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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후
# 01 - 거추장스러운 환영인사
「루이스, 현재 당신의 모든 특권을 면제하고 포트레너드에 영구히 추방할 것을 명합니다.」
「맘대로 하시지.」
- 흑염 앤지헌트, 루이스의 왼쪽 팔을 흑염으로 불 태운 뒤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 남자는 산기슭을 빠져 나와 길모퉁이에 멈춰섰다. 아직 겨울의 입김이 다하지 않았는지 저 멀리 있는 디미스트 숲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평범했다. 올이 두꺼운 오버코트를 걸치고 청바지에 부츠를 신었으며 챙달린 모자를 걸쳤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빌노시티의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돌아다니고 있는 잡일꾼과 흡사해보였다. 특이한 점이라고는 왼쪽 팔이 결정사의 그것 처럼 인위적인 푸른빛을 띄었다는 정도였다.
남자는 두 손으로 바람을 가리며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잠시 길 모퉁이의 어둠 속에서 자갈이 깔린 광장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카페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피우던 담배를 내 던지고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 속에 깊숙히 찔러 넣은 채 광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여긴 변한게 하나도 없군."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동쪽, 즉 디시카는 많이 변했다. 남자가 거주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적어도 디시카는 너저분하고 불쾌한 면이 있는 곳이였지만 적어도 사람냄새는 풍기던 곳이었다. 그러나 은은하게나마 남아있던 사람냄새는 온데 간데 없고 비릿한 피냄새와 불쾌한 쓰레기들의 냄새가 뒤섞여 말로 형용키 힘든 냄새를 풍겨댔다. 남자도 그 냄새를 알아채고 얼굴을 대판 찡그렸으니.
광장 입구에 서 있던 두 사내가 그런 그가 다가오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틀림 없이 그 녀석이다."
"확실해? 내가 볼땐 평범한 애송이 결정사 같은데."
"홀든의 두번째 검이 너랑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섬광의 속도로 칼을 휘둘렀지만 결국 당하고 말았지. 저 손에 수 많은 능력자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헬리오스를 비롯하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연합의 동료들까지도. 현상금이 무려 파운드로 백만이다. 생사 불문하고 말이야. 방심하지 마."
남자는 오랜 오지 생활로 두 사내의 기척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했다. 그는 사내들과는 좀 동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펍 입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푸른 빛의 왼손에 잠깐동안 힘을 주었다. 그러자 차가운 냉기가 남자의 왼손을 감쌌고 그런 결과의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띄우며 문을 열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술집이었다. 대여섯 개의 탁자들이 늘어서 있고 앞에는 금속 판으로 덮힌 바 하나가 길게 가로질러 있었다. 바 뒤에는 깨진 거울을 배경으로 술병들이 길게 진열 되어 있었는데 마치 진열되어 있다기 보다 누가 진열되어 있던 진열대에 누가 난장판을 벌여 깨진 술병들을 어거지로 늘어놓은 듯한 뉘앙스였다. 술집 뒤 쪽의 출입구에는 투명한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이 길게 늘어져서 커튼 역활을 하고 있었다.
"어, 어서오십시오."
손님이 오면 웃으면서 반겨야 할 술집 주인이었지만 어찌 이 양반은 그러질 못했다. 오히려 발걸음이 이 술집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느껴져 남자는 주인양반의 태도에 사뭇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 곳에 남아 있을 녀석들은 힘 꽤나 쓴다고 뻐기는 건달들이 대부분이었을테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술집에 뭐하러 왔겠습니까?"
"술이 필요하신거로군요."
"날씨가 참 좋군요. 혹시 에일 한 잔 가능합니까?"
주인양반은 화들짝 놀라 낯선 이방인의 행색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러곤 푸른 사파이어 빛 머릿칼에 빨려들어 갈 것 같은 흑수정 빛 눈동자를 보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여 그가 뭘 하던 사람인지 유추해냈다. 연합측의 결정사, 그렇다면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그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고 가득 찬 술병은 자기 맘대로 가져가버리니, 그렇다고 거절 할 수는 없다. 서슬퍼런 그들의 결정에 갇히기는 싫었다. 일단 목숨이 가장 값진 것이니까.
"죄,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입니다만…!!"
주인양반은 바 위에 유리로 된 맥주병과 샴페인 병을 꺼내들었다. 샴페인도 코르크 마개가 아닌 돌려서 여는 싸구려 양산형의 브랜드였으며 맥주 또한 공장에서 만든 양산형 맥주뿐이었다.
