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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기 힘든 어느 겨울 아침에 쓴 일기
게시물ID : freeboard_15287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큰돌얼굴
추천 : 0
조회수 : 2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21 17: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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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침은 힘들다. 두꺼운 이불과 온수 메트에서 밖으로 나간다는 건 넋이 반쯤 빠져 있는 중에도 어느정도 다짐이 필요하다.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보통 클 것이다. 자신만 생각하면 되는 우리와 다르게 보통의 아빠들은 더욱 큰 부담으로 어느 계절이든 눈이 번쩍 뜨였겠지.
새벽에 한번씩 깨는데 그간 이유를 몰랐다가 오늘 새벽에 알았다. 목이 말라 나가보니 아버지가 그동안 항상, 내가 깨던 시간에 집을 나서던 거였다. 퇴직하신지는 한참이고 어딘가 사무실에 요즘 나가시는 걸로는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아침 운동을 하신다고 새벽부터 나가신단다. 아무튼 부스럭거리고 하니까 예민한 내가 깼던 거 같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미웠다. 미웠고 싫었다. 현직 때는 당신의 말대로 어느 누구보다 일찍 출근 하시는 삶을(말단 때부터 퇴직 전까지) 평생 유지하셨고, 성격도 역시나 고지식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부를 엄청나게 좋아하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사회과부도 그 지도책을 아버지의 특별과외로 우리나라 시와 군을 다 외워야만 했다. 대충 유명한 특산물이 무엇인지도 더불어서 (대체 왜?). 수학이나 성문영어 같은 것도 억지로 아버지한테 배워야 했다. 사촌형누나들이 다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우리집에 모아놓고 주말마다 공부를 시키곤 했다. 둘째 삼촌을 사촌형들이 좋아할리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진짜 형들이 불쌍했었지. 왜 우리 아빤 저렇게 유난이실까. 다른 아빠들은 맨날 잘만 놀아주고 게임팩도 팍팍 사주시는데.
예순다섯의 연세에 요즘은 일본어와 무엇인지를 공부하시고, 재작년인가는 공인중개사도 땄으며,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까지 겸하신다. 그리고 다행인건 어렸을 때는 그런 저런 훈육이 강했지만, 성인인 내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재촉도 충고도 물론 없으시고 '은근'할 뿐이다. 여전히 부지런한 모습이나, 애기들 많이 나오는 티비 프로를 아련하게 보신다던지 (아버지는...<내가 게이인 것을> 아신다).
아버지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내가 게으르고 편하게 살았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오래전 그걸 잘 알 나이가 됐을 때 쯤 우리는 화해를 했다. 화해가 아니라 일방적인 내 어리석음을 반성한 것이겠지 참. 종종 나는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문자를 보내고, 긴 대화는 물론 하지 않는다. 자식도 자식의 지위가 처음이어서 부모를 보고 억울해 하지만, 부모도 부모를 해보고 다시 하는 일이 없다. 그들도 처음. 우리 아버지도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제일 잘하는 게 공부였고, 부지런함이었으니까 그걸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번씩 아브지 나설 때 같이 등산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등산을 참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면 아브지랑 나선 적은 없다. 그래도 못하겠고,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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