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즉 전열함 시대의 화포는 명중률이 낮아서 숫자로 승부 보는 동네라 최대한 근접하면 화력이 잘 나오는 건 맞아요. 거기까지. 그래서 접근한다는게 100m에요. 조총 사거리 50m 초대형 조총 들고오면 좀 멀리쏠수있으니까 안전거리 삼아 100m.
여기에 백병전이 낄대가 대체 어디 있어요? 100m 가 아주 가까워보여요??
100m 거리에 맞출 냉병기는 애초에 존재도 안해요. 100m짜리 백병전이 가능하긴 한거에요?
그리고 근접하면 세카부네는 화포 지원 못해줘요. 아랫분이 자료까지 잘 들고 오셨네. 이중각목. 자료 따로 안찾아도 되니 편하네요. 그래서 화포 5-10m 이내 쐇다는건 대부분 헛소리에요. 다른 병기를 화포로 착각햇거나. 다 뭉뚱그려 화포라고 말하지만 종류가 수십가지라서요. 근데 왜 근접허용해줘요? 평저선 좋다는게 뭐에요 현대 전차처럼 제자리 회전이 가능한게 판옥선임. 그냥 거리 벌리면 되요.
마지막으로, 아 정말로 화포의 문제나 정말로 초근접전만 조선 수군이 반복햇다면 절대 깨지지 않을 문제가 있는데요.이순신의 해전시 사망 기록이에요. 그것도 검증된 기록. 일본 수군 수십척이랑 조총 사거리 이내(50m)에서 수십척이면 수천단위인 일본군이 사력을 다해 조총을 쏴대는데 왜 사망자는 한자리 숫자를 기록하는 거죠? 조선 수군은 소드마스터였나요 제다이였나요 칼로 조총탄을 튕겨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