"어쩔 수 없죠. 맥주 쪽으로 주십시요. 잔과 같이."
남자는 그렇게 주문하고는 벽 쪽의 테이블로 가 벽을 등지고 앉았다. 그 곳에선 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알 수 있게 시야가 탁 트였으며 앞쪽과 뒤쪽에 있는 후문에 누가 들어오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뒤통수를 채일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주인 양반은 어느새 샴페인과 잔을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잔은 와인을 따를 법한 입구가 넓은 잔이었다.
"맥주잔이 모두 깨져서 이런 것 밖엔 없군요.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시지요."
"적어도 나발을 불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짧게 인사를 하곤 맥주 병의 뚜껑을 따고 잔에 따른 뒤 입에 가져다 댔다. 맛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저 톡 쏠 뿐 그냥 밍숭맹숭한 보리차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말을 좀 심하게 하자면 차가운 오줌을 마시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별로군요."
"죄,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그냥 해본 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남자는 다시 맥주를 잔에 채워넣었다.
* * *
구슬로 된 발에 바싹 붙어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30대 사내는 큰 키에 젠틀한 분위기를 풍겼다. 왼쪽 손목에 금으로 된 명품시계 엑셀로(Xellor)를 차고 있는 마틴 챌피는 부유한 사업가의 스타일을 풍겼다. 그는 과거에 그랑플람 재단의 후원자였던 사내였으나 이제는 재단의 임원까지 올라간 사내였다. 마틴의 옆에서 어깨너머로 남자를 훔쳐보는 데미안이란 진홍의 머리칼을 한 사내는 더 언륜이 깊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값비싼 명품 정장을 멋들어지게 입고 있었다. 데미안은 프랑스어로 마틴에게 속삭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거 아닌가? 뭔가 이상하네, 저 친구가 정말로 젊은 영웅이라 불리던 그 자가 맞는가? 조그마한게 꼭 주점에 놀러 온 호기심 많은 새내기잖아. 저 봐, 맥주도 꼭 입에 안 맞는데 억지로 마시는 거 같지 않은가?"
"그래서 과거에 혈기 넘치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에게 시비를 걸다가 절반이 꽁꽁 얼어버린 채 그랑플람재단을 찾아왔었죠. 해동을 부탁하기 위해서 말이죠. 조금만 기다려줘요 데미안, 곧 그의 진가가 드러날테니까요."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종이 딸랑딸랑 울리면서 및이 바 안으로 들이쳤다. 그가 본타로 가는 이정표에서 그를 훔쳐보던 사내 둘이었다. 한 사내는 키가 아주 작은 반면 다른 사내는 2미터는 족히 되보였다. 키 큰 사내는 턱수염이 너저분하게 자라 있었으며 흉측하게 찢어진 흉터들이 여기저기 그어져 있었다. 또한 묵직한 노동자의 근육으로 보이는 탄탄함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들 정도였다.
그들이 바 앞에 서자 바텐더는 근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 표정 짓지마쇼, 주인장. 우리도 그저 한잔 걸치러 온 성실한 손님이니깐 말이야."
키가 작은 사내가 말했다. 키 큰 사내는 고개를 거의 내려다보듯이 하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 깔고보는 시선이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 마실만한 게 있구만 크흐흐."
키큰 거구의 사내는 그 쪽으로 걸어가 남자의 맥주 병을 가르키고는 위협스럽게 말했다.
"조금 마셔도 상관없겠지 형씨?"
거구의 사내는 거칠게 병을 뺏다가 뭔가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술병을 가로팬 손이 그대로 얼어버린 것이다. 사내는 순식간에 술집 마룻바닥과 대기의 온도를 식히기 시작했다. 곧 설원이 떠오를 정도의 추위가 술집 안에 감돌았다. 차가운 인상의 남자는 거구의 사내가 충격에 벗어나기도 전에 앉은 채로 사내의 무릎을 올려찼다. 턱수염 난 얼굴이 헉 하는 비명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구의 사내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술병이 언 채로 손에 붙어버려서 여간 쉬운게 아니었다.
"뭐야?!!"
키 작은 사내가 소리쳤다. 남자는 순식간의 체내의 수분을 얼려 약 열개의 고드름을 만들었다 고드름의 끝은 마치 창칼처럼 날카롭게 날 서 있었으며 술집의 오렌지빛 조명을 받아 황금색으로 번뜩 거렸다.
