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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기좋은 바보였다.
게시물ID : military_68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골의참맛
추천 : 2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30 01: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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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자랑스러웠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처음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입대를 하던 날, 울고있는 어머니를 보며 금방 다녀올거라며
웃으며 어머니 에게 손을 흔들었다.

선천적으로 폐도 좋지 않고, 평발에,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처음 훈련소 생활은 매우 힘이 들었지만,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수료식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먼 길을 달려 나를 보러온 부모님 보다도
그 애국가 전주 부분이 나올 때 울컥 하며 눈물이 치솟았다.
드디어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는구나.

그렇게 경기도 기계화 사단의 어느 자대를 배치받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주특기 일을 할 때 있어, 누구보다도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했고,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서
최상의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정신교육 및 안보태세 등도 여단 내에서 유일한 만점도 받고, 여러가지 훈련을 통하여
포상 휴가도 많이 획득하였다. 참 기뻣다.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이니만큼.

간부님들은 나를 참 이뻐하셨다. 물론 나랑 같이 작업을 하던 정비관과 정비반장 님을 제외한
왠만한 젋은 간부층은, 같이 놀아주고, 죽이 척척 맞는 그런 사병들을 챙겼지,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곧 상병을 달게 되었고, 어느 다른하루와 다를 바 없는 날이였다.

기상 소리에 맞추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잠을 잘때 자세를 이상하게 잤었나? 아니면, 그 전 날 탄적재를 하며 허리를 잘못 사용했나?

단순한 잠시 삐끗한 증상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앉아있으나 누워있으나 서있으나 그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국군 고양병원으로 외진을 다녀온 결과, 허리 디스크였다.

참 황당했다. 사회에 있으면서, 택배일도 해보고, 농사일 계속해서 도와왔던 나에게, 갑자기 디스크라니?

처음에는 꿋꿋이, 아파도 아프지 않은척, 평소와 같이 열심히 해보려 했다.

그러나, 한번 나간 허리는 계속해서 아파왔고, 그때마다 나는 고통을 호소했다.

처음에 나를 챙겨주던 간부들은, 나를 안타까워 하며, 나을때 까지 쉬라며 챙겨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하고 나아 다시 돌아가고싶었다.


하지만, 내 남은 군생활 동안 계속해서 통증이 지속됬고, 나는 점차 일과 작업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간부들은 나를 아프다는 핑계로 빠질려고하는 물상병으로 취급했고, 사병들은 같이 일과를 하며,
하루종일 자신들과 함께있는 간부 및 사병들과 친해지려 하지, 나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이 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병장이 되고, 전역일이 다가와 전역을 하게 되었을 때,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해주는 분은,

오직 정비반장, 정비관님만이 내 어꺠를 토닥이며 고생했다며 다음에 이쪽으로 오면 술한잔 사주겠다는 말 뿐이였다.


그렇게, 나의 군생활은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이 되어서, 이제 군대를 가게되는 후배 및 동생들을 만나게 될 때, 나는 항상 같은 말만을 할 뿐이다.

나라는 그냥 니가 태어난 지역일 뿐이다. 너의 건강이 최선이다. 적당히만 해라. 너를 최선으로 여겨라...
그 말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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