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통령 선거 포스터가 공개되었습니다.
영화 포스터도 이제 더 이상 길거리에서 볼 수 없는 시대,
모바일로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포스터가 그렇게 중요할까도 싶습니다.
하지만 포스터야 말로 국민 모두를 위한 미디어 입니다.
TV가 없고, 스마트폰이 없는 국민이라도,
골목 구석구석까지 붙어있는
대선포스터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후보들과 함께 붙어 있으니, 자연스레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어서,
포스터만큼은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2.
5명의 후보 포스터는
각각 자신들의 색깔들을 담고 있습니다.
후보 저마다의 색깔들이 이토록 또렷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이번 대선에선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포스터들은
이런 시각을 담아서 만들었구나 유추가 가능하지만
어떤 포스터들은
도대체 왜 이런 시각으로 만들었을까 의아하기도 합니다.
뭐, 들여다보니 나름 노림수가 보이더군요.
그럼 어떤 시각들이 숨겨있는지
기호5번부터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3.
심상정의 포스터 키워드는
'왼쪽'입니다.
5명 후보중 유일하게
실내가 아닌 야외촬영 사진을 썼습니다.
선거 포스터 스펙에도
구로공단 이력을 명기할만큼
그녀는 노동의 현장에, 늘 밖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노동없는 복지는 허구임을 천명한 그녀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헤드라인으로 뽑았습니다.
간디는 7가지 사회악의 하나로
노동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를 뽑았지요.
부동산 투기를 비롯해서,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며
땀과 노력없이 일구는 부가 우리를 얼마나 허탈하게 만드는지는
5월1일날 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입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는
그래서 그녀다운 헤드라인입니다.
기조색은 노랑입니다.
노랑 리본도 돋보입니다.
유일하게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 노란 리본만큼은 투탑입니다.
슬로건은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심상정'입니다.
수저계급론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선 개천에서 용 나올 날이 없다고 하지요.
내 삶을 내 스스로가 더 이상 바꿀 수가 없다는 좌절을 줍니다.
심상정은 그걸 넘어서겠다는 겁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이 바뀔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이 바뀌길 바라지 않는 사람,
기득권의 세력 속에서 그녀가 어떤 성취를 일궈낼지 궁금해집니다.
기호5번은
왼쪽의 시각입니다.
4.
유승민의 포스터 키워드는
'아쉬움'입니다.
썰전에서 유승민의
입담에 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통령 합동 토론에서
보여줬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박근혜 비서실장을 지냈던
친박 인사이면서도
박근혜가 혼내주려고 했던
비박의 이미지도 있습니다.
능력이야 없으면
어설프게 양다리 걸친 모양새가 되겠지만
이거 능력만 있으면
잘 포장해서 밀땅의 황제, 능력있는 나쁜남자 카사노바가 되기도 좋습니다.
수구꼴통 보수들의 능력이야
윤상현의 호닭호희나, 이정현의 충성충성충성 호형호제로 대표되는
내부자들 입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지요.
유승민 정도면
능력이야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들 이렇게 아쉬워했겠죠.
'능력은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헤드라인도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입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대통령 선거 포스터에서 유일하게 느낌표를 사용한 건
유승민 후보밖에 없습니다.ㅡㅡ
그렇데 이 헤드라인, 조금 모호합니다.
보통 어떤 주장을 담는 포스터는
포스터의 인물이 화자가 될 수 밖에 없는데
(나는 이러이러한 나라를 만들겠다)
하지만 유승민 포스터에서는
국민이 화자가 되어
유승민에게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냥,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라고 짧게 썼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보수의 새희망'이란 슬로건도
지금의 보수는 절망이라는 현실인식을 가져와서
그닥 희망스러워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보수, 새로운 변화'
정도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기조색은 좋습니다.
하늘색과 흰색을 적절히 사용해서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을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희망이란 컨셉에는 잘 어울리네요.
외투를 입지 않고있는 셔츠 차림의 모습은
현업에서 지금이라도 일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이미지를 줍니다.
유투브에는
똑똑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썼던데,
이러다간 기조색이며, 이미지며, 똘똘이 스머프로 남을까봐
똑똑한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채택하지 않고
보수의 새희망이란 슬로건으로 최종결정 내린 것 같습니다.
슬로건이나 헤드라인도 그렇고,
같은 보수 후보인 상대방에 비해서 지지율도 그렇고
국민 장인어른이란 닉네임도 그렇고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호 4번은
'아쉬움'입니다.
5.
안철수의 포스터 키워드는
'차별화'입니다.
전에 없던 레이아웃입니다.
텍스트가 비주얼에 조금 가려져서 뒷면에 배치된 모습은
잡지 표지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노림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파격적인 포스터는
왜 파격적이여만 하는가 설명 없이는
도저히 컨펌이 이뤄질 수 없으니까요.
저도 짠밥도 있고하니, 소설을 써보겠습니다.
레이아웃의 파격은
안철수의 명성을 높인 V3를
연상시킨다고 설명해서 시안을 팔았겠지요.
그렇습니다.
포스터도
기호 3번에
포즈는 활짝 두 팔을 편 V입니다.ㅋ
당명은 없앴습니다.
선거 포스터에서
당명은 보통 한쪽 귀퉁이를 차지합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위에서 아래로 시선은 이동합니다.
그래서 당명은 보통 좌측 귀퉁이에 넣곤 합니다.
