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 벼룩시장을 바탕으로 한 수필 1. (부제 : 오월의 반건조 오징어)
게시물ID : readers_132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태호
추천 : 0
조회수 : 23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6/01 14:12:17
※ 처음으로 써보는 글입니다. 
벼룩시장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고요, 이 장르가 수필인지도 확실히 모를정도로 글쓰기에 문외한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다음날이면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항상 똑같이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고

다음날 점심시간 즈음까지

마치 호상을 맞이한 노인처럼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그러나 이번 주말 만큼은 조금 달랐다.

늘상 가던 기름때가 가득해 여름이었다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았을 구질구질한 감자튀김집에서

나는 평소 같았다면 주의 깊게 들었을 친구의 흥미진진하고 진한 연애담도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대충 흘려보내며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진한 상상에 빠져있었다.

 

나는 다음날이면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집에 들어온 나는 몸에 걸친 김빠진 듯 멋없는 옷들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더럽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이만큼 조용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지극히 혼자가 되는 구역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그 흔치 않은 장소 중에 하나인 이 화장실을 떠올릴 것이다.

구석구석 청소할 때면 명확하게 구분되는 닦은 곳과 닦지 않은 선명한 부위가 마치 3% 의 부적합을 온전히 100%로 돌려놓은 듯 한 묘한 상쾌함을 불러일으키는 곳.

 

나에게서 나온 불순물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기 전까진 깨끗했던 물방울들 을 생각하며 청소를 하다보면 어느새 잡생각은 정리되고 마음은 평온해진다.

이 오래된 습관 덕분에 우리 집 한 구석에 화장실은 언제나 새것 그 이상의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다.

청소는 내가 열심히 노력 한만큼 표가 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신체처럼.

청소를 마친 뒤에 나는 몸 구석구석을 정갈하게 씻었다.

여자 친구와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플리플랩을 신고 동네를 산책하는 상상을 하면서.

 

웹사이트에 들어가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휴대폰에 받아 적었다.

 

 

나는 다음날이면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이런저런 뜬구름 잡는 상상으로 잠을 통 이루지 못하다가

해가 뜰 즈음에야 간신히 잠에 들어 열한시 즈음에 간신히 몽롱한 몸을 일으켰다.

콧노래를 부르며 맥주 캔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아침 겸 점심으로 낙지볶음에 맥주 약간을 먹었다.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기도 전에 식탁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가 제법 신중한 표정으로 오늘 입고나갈 옷을 찬찬히 둘러봤다.

마치 내일부턴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불법으로 정해진 듯이..

먹색 버튼다운 칼라티셔츠에 감색 면바지를 입고 거기다 아식스 스니커즈를 신었다.

거울에 비춰보니 오늘 하루는 온전히 내가 주인공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길 것이다.

6호선 화랑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2호선 환승역인 신당역에 도착했다.

2호선 목적지인 대림 방향 지하철을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메모해 둔 위치와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때쯤엔 심장이 거의 밖으로 튀어나오겠다 싶을 정도로 두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열차를 탄 뒤

그곳에 있는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새하얀 슬립온에 블랙 진을 입은 피어 싱을 한 청년

탈색한 머리에 유행하는 무늬의 스냅백 모자를 쓴 평평한 모자챙보다 작은 체형의 소녀,

자아가 있었다면 절대 입지 않았을 온통 별무늬로 도배된 옷을 입은 입 벌리고 자는 아이, 그 아이와 정반대의 오피스 룩을 입은 아이엄마,

얼굴에 설렘인지 모를 묘한 두근거림을 간직한 채 서로 깔깔대는 두 소녀들,

그리고 저마다의 색깔을 뿜어내는 찬란한 생명들.

 

나는 어쩌면

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목적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의 동료애와 함께 엷은 미소를 뿜어댔다.

 

1부 끝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