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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테러리스트
게시물ID : sisa_1334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꺽다리아저씨
추천 : 5
조회수 : 38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1/10 14:40:52
저는 전남 광주에서 19년을 살았고 이후 6년간 전국을 떠돌며 자아를 찾아 해매는 25세 청년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릴때부터 늘 집에 안계셨습니다.

경제적 무능함 때문에 사업만 하셨다 하면 실패하셨고 아버지가 가족들 명의로 진 빚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제 나이 12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랑 살게 되었구요.

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무언가에 분노하고 있는 눈빛을 가진 아버지를.

아버지는 고등학생때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시며, 대학은 안나오셨는데도 당시 보통 대학생들보다

더 운동권에서 유명하셨다고 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셔서 누구랑 말싸움으로 져본적이 없다고 하고...

아버지를 아는 분들은 누구나 입을모아 아버질 칭찬합니다.

하지만 가정에는 그렇지 못하셨죠.

광주 전체 운동권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분이 아버지인데도 저는 자랑스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늘 어머니가 아프셔야 했기에...

저희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입니다. 감옥살이를 하셨거든요.

그 당시에는 테러리스트로 분류되셨었지요.

80년 광주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중 한 분이셨습니다. 자세한 사건 개요는 네이버에 '1차광미방 사건'

을 검색해보시면 나올겁니다.

하여튼 이 덕분에 저는 국가유공자 자녀로 분류되고, 대학교를 다닐 때도 정해진 학점 이상만 나오면

납부금이 공짜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버지의 과거를 그닥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제 어린시절이 너무도 불행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저도 결국 아버지 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의 정책이나 정치인들의 정책같은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개인의 의견, 국민들의 의견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고, 국회의원들이 싸울 수도 있죠.

그러나,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의견표출이 제한되고, 법안이 강행처리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지금이 바로 민주주의 역행의 한복판이라는 새아각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독재의 시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 눈에 안보이는 독재로 민주주의를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 처럼 보인다는 말이죠.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인생을 다 바쳐서 지금 까지도 운동권에 머무르시는지...알것도 같습니다.

지금도 나름 민주주의 국가라고 포장된 나라에서 나름 자유롭게 살면서도 이정도 억압에 피가 끓는데,

그 당시에 아버지는 얼마나 분통이 터지셨을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젊음을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를 엉뚱한 놈들이 통째로 채가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이 타셨을지도...

여러분.

중요한건 좌우대립이 아닙니다.

중요한건 민주주의라는 가치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입니다.

어떤 정책을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견을 묵살하고 스스로를 다수결의 대표자라고 단정지은 채 귀를 닫아버리는 행위는

민주화를 위해 목숨바치고 젊음을 바친 유공자들이 겨우 세워놓은 민주주의의 깃발을 땅에 떨어트리고

발로 밟는 행위나 다를바 없을 겁니다.

이미 몇번의 전례가 있는 법안의 강행처리나 의장점거등의 행위들이 민주적일까요?

언젠가는...다시 과거의 광주가 재현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저도 일어날겁니다.

진보를 위한다거나 보수를 위하는 의식따위가 아닌, 제 아버지가 아들에게 평생을 미움받으면서도

지키려 노력했던 그 가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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