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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일기
게시물ID : humorbest_132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Xiao
추천 : 73
조회수 : 3542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3/10/09 14:29:00
원본글 작성시간 : 2003/10/08 22:00:14
5월 1일 아들의 일기

아빠랑 대공원에 갔다.
와! 사람이 디따 많타! 아마도 다들 실직 했나부다.
애들이 불쌍하다.
지 아빠 실직자인 줄 모르고 저렇게 잼나게 놀고 있으니, 쯧.
난 다행히도 아빠가 근로자의 날이라고 쉬기 때문에 놀러왔다.
놀이기구 타는데 소나무 밑에서 한 아찌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저 아찌도 실직자인가 보다.
저 아찌 아이가 안쓰러워 죽겠다.

5월 1일 아빠의 일기

아~ 아들 녀석이랑 공원에 갔다.
아들한테는 아빠가 쉰다고 해서 갔다.
노가다에 무시기 근로자의 날이 있으랴.
짜슥, 즐거워하는 모습이 넘 이쁘다.
내일은 공공근로라도 나가야겠다.
오늘 쌀 살 돈까지 다 날릴 것 같다.
그래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들이 놀이기구 탈 때 몰래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쓰다.
이 맛이 인생인 듯 싶다.

5월 1일 아들의 일기

아빠는 자꾸 안 탄다고 한다.
어지럽다고 하신다.
그게 뭐가 무섭다고……. 난 재미있는데.
오늘 이 곳에 있는 놀이기구 다 타야지.
하하하! 신난다.
놀이기구 타는데 또 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다.
헉! 나의 아빠다. 나의 아빠. 눈물이 앞을 가린다.
비록 초등학생 3학년이라지만 알 건 다 안다.
울 아빠가…… 실직.
나의 철 없던 행동이 와르르 무너진다.
죄송해요.

5월 1일 아빠의 일기

남은 돈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내색을 안해야겠다.
썩~ 즐거워 하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내 자신이 쳐량해 울고 싶다.
그나저나 돈이 없어 더 이상 태워 줄 수가 없다.
한두가지만 더 타면 점심도 못 먹게 됐다.
어찌해야 할지…….
아들한테는 놀이기구 무섭다고 했다.
실은 타고 싶다.
바이킹에 올라가 소리질러 봤으면…….
햐! 얼마나 잼있을까나.
아들 몰래 또 한 병 샀다.
별로 안쓰다.
아까 마신 술이 취했나 보다.

5월 1일 아들의 일기

알아 버렸다. 아빠가 돈이 없는 걸.
초라해 보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더이상 놀이기구를 태워달란 소리를 안했다.
아빠의 걸음걸이가 무거워 보인다.
내가…… 내가 돈만 벌 수 있었어도…… 아빠를……
난 눈물이 더무 난다.
그러나, 마음으로 울었다. 마음으로…….
집에 가자고 할까?
그러자. 아빠…… 아빠…… 말이 안나왔다.
아빠의 표정은 그래도 웃으신다.
아빠가 커 보였다. 하늘보다 더…….
배가 고프다.
하지만, 돈이 없는 걸 안다.
집에 가서 물 말아 김치랑 맛있게 먹어야지.
잉? 저기서 무슨 행사한다.
아이들한테 빵을 주네.
난 달려가서 한개의 빵을 들고 왔다.
그리곤 반을 나누어 아빠반 나반 이렇게 먹었다.
맛있다.

5월 1일 아빠의 일기

녀석이 기구 타고 이제 힘이 드는 모양이다.
짜슥 다행이다.
집에 갈 돈 밖에 남지 않았다.
배가 고플텐데, 아무 말 하지 않네. 배가 고플텐데.
아빠가 실업자라 생각들면 슬프겠지 어린가슴에…… 녀석.
아들 녀석이 갑자기 달려간다. 힉!
또 놀이기구! 돈이…… 돈이…….
빵 한개를 들고 왔다.
아들 녀석이 반을 갈라 나를 준다.
난 배부르니 너나 먹으라고 했다.
그러자, 녀석이 투정을 부린다.
아빠랑 먹어야 먹는댄다. 훗, 녀석.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으며, 빵을 반 조각에서 또 반을 잘라 아들에게 주고 반에 반을 먹었다.
맛있다. 배가 고파서 인가…….
어서 이 화려한 공원을 빠져 나가야겠다.

5월 2일 아들의 일기

아빠가 그동안 나한테 노시는 걸 안보이실려고 일찍 나가시는 것 같았다.
그레서, 오늘은 내가 일찍 나가야겠다.
학교에서 일요일날 특별 행사를 한다고 했다.
글짓기 등. 행사를 메모로 써 놓았다.
그리곤 아침 6시에 집을 나갔다.
춥다. 새벽이라…….
초등학생 3학년이 6시에 할 건 진짜 없는 듯 했다.
음…… 오락실 문 여는 9시까지 공원 벤치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될 수 있을거다.
9시부터는 오락실에서 개기다 저녁 6시 정도 들어 가야겠다.
모처럼 아빠도 발 뻗고 집에서 주무시게 하고 싶다.
으……. 춥다. 참아야 한다. 난 남자다. 남자.

5월 2일 아빠의 일기

나갈려고 일어나 보니 아들이 없다.
메모가 있다.
학교에서 특별행사가 있다고 한다.
무슨 행사가……. 휴…… 잘 됐다.
모처럼 집에서 잠을 자야겠다.
요즘은 할 일도 없다.
미치겠다.
근데, 밥상이 차려져 있다.
들쳐보니 밥 한 공기와 김치, 그리고 라면 한 봉지가 있다.
라면 옆에 또 다른 메모가 있다.
아빠, 국물이 없으니 이거 끓여서 국 대신 밥에 말아 드세요.
이 녀석 어제 과자 사 먹으라고 준 500원을 라면 샀나보다.
가슴에 밀려오는 눈물…… 가슴으로 울어야 한다. 가슴으로…….
절대로 눈에서 울지 않으리라.
잠을 자고 일자리를 알아 보러 나가야 겠다.
힘을 내야겠다.
나에겐 듬직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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