"재미있군. 설마 디시카로 돌아오자마자 반겨주는 손님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내는 결정사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뭘 쳐 웃고 그래 이 개자식아! 곧 지옥 갈 생각에 들뜨기라도 하나 보지?"
키 작은 사내가 소리쳤다. 결정사는 재빨리 고드름을 키 작은 사내를 향해 던졌다. 쐐액- 하는 소리가 공간을 찢듯이 날카롭게 울렸다. 키 작은 사내는 곧 팔을 휘두르더니 곧 사내의 전방에 화염의 장막이 솟아났다. 그 역시 사이퍼였다. 게다가, 여성에게만 나타난다는 불꽃을 다루는 사이퍼, 익숙한 말로는 불의 마녀.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그는 남자가 아니던가? 결정사는 의아함에 잠깐 동공이 커졌지만 일단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폭주하지 않는 불꽃의 사이퍼라. 그거 참 드문 사례인데, 브뤼노가 보면 좋아라 하겠구만."
"헹, 그래서 떫냐!"
키 작은 사내는 클라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 그의 손에서 대포알 만한 불덩이가 격발되었다. 결정사는 몸을 숙여 불덩이를 피했다. 키 작은 사내가 회심의 미소 비슷하게 지었다. 결정사는 뭔가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감지하여 날아간 불덩이로 고개를 돌렸다. 흰 섬광을 내뿜으며 곧 터지려는 듯한 뉘앙스, 그것은 평범한 불덩이가 아니었다. 유탄이었다.
"불의 마녀도 뭣도 아니었구만."
저 불덩이들의 파편이 몸을 뚫고 지나간다면 그 어느 누구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나가 뒤져라 재수 없는 결정사 자식!"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유탄이 폭발했다. 매캐한 검은 연기가 술집 안을 가득 채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곧 연기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건 결정사였다. 결정사 주위엔 거대한 얼음 울타리르 세워져 있었다. 여유롭게 얼음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방관하는 듯한 태도와 바로 옆에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얼어붙어 마치 동상이라도 된 듯한 키 작은 사내를 대조하니 실력차는 확실해보였다.
"가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뻔 했잖아. 예전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곤란해. 아무래도 눈에 띄면 안되는 입장이라."
그러곤 결정사는 얼음왕좌에 다리를 꼬며 말을 계속했다.
"멜빈의 유탄 발사기인가, 성능은 상당히 괜찮은데 사이퍼에게 쓸 때엔 주의가 요하겠군. 아무래도 변수가 많다보니."
결정사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술집 주인 양반은 안절부절 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는 다시 왼손을 쥐락펴락하더니 겁에 질린 늙은 주인양반을 향해 싱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 없으니까요. 맥주 맛은 별로였지만."
그러고나서 결정사는 바에 몸을 기댄 채 소리쳤다.
"이봐 마틴,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어서 그 두꺼운 낯짝을 드러내시지?"
뒷문의 발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결정사의 눈에 익숙한 실루엣이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마틴 챌피와 데미안이었다.
"오랜만이야 루이스, 얼굴이 많이 초췌해졌군. 헌터일이 영 순탄치만은 않은가 봐."
"나쁜 버릇은 여전하구만 그래, 괜스레 밖에 어정거리다가 들어올 건 뭐야."
"사정이 있었지. 여기 있는 분께 뭔가 보여줘야만 했거든 이 분을 소개하기로 하지, 이 사람은…."
"자네의 친절은 감사하지만 먼저 거절부터 하지. 사진으로 이미 많이 보았으니까, 데미안 루빌락시아 맞지? 현 헬리오스의 명실상부한 2인자이자 브뤼노의 뒤를 이을 2인자라고 하던데."
루이스가 데미안을 보면서 말했다. 데미안은 겸손히 루이스의 말을 부정하고 악수를 청했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루이스씨, 처음 뵙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이름은 데미안 루빌락시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헬리오스 소속이며 동시의 그랑플람 재단의 실질적인 주인역을 맡고 있죠. 반갑습니다."
루이스는 자리에 일어났지만 데미안이 내민 손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저 문 뒤에 날 노려보며 서 있는 사내부터 들어오라고 한 뒤에 예의를 갖추도록 할까."
"다이무스씨, 루이스씨 말씀대로 하지요."
