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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벼룩시장을 바탕으로 한 수필 2. (부제 : 오월의 반건조 오징어)
게시물ID : readers_133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태호
추천 : 0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01 23:39:30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마음속 상상들은 을지로 입구, 시청, 신촌 홍대입구역을 하나하나 지나면서 산산이 깨졌다.

동료애를 뿜어내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빈 자리는 다시 경계심이 느껴지는 새로운 승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대림역에서 내린 시간은 대략 열두시 십분 쯤이었다.

 

내리려던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내가 채 출구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 끈적끈적한 인파들은

내 몸뚱이를 파도처럼 밖으로 쓸어갔다.

 

서른 개 남짓한 역을 거쳐 온 같은 서울 땅의 구로동 이었지만

우리말인데 우리말이 아닌듯한 말투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역 앞 광경은

내가 사는 동네와 달리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며 긴장감을 가져왔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역을지나 몇 걸음 걷다보니 건너편에 보이는 공원에

그토록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현수막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한 발짝 씩 다가가면서 가까워지는 그곳의 "주인공들"을 보고나서야

나의 거나한 망상은 아까 내린 전철에 두고 내렸어야했다고 마음속으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플리플랩을 신고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남녀 커플이 길거리에 널려있는 것을 보며

아까 동료애를 느꼈던 지하철 안의 승객들이 손에 쥔 모래로 변해 사라락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진

지나친

비극의

주인공이

내가

줄은

전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차마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뜬금없는 맛의 토마토주스 한 병을 사 마시며

담배를 연거푸 두 대 피워 재꼈다.

 

휴대폰에 오늘의유머 앱을 누르고

로그인을 한 뒤

떨리는 손으로 고민게시판에 단문의 글을 썼다.

 

다들 누군가와 같이 와서

혼자온 나는 못 들어가겠다.

배신감을 느낀다고..

 

곧 이어

예상했던 위로의 답글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예상되는 자세로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그곳 앞까지 걸어갔다.

 

 

신호등을 여러 차례 복잡하게 건너고

초록불이 깜빡여 늑장을 부리며 다음 신호를 기다려도

결국 그 입구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입구에서부터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 사람들이 보여

가죽 안쪽으론 울고 있지만 겉으로 무표정한 내 얼굴이

너무 부끄러워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길로 난 역으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

 

 

패배감이 가득 담긴 몸뚱이를 집으로 가는 방향의 전철 안으로 던지고

마음속으로 꺼이꺼이 울었다.

전철 안 승객들은

어느새 동료애를 느끼는 동지에서

늑대의 눈으로 쏘아보는 사냥꾼들로 변해있었다.

 

좌초된 배 위에서 나는 다급히 목적지를 정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혼자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기로 했다.

 

나는 오늘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

 

서점이란 장소는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나같이 책에 집중한 사람들은

내가 심수봉의 무궁화를 부르며 서커스를 해도

무관심 할 것 같았다.

 

안정된 마음으로 내 하루를 쏟아 부을 단 한권의 책을 유심히 찾아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 3인류 1에서 4편까지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몇페이지 훑어보고 바로 구입했다.

 

모처럼 밖으로 나온 휴일인 만큼

햇빛과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본디 태양 볕이 그리웠던 건지

사람이 그리웠던 건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나가 세븐일레븐에서 메론맛 우유를 사고

책의 겉표지를 뜯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담배를 사면 겉 비닐을 벗기듯이

책도 겉표지를 뜯어 버리고 하드케이스만 온전히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새초롬한 양장의 책을 들고 역 밖으로 나섰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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