1958년 개띠는 또 뭔데? 혼자서 일개 조직 하나를 섬멸하는 이 영화와 비슷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소음(혹은 미신)이지만 많은 이가 한국의 앞날을 예견해주는 신호라고 받아들이는 미신이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일본을 닮아서 망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문화 중 일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다. 연예, 게임, 만화, 엔터테인먼트나 음식 및 먹거리 분야에서 섬나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가을에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낯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는데 막상 가보니 일본의 도시는 간판만 다를 뿐이지 한국이랑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한국과 일본은 물리적으로 가까우며 같은 아시아 국가권에 속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제 측면에서도 과연 이 두 나라는 비슷할까?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음이 되거나 신호가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소음이고,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958년 개띠로 대변되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제 곧 60세에 접어들고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집단이 사회활동을 그만두고 은퇴 생활을 하면, 우리보다 먼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경험했던 일본이 불황을 겪었던 것처럼, 한국도 끝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곧 인구 절벽을 맞이하고, 그 절벽 끝에 있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노선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있다는 게 인구문제로 공포를 팔아먹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1958년 개띠 은퇴 → 생산활동인구 감소 → 내수 부진 → 경기 둔화 → 자산시장 폭락 논리가 참 그럴듯하다. 아귀가 너무 딱 맞아 보인다. 어쩌지. 나는 아직 30대 중반이고 한창 돈을 벌어야 하는데,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인구와 투자의 미래』를 보면 이런 걱정은 연예인 걱정보다 더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논리는 매우 취약하고 마치 미신과 같은 것이었으며, 사실 당장 우리 앞에는 절벽이 있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해 대비할 시간과 기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 앞이 절벽이에요? 진짜? 부동산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강조하는 것은 이렇다. 입지, 입지, 입지. 저자 역시 경제 분석과 투자에 있어서 무엇보다 이걸 강조한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그들의 말이 맞는지 한번 데이터를 확인해보자고. 그렇게 해보면, 자산시장의 가격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단 하나의 변수 같은 게 존재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책을 보다 보면 이걸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가 그동안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동안 인구문제로 자산시장 폭락을 주장해왔던 이들의 주장을 그냥 무시해버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나 보다. 그런 주장을 반박할 실탄(데이터)을 충분히 장착하면서 책을 써 내려 간 거 같다. 저자가 데이터를 하나하나 제시할 때마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권총 하나로 악의 무리를 시원시원하게 무찌르는 것 같은 통쾌함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한마디로 사이다. 사실 일본이 자산시장 불황을 겪은 것은 맞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구 감소가 경기 불황을 유발한 게 아니다. 생각해보자. 인구 감소가 원인이라면 왜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에선 자산시장이 폭락하지 않았을까? 그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래의 그래프만 봐도 일본의 자산시장 불황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출처: 시장을 보는 눈 일본의 지가는 1991년 봄을 고점으로 폭락하기 시작한 반면, 일본의 생산활동인구는 1996년부터 하락이 시작된다. ‘생산활동인구 증가율이 둔화된 게 토지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생산활동인구가 연 1.0% 이상 증가하던 1970년대 초반의 실질지가 하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참고로 일본 지가가 붕괴되던 1991년 당시 생산활동인구는 연 0.5%나 늘어나는 중이었다. 18쪽 책을 더 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주식시장을 봐도 인구감소와는 큰 관계가 없다. 그렇다. ‘인구감소=자산시장 폭락’이라는 공식은 틀렸다. 일본이 불황의 터널로 들어간 것은 인구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산시장 버블, 정책적인 실패, 그리고 엔화 강세가 일본의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 일본의 1980년대 자산시장은 저금리로 인해 엄청난 버블을 겪었다. 도쿄 땅값이 캐나다 전역의 땅값보다 비쌌고 일본의 주가지수의 밸류에이션은 엄청난 수준까지 올라가는 등 그야말로 ‘the hottest market in the world’ 시기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으로서는 경기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정책적인 조절에 나서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크게 실패했던 것이다. 버블이 한창 일어날 때는 금리 인상을 늦게 하고, 버블이 꺼지고 나서 시장이 폭락할 때에는 금리 인하를 늦게 하고, 그야말로 대응의 타이밍이 나빴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것이 일본 자산시장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왜 일본은 경기 회복이 그렇게 늦었나 하는 점이었다. 