데미안이 그렇게 말하고 나자 술집 안으로 검을 찬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차가운 얼굴, 강팍한 얼굴, 눈밑에 흉몰스럽게 난 십자모양의 상처, 외모는 분명 꼽아보면 인상적인 용모를 풍겼으나 이보다 더 할 수 없다는 듯 무시무시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구면이시지요. 날 경호해주는 에이전트인 다이무스 홀든 군입니다. 오스트리아 전통의 무가의 장남이지요."
루이스는 반가운 미소를 흘렸다. 미소가 가벼운게 어딘가 조롱 같게 느껴지기도 할 법 했다.
"홀든! 양지와 음지 모두 고루고루 실적을 쌓고 있는 알짜배기 말이군요."
양지는 헬리오스, 음지는 연합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각자 장남 다이무스와 삼남 이글을 뜻하는 말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같은 가문에 같은 검을 익혔지만 각자 검에 대한 이해와 개성이 다르고 뚜렷하여 모두 같은 가문의 검사라고 믿기 힘들었다. 성격도 그러했다. 다이무스는 늘 가문의 안위를 위하여 행동하였으며 늘 신중하고 침착해 차기 가문을 이끌 소가주가 된 반면 이글은 늘 격위없는 행동들의 연속으로 가문의 빈축을 사고 있었다.
"자네에 대해선 이글에게 많은 걸 들었었지."
"녀석이 뭐라 하던가."
"직접 대면해서 들어보시지. 대부분 욕설뿐이었지만. 아 참,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지."
루이스의 얼굴엔 장난기 섞인 미소가 담겨져 있었다.
"너랑 이글이랑 겨루면 누가 이기지?"
"루, 루이스!"
대화를 듣고 있던 마틴은 당황해하며 루이스를 나무랐다. 그의 능력이라면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리가 없을텐데도. 다이무스는 짙은 검정색 눈썹을 매섭게 치켜세우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입장에서 루이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경고였다. 루이스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지만 무안하다는 듯 짧게 웃었다. 명백한 조롱의 의미였다.
"그쯤 해둬 루이스, 연합에서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서 아직도 화가 난 모양인데…"
"수다스러운 것은 여전하군 마틴."
마틴의 말은 끝마치지 못했다. 본인 주위의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댄 후 왼쪽 눈을 살짝 감았다. 윙크였다. 분위기가 오싹하지만 말이다.
"세상의 모든 뒷담화를 들을 수 있는 편리한 귀 만큼이나 무거운 입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는데, 신은 참 야속하군. 그것이 자네의 안위와 신뢰를 위해서라도 유용한 능력일텐데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디 30분만 닥쳐주게."
마틴의 목소리엔 어느새 힘이 빠져 있었다. 루이스의 웃음 섞인 으름장에 잔뜩 주눅이 든 듯 보였다. 그것이 그가 헌터로서의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얻은 두번째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아무리 웃으며 부드럽게 말을 해도 몸 전체에 발산하는 차가운 냉기는 그의 첫인상과 들리는 말투까지 차갑게 만들었다. 덕분에 술집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깨 부순 건 데미안이었다. 그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주인양반을 불러 맥주 4잔을 주문했다.
"그만 둬. 여기 맥주는 최악이야."
"그래도 술집 테이블에 술이 빠지면 쓰나? 거기 주인 양반? 맥주에 어울릴 만한 안주도 몇가지 가져다 주시게."
황금빛 에일 맥주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자 데미안의 양팔이 양 옆으로 과장스럽게 펼쳐졌다. 호의를 가지고 먼저 루이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이봐 주인 양반, 내가 맥주를 시켰을 땐 싸구려를 주더니 이 양반이 주문하니 에일이 나오는건 무슨 경우지?"
"아니, 그, 그건 그러니까…."
"됐어. 술 앞에서 화내기는 싫군. 마음은 좀 상하지만."
다이무스를 제외한 모든 이가 잔을 들었다. 데미안, 마틴, 루이스 순으로. 데미안은 잔을 들지 않는 다이무스에게 물었다.
"자네는 들지 않는가?"
"임무중에 술을 입에 댈 수 없는 노릇이니 잔이라면 나중에라도 들겠습니다."
"거 참, 술 맛 떨어지는 구만. 그럼 나도 관두지."
다이무스의 말에 루이스는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다시 올려놨다. 그러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마틴과 데미안은 앞날이 깜깜해짐을 어렴풋이 눈치 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