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llok.history.go.kr/id/kka_10504019_001(중종 5년-1510년, 임진왜란 발발 82년 전)
삼포왜란이 발발합니다. 수륙 병진을 통한 제압작전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도원수로 임명된 유순정은 수군의 배(맹선으로 추정)가 왜선에 비해 느리고 운행하기 힘드나 총통을 이용하면 잘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방군에 숙련인원이 많지않아 쉽지는 않다고 하죠.(여튼 조선의 주적은 여진이다보니 이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는 생각보다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하죠.)
화포를 이용한 제압전술은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여말 최무선에 의해 실전성이 입증되었죠. 단, 이 시점까지는 화포 등을 운용하는 맹선의 단점을 고칠 필요가 없었죠. 이 당시 왜선은 말 그대로 쏘면 나름 뽀각이 됐기도 했고, 대 군사작전이라기보담 진압작전이다보니 절멸을 할 필요가 적었기도 하고, 뭐니뭐니 해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랄빵내는데는 화포가 짱짱맨이거든요.
막막 왜적놈들이 막 대맹선보다 큰 배도 가져오고 그럽니다. 사실 이건 어째 기분상 일반적인 왜구가 아닌거 같은데...뭐, 여튼 조선에선 다시금 소위 왜구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게 되었죠.
왜구들이 조선 어민들의 배를 약탈하고 죽이자 비거도선(소형 쾌속선)을 이용해 빠른 왜선에 대항 및 연안방어에 사용하자하는 뭐 그런 이야기. 이건 빠르게 도태되죠.
을묘왜변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 조선 수군에게 있어 대왜구전술 및 연안방어전술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되는 이유인데, '으아! 총통으로 뚫을 수가 없다!'와 '으아! 저것들도 총통쓴다!'입니다. 이게 어찌저찌 임진왜란의 예행연습이 되었던 것이 남도 수군의 정병화와 판옥선의 건조를 유발하게 됩니다. 판옥선을 각 수영에서 너무 찍어대서 목재가 부족하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만들면 됐을텐데, 안 그런거 보면 아마 병기의 신뢰성 보장을 나름 생각한 것 같습니다.
판옥선은 기존 맹선의 단점인 근접 생존성(오픈타입이라 격군이 활맞고 꽥 주금 ㅠ.ㅠ&동시대 전선들보다 선급이 비슷하거나 작아 등선이 쉬움 ㅠ.ㅠ)을 끌어올려, 근거리 화포 사격간에 승조원을 보호할 수 있는 접현방어력과 전천후 전투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로 인한 연안 방어를 이룩하기 위한 순수 전투함이었죠. 애초에 '조선 병사로는 근접전을 당할 수 없으니 장거리 포격으로 가겠다!'로 만든 배가 아닌 '오너라! 왜구들아! 난 모든 걸 써서 널 박살내주마'가 모토인 배였죠. 그러기 위해 선급을 올리고 격군을 보호하기위해 2층 구조로 만들게 되죠. 이걸 추정 가능한 것은 판옥선이 개발된 후-임진왜란 발발까지 총통의 재질, 화력 개량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그렇다고 무작정 사거리 및 화력증강을 위해 화약을 늘렸다간 총통이 깨져나가 아군 포수가 다치는 일이 벌어지니까요.
조선을 까자는 글도 아니거니와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은 없는 걸 있다고 해서 띄워야 할 만큼 부족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에 쓴 글입니다. 그리고 더 알아보시면 80대 노구로 종군했던 정걸같은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이 수두룩합니다. 임진왜란은 수정의 거리가 필요없는 승리한 전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