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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 '처가집 치킨 쿠폰으로 시켜먹어...'를 보고 쓰는 글
게시물ID : freeboard_15149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mp
추천 : 3
조회수 : 50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3/29 05: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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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링크: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15247&s_no=315247&kind=bestofbest_sort&page=1&o_table=menbung

안녕하세요, 32살 먹은 아잽니다.
제가 대학 초반에 오유를 알아 시작했으니 이제 10년쯤 했네요.
어제 새벽에 베오베 올라온 '[네이트판]처가집 통닭 쿠폰으로 시켜먹어서 삐진아내.'라는 글의 댓글들을 보고 생각이 많아져 글을 씁니다.

저는 전산 전공으로 프로그래머 일을 하고 있고 직업상 논리적사고가 많이 필요합니다.
25~30 정도까지는 댓글들 중에 '돈을 지불하고 먹는건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들어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토론에 대해 관심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것 들에 익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논리로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비논리적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누군가 나에게 아무런 이유 없는 호의를 배풀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저 사람이 나에게 뭘 기대하는걸까?" 혹은 "왜 나에게 호의를 배풀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논리적인 사고방식에 좀더 익숙하신 분입니다.
"고맙다. 나도 저사람에게 뭘 해줘야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감성적인 부분이 좀더 뛰어나신 분입니다.

이 두가지는 맞고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이지 이걸 어느 한쪽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런 반응을 수준 낮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60억 사람 수만큼의 생각과 60억가지 성향이 있죠.
우리는 TV에 나오는 같은 사건을 보며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개중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리적으로 원인을 따져 잘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잘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잘 하는 사람을 '논리적이다'라고 표현하죠.
원글 댓글에서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주로 논리적인 분들일꺼라 생각합니다.

반면 사건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어요.
지난 세월호 사건을 보며 '국가 재난대책 시스템이 문제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저 애들 불쌍해 어떡해... 저 애들 부모님들은 마음 찢어지시겠다ㅠㅠ'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요.
사건을 받아들일 때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데 더 익숙합니다.
그리고 흔히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감성적인 사람들의 비 논리적 표현방식을 못마땅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다름입니다.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리지 않습니다.

감성적인 사람에게 지금 감정을 논리로 설명하라고하면 어려운게 당연합니다.
반대로 논리적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이해해보라는 것 또한 어려운게 당연합니다.
원글 댓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 상황이었어요.

비공감을 많이 받은 논리적인 분들의 댓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논리적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논리적인 관계인가요?
'나는 돈을 벌어올테니 너는 집안일을하고, 나는 10만큼 사랑할테니 너도 10만큼만 사랑해라' 라고 계약하는 관계인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논리적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감성적인 부분이 다분히 들어간 관계입니다.
물론 이조차도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할 수 있긴해요.
하지만 그런 것은 부부 두사람이 상호 협의하에 이루어져야합니다.

원글에서 아내도 부모님 집에서 배달을 시킬 때 논리적으로 어느 쪽이 이득인지 계산해 행동하길 바란다면 원글의 남편의 행동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원글의 아내는 좀 더 감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논리적으로 어떤게 이득인지 계산하는게 아니라 감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서운하다고 표현했구요, 남편은 여전히 논리적으로 접근 중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죠.

계속 이야기하지만 이 둘은 누구도 틀리지 않았어요.
다만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이 서로 다른 상태입니다.
이 때 최소한 어느 한쪽은 다른쪽의 방식에 맞춰줘야합니다.
저는 이걸 '프로토콜'이라고 부르는데요(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편하신대로 이름붙여주세요. )
사람이 타인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프로토콜을 맞춰야합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분석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요.