잘 보이라고.
하지만 안철수는
호남의 당, 국민의 당 출신임을 알리면 안됩니다.
경상도 표를 의식해서 가져와야 되거든요.
그래서 뺐습니다.
대신에 윗측에 3번 안철수란 이름을 크게 넣어서
당명이 들어갈 좌우측 상단 구석까지 채우긴 했네요.
앗, 조금 전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자칭 광고천재 이제석이란 사람이
이 포스터를 제작했더군요.
이제석은 옥외광고 수상으로 유명하는데요,
그의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기존의 설치된 옥외광고물을 이용해서
거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여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창문을 이용해서
경찰이 올빼미 눈처럼 만들어서
밤낮으로 지켜본다는 메시지를 넣거나
이렇게
기존의 매연이 나오는 굴뚝을 이용해서
권총처럼 사람을 죽이는 위험한 흉기로 묘사한다거나
이렇게 기존의 선사유적공원 표지판을
찌그러뜨려서 더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그렇게나 말입니다.
안철수의 포스터가
저런식인건
다분히, (기존에 설치된)
바로 양 옆의 포스터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2번과 4번 사이에서
마치 단일화가 이뤄졌다는 효과를
혹은 양쪽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말이죠.
선거전 마지막까지 저쪽에서 단일화 얘기는 어찌됐건 계속 나올터인데
저 비주얼이 마치 기호2번과 4번 사이에서
단일화를 이뤄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요.
일부러 그림자도 남겨두어서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혹은 현장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설치물을 이용하는
제작자의 스타일을 보면
어느정도 의도가 보이긴 합니다.
(어때요? 기존 포스터와 비교하면 더 그렇지요?)
이제석의 스타일 중에 특이한건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해서, 의도했건 의도되지 않았건
결과물의 퀄리티가 조악해보입니다.
반포 고터 를 지나다니는 분들이라면 많이 보셨을 겁니다.
허위신고가 발목을 잡는다는 컨셉은 좋지만,
그 컨셉을 노래방 가사처럼,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
경찰관의 발목을 잡는 비쥬얼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의도는 좋지만 퀄리티나 디테일은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110과 112 신고의 차이점도 그렇구요.
아이디어는 좋지만
최종 결과물의 디테일은 썩 좋지 않습니다.
아마, 안철수 선거 포스터의
결과물의 퀄리티에 대해서 말이 많은 건,
이제석을 선택한 이상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될 몫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화를 위해서
뽀샵을 했는데 뽀샵은 안했다고는 하지 맙시다
안철수 가리마는
오른쪽입니다.
포스터는 왼쪽이구요.
안철수의 헤드라인은
'국민이 이긴다'입니다.
찬반투표도 아니고, 결선투표도 아니고,
다수의 후보군에서 선택하는 투표인데
이기고 진다는 승패의 관점으로 접근한건
좀 의아스럽습니다.
이마저도 포즈의 V, 백신의 V3를 연상해서
이긴다라는 단어를 썼을테고,
결국은 국민의당이 이긴다라는 의도였겠지만,
뭐,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아무튼,
기호 3번은
차별화입니다.
6.
홍준표의 포스터 키워드는
'기만'입니다.
슬로건은
'당당한 서민대통령'입니다.
아직 남은 재판이 있으나
당당하다고 말합니다.
비서민적인 행보를 보여줬으나
서민 대통령입니다.
헤드라인은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든 정당에서
대표를 역임했으면서
자유대한민국을 말합니다.
정책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아직도 40년전에 부르던, 자유대한민국시절로 되돌리는 이념과
의무급식은 줄창 반대했으면서도
서민을 자부하는 기만만이 남아있습니다.
(구글에서 홍준표를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 이미지입니다. 참 서민적이네요)
기호 2번이
기호 2번이라는게
참 슬픕니다.
7.
문재인의 포스터 키워드는
'촛불'입니다.
지난 겨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모두가 이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이게 나라냐?"
대통령은 자리를 비웠고
공권력에 사람이 숨지고
경제는 답보, 외교는 퇴보
역시나 모두가 외쳤습니다.
"이게 나라냐?"
그래서
나온 헤드라인입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너무 카피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좀 짧지요.
'안보에서 경제까지
나라를 나라답게'
..라고 좀 더 명확하게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파란색이 기조색이지만
광화문 광장을 물들였던
노란색도 이토록 멋지게 살렸습니다.
기호1번에 노란색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노란 리본도 착용했습니다.
대부분 얼굴에 리터칭을 하는데
유일하게 리터칭을 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대신에 조명을 매우 잘 써서,
자연스러운 세련됨을 잘 찍었습니다.
줄무늬 슈트까지 더해지니
세련됨에 더 젊어보이기도 합니다.
포스터의 배경도
마치 초의 왁스처럼 하얗게 빛나기만 합니다.
포스터 중에 가장 밝습니다.
촛불의 힘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기호 1번은
'촛불'입니다.
8.
누가 대통령이 되도
세상은 내 뜻대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게 진짜 잃어버린 십년은
그들이 만들어놨지요.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부터 외교까지 위기입니다.
그 힘겨운 뒷처리 하느랴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힘든 짐을
지우게 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촛불을 밝혀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이 명제의 증명만으로도
이번 투표는 빛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색깔로
만들어진 포스터들이지만
어떤것이 그 명제를 증명할지는
포스터만 들여다봐도,
그렇습니다.
명약관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