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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에 관한 글입니다.
물론 많이 아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모자란 글이나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작성된 글이기에 비난이나 지적보다는 보충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와 미국의 신경전이 매일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가 전세계적으로 금지된 사린가스 공격을 감행했다며 비난하고 폭격을 하자 러시아는 그거 니가 한 거 아니냐??? 저번에도 이란에 화학무기 있다면서? 반군이 쓴거 아니야?라고 주장. 미국은 그게 무슨 소리냐, 비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시리아 정부 지원을 중단하라면서 싸운다.
언젠 안 싸웠냐? 라고 물어본다면 글쎄... 라고 말할 수 밖엔 없긴하지만 왜 하필 시리아인가.
정말 세상에는 능력자가 많으시다. 2015년 6월 10일 기준으로 제작된 것을 필요한 부분을 발췌-수정함.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 배경
사실 전쟁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어딨겠는가-라는 믿음이 ISIS의 등장으로 깨져버렸긴 하지만 본래 싸움이라는 것이 그 배경에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탕수육에 소스를 말없이 부어버렸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다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시리아 내전 역시 그러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스민 혁명(2010~2011)을 필두로 중동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 바람에 시리아 역시 휩쓸리게 되었다. 아니, 그렇다는 말은 시리아 역시 독재주의 국가라는 말인가? 그렇다. 세습을 받아서 정권을 잡고 있다.
현재 시리아의 대통령을 바샤르 알 아사드로 이 사람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아들이다.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7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그 이후로 2대에 걸쳐서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는 알 아사드 정권, 저 남자.. 중동에선 어떨까?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정권을 잡고 있다고 해도, 혼자서는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다. 시리아를 지배계층은 아사드 대통령의 종파인 알라위 파와 이들의 정당인 시리아 바트당이다. 이 둘의 성격을 살펴보면 이 정권의 성격을 짐작해 볼 수가 있을 것같다.
먼저 바트당이다. 바트 심슨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믿지못할 거짓말을 방금 지어보았다. 이라크의 후세인을 비롯하여 독재자가 사랑한 정당이다. 기본적으로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속주의의 성격을 띈다. 왜냐하면 서구의 제국주의에 저항하여 태어난 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속주의의 성격은 어디서 오느냐. 바트당을 창당(1947)한 두 명이 기독교도(미첼 아플라크)와 이슬람교도(살라 알딘 아비타르)이다. 시작부터 두 종교가 함께하였으니 원리주의보다는 세속주의쪽이 자연스럽다.
시리아 바트당은 1963년 이후 정권을 잡았고, 지금까지 쭉 그 정권을 유지해오고 있다. 현 대통령이 이 당의 서기장이며, 시리아 인구중 180만 명이 바트당에 속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헌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2012.2.26) 헌법 상에 바트당이 지도적 정당임을 명시할 정도로 명실상부 시리아의 집권당이다.
바트당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역시 세속주의라는 점이다. 때문에 소수종파나 종교에 대한 탄압이 다른 당에 비해 훨씬 적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인은 알 아사드가 알라위파라는 것이다. 현재 아랍에 속하는 나라 중에 시아파가 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는 시리아가 유일하다.(이란은 아랍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리아 인구의 80% 이상은 수니파이다. 즉, 다른 아랍국철머 시리아의 주류는 수니파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시아파가 정권을 잡았을까.
사실 신은 나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이슬람에게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있는 알라위파는 이단 중에 이단이었다. 시아파에도 속하지 못하였다.(그래서 하페즈는 정권을 잡자마자 시아파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동시에 인구 대부분인 수니파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기 위해 기도방식은 수니파를 따른다.) 게다가 모든 교리는 구두로 전파되기에 시스템적으로 외연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마이너 종파였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비주류를 형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시리아를 통치하기 시작했고,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는 알라위파는 대부분군인으로서 생업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물론, 지휘층은 주류 엘리트인 수니파 장교들이 위치해있었다. 그런데 쿠데타가 봄날의 벚꽃엔딩 틀듯이 자주 발생하던 1950~60년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수니파들은 지들끼리 자멸을 해버리고 만다. 그 자리를 하페즈 알 아사드가 치고 들어와 쿠데타를 성공시키면 현재의 정권이 창출되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시리아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축은 바트당과 알라위파이다. 바트당은 민족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적 성격을 띄며, 알라위파는 이슬람의 소수 정파로서 수십 년간 비주류였다가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리즈시절을 맞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생긴다.
첫 번째 반발은 사회주의라는 것에서 생긴다. 사회주의? 당연히 모든 재산을 국유화한다. 모든 재산을 국유화한다? 당연히 부자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게된다. 그 당시 부자? 당연히 비주류인 알라위파보다는 주류인 수니파가 많다.
두 번째 반발은 세속주의라는 것에서 생긴다. 알라위 파 자체가 소수종파이며, 교리도 덜 배타적이기 때문에 시리아 내에 존재하는 기독교도들과 소수종파들은 나름의 안녕을 영위해 올 수 있었다.
세 번째 반발은 알라위파라는 비주류가 정권을 잡았다는 것에서 생긴다. 어디 과거에 눈도 못 맞추던 이단 잡놈들이 어느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네? 개열받는다. 알라위파 입장에서는 역사상 처음 맞는 리즈시절이다. 정부는 알라위파로 구성되고, 알라위파 하급 장교가 상급 장교를 지휘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마지막 반발은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것. 독재정권이라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한 당에서 정권을 잡으면 독재가 안 될 수가 없다. 심지어 시리아는 헌법 상에 바트당은 집권당이라는 것을 명시했었던 국가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영국 출신의 안과의사로서 경제개방과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민주화까지 언급했다할지라도 바트당의 입김에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 국가가 민주화되고, 후세인은 쫓겨났다. 이 독재정권이라는 점은 이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민주화라는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여기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것이 있다. 바로 경제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살만 했으니까. 마찬가지다. 우선, 내가 생존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시리아는 당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영국 유학 중에 형의 교통사고로 대통령이 된 알 아사드는 개혁, 개방, 온화의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바트당이 사회주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개방, 시장경제체제 도입, 민주화 등을 언급하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911테러 당시에 미국의 편을 시원하게 들지 않았고, 미국은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의 혐의를 가지고 경제적을 제재를 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 난민 100만여 명이 시리아에 들어왔고, 저임금화와 실업률 상승을 부추겼다. 마지막 크리티컬은 기후변화로 인한 몇 년에 거듭된 흉작이다.
즉 몇십 년간 이어진 갈등관계에 민주화 바람과 경제적 어려움이 불을 붙였다고 볼 수있다.
전쟁전 대립구도
구분 | 다마스쿠스 | 알레포 | 비고 |
종파 | 알라위파(시아파) | 수니파 | 정권창출 후 시아파로 인정 기도는 수니파 방식 |
정당 | 바트당(사회주의, 세속주의) | 제대로 인정 못받음 | 지주 땅 몰수, 소수 종교 및 종파 인정 |
인식 | 비주류, 천것, 이단 | 주류, 대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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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인구의 40% 미만 | 인구의 60%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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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 정권의 핵심 | 찬밥 | 증오 유발, 실각 시 보복 위협 |
군사 | 정규군 | 이슬람 형제단 | 대통령 암살 시도 실패, 하마 학살 |
수도인 다마스쿠스가 정책의 중심지가 되고 알라위파 및 바트당의 무대가 되었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제2의 도시인 알레포는 본래 수니파 부자들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그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이 부자들은 바트당에 의하여 재산이 몰수되었으니 더욱 원한이 클 수밖에.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