만일 경제가 버블이 꺼지면서 침체에 빠져들게 되고 정책 대응 실패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환율이 약세가 되면 수출 경쟁력 개선,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 등으로 경기회복이 더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의 엔화는 경기가 불황일 때 약세가 아니라 강세를 보였다. 그 이유는 이랬다. 첫째, 일본이 보유한 해외 순자산이 너무 많다. 최근 미국 국채를 보유한 세계 1위 국가에 일본이 등극했다. 일본사람들은 해외 자산을 123조 엔(약 1조 189억 달러)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불황으로 투자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고 판단해 일본으로 투자자금을 송금할 때 엔화 강세가 벌어진다. 또 다른 원인은 장기간에 걸친 물가안정에 있다. 일본은 197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는 물가가 안정된 나라였다. 문제는 이렇게 물가가 안정되면 이 나라의 통화가 일종의 ‘안전자산’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에 있다. 51~52쪽 글로벌 경제에 위기가 발생할 때 투자자들에게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엔화의 국제적 지위가 정작 일본이 어려울 때는 도움이 되지 못했던 셈이다. 물론 현재의 일본은 과거와 달라졌다. 2012년 아베 총리의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본격적인 경기부양책으로 일본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아마 과거의 실패가 지금 일본 정책 결정자들에게 쓰디쓴 교훈을 남겨주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이나 영국 또한 일본처럼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했음에도 자산시장 폭락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던 점은 이들 국가들도 일본의 경험을 간접적인 교훈 삼아서 정책적으로 대처를 잘해나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장의 ‘미국과 유럽의 인구가 줄어들 때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에 대해 풍부한 데이터로 뒷받침해가면서 잘 설명해주고 있으니 놓치지 말길 바란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산가격에 다소 버블이 껴 있더라도, 정책당국이 적절하게 대처하면 붕괴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5쪽 1958년 개띠, 은퇴, 그리고 폭락? 이제 눈길을 대한민국 자산시장으로 돌려보자. 1958년 개띠가 다시 등장할 때다. 앞서 일본의 사례를 통해 인구절벽이 사실상 자산시장 붕괴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뭔가 1958년 개띠의 은퇴라니. 뭔가 불안하긴 하다. 이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의 핵심 주체인데 이들이 은퇴하면 보유한 부동산을 팔아 노후자금을 충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국내 가계 자산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결국 타격을 입은 가계가 지출을 줄이면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아지지 않을까? 명대사 중 하나,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님~” 다행히도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첫째, 집을 팔고 어디로 가나? 전세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이제 주택가격의 70%를 넘어서는데, 집을 팔고 전세로 갈아타고 나면 은행에 예금할 돈이 그렇게 많지 않다. 차라리 집을 팔고 어디 가는 것보다 주택연금을 받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중략) 최근 주택연금 가입자들이 2만 9,000명을 넘어선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둘째, 집을 팔았다 쳐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90년대 일본에서는 정책금리가 6%를 넘었으니 일본 베이비붐 세대는 주택을 매도하고 은행 예금으로 갈아타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책금리는 1.25%이고 앞으로 금리가 오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평균적인 50대 가구가 보유한 실물자산 가치가 3억 552만 원이니, 이걸 다 팔고 은행에 예금을 든다 해도 1년에 받을 수 있는 이자가 458만 원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자소득세 12.5%를 차감하면 받게 될 돈은 월 33만 원 남짓이다. 그게 과연 합리적인 행동일까? 150쪽 결국 1958년 개띠의 은퇴로 집값이 폭락한다는 논리도 허점 많은 미신과 같은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인구절벽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저출산에 있다고 한다. 단순히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할 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남성의 가사노동 기여분 확대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도 매우 인상 깊은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것까지 소개해버리면 스포성 리뷰가 될 것 같아 영화의 티저광고 수준으로만 소개하는 데 그치기로 한다. 리뷰를 마치며 ‘인구와 투자의 미래’는 그동안 우리를 근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논리로 공포로 몰아넣었던 시장의 소음과 미신들을 다룬다. 이 리뷰에서 소개한 것들 이외에도 다양한 미신들, 가령 “미국이 금리 인상하면 한국도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버블이고 붕괴가 머지않았다” 같은 자극적인 주장을 하면서 한 가지 변수나 이론만으로 미래를 쉽게 예측하고 단언하는 주장에 실탄(데이터)을 화끈하게 쏘아 대면서 탄탄한 논리로 반박한다. 책 후반부에는 종말론, 미신, 소음에 휘말리지 않고 내 돈을 지키고 더 나아가 불릴 수 있는 재테크 수단과 자산 배분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들은 앞으로 경제를 바라볼 때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이에요 그게? 어디 한번 데이터를 확인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