상대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면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줘야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에, 기분에 공감할 수 있어요.
이걸 '공감능력'이라고 합니다.
이걸 잘 하는 사람들을 '감수성이 높다'고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부르지요.
원글 리플에서 '아내가 너무 마음 아플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은 주로 이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들이실겁니다.
그리고 이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논리적으로 뭐가 문제가 있냐?'라는 리플들에 '공감'하지 못했고 '비공감' 버튼을 눌렀을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능력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감성적이어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 아내 분 마음이 너무 아픈거예요.
'우리 아빠가 저거 팔아서 몇푼 남는다고... 하루종일 기름 앞에 서서 닭 튀기랴 배달하랴... 그래도 먹고살자고 하는건데 별 수 없지...'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남편이 우리 아빠 배달을 시키네? 그것도 쿠폰으로?
이걸 자본주의 사회에 맞춰 논리적으로 따지면야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부부관계는 계약에 의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남편도 우리 아빠를 보면서 나처럼 마음아파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은 맨날 방에 널부러져 우리 아빠가 배달해주는걸 받아먹네? 저 사람은 그렇지가 않은가? 생각이 들어서 아내는 서운한거지
그래서 서운하다고 했더니 남편은 돈 다 내는거고 매상 올려드리는건데 이게 뭐가 문제냐며 논리적으로 말해보래
나는 지금 논리적으로 따지자는게 아닌데... 이럼 아내 속이 터져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아내가 우리 엄마 아빠를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져가며 '어머니 이거는 아드님이 벌어온 돈의 10%입니다. 저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더 필요하시면 변호사 선임해서 민사 청구하세요'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아니면 '어머니 이거 얼마 안되지만 아범이랑 아껴서 모아 드리는거예요. 제가 일을 다시해서 어머니 용돈도 더 많이 드리고 싶은데 애들돌보랴 아범 챙기랴 여유가 없네요... 아범이랑 같이 더 열심히 벌어서 꼭 어머니 호강시켜드릴게요!' 라고 하는게 기분이 더 좋겠어요?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원글의 아내는 남편이 뒤에처럼 해주길 바라고 있는거예요

어떤분은 아래와 같은 리플을 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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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중에 용돈을 챙겨드리면 드리는거지
치킨을 시켜먹은것이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만약 제 부모님이 치킨집해도 시켜먹고 쿠폰 다 쓸겁니다.
애시당초 쿠폰이 10개가 모였다는 말은 쓰라고 장인어른이 주신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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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플을 보면 나중에 용돈을 챙겨드리면 되는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음... 네. 뭐, 논리적으로 따지면 맞아요. 틀리진 않았어요. 그게 장인어른한테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죠.
근데 치킨 배달받아 먹고 용돈 10만원 추가로 챙겨드리는 것보다 쿠폰이 10개 모였으면 그건 옆집에 주면서 '이거 우리 장인 어른이 하시는건데 차마 쿠폰을 못 쓰겠다. 한번 쿠폰으로 드셔보시고 괜찮으면 종종 주문해주세요^^' 하고, 치킨이 먹고 싶을 때 과일 5,000원 어치라도 사서 들고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과일 좀 드시면서 하시라고 드리고 치킨이 15,000원 짜리면 2만원 쥐어드리고 '거스름 괜찮다고, 우리 장인어른이 사위 먹으라고 튀겨주신 귀한치킨인데 많이 못드려 죄송하다고' 그러고 치킨들고와서 아내랑 맛있게 먹으면 이게 아내가 바라는 남편의 모습인거예요
쿠폰으로 시켜서 삐진게 아니라...

물론 이게 항상 옳지는 않아요.
위에서 말했듯 부부관계는 두사람의 고유한 영역이고 둘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남편 생각처럼 '자주 시켜먹어서 우리아빠 매상 올라가면 좋지 뭘 굳이 찾아가서 그래?'라고 생각하면 그렇게하면 되는거예요.
아내는 별 생각 없는데 위에 제가 말한것처럼 하면 그건 그거대로 또 아내가 부담스러워 하겠지요

자 어떠세요?
이만하면 서로서로가 좀 이해가 될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위에 댓글을 가져온 이유는 많이 안타까워서 그랬어요.
제가 앞서 말했듯이 저도 25~30까지는 댓글쓴이처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 댓글 쓴 분, 처음에는 굉장히 예의바르게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혹시 뭐가 잘못인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시작하셨는데
감성적인 분들의 감성적인 반박을 논리적으로 이해해보려다 실패하고 시니컬해져 돌아가셨거든요ㅠㅠ
그리고 감성적인 분들이 우세한 가운데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댓글들에도 추천이 많은 걸보며 아직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제 글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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