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파라노마 카메라처럼 빙 둘러보았다.
아니 아무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나 혼자만이 여기 서 있으니까.
교탁이 보인다.
저기 저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갔다.
나는 저기 저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
이차 방정식을 푸는 법을 배웠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배웠고,
일본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우리를 공격했는지도 배웠다,
그리고 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교탁 너머로 산호색 미닫이문이 보인다.
혈기왕성한 우리 반 애들,
점심 좀 빨리 받겠다고 밀치고 뛰어 나가다가,
평소에 드르륵 드르륵 잘도 움직이던 게 한 번에 쑥하고 빠졌었다.
그 때 그 아이 어벙한 표정이 아직도 생각이나.
아마 나는 앞으로도 쭉 미닫이문을 열고 넘어갈 때면
네 생각에 피식 피식 웃게 될거야.
산호색 미닫이문 옆으로, 옆으로 벽에 착 달라붙은 선풍기가 보인다.
발 시린 겨울에는 눈길도 한 번 안 주었는데,
육 교시 체육 끝난 여름날이면 제법 인기가 많아졌었다.
물론, 나도 그 가운데에 입 벌리고 서있었지.
풍향 조절하는 회색 끈이 끊어져서 보고 싶은 것도 못보는 너는
땀 찔찔 흘리면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 꼴이 퍽 웃겼을 거야.
그동안 참 수고 많았어.
교실의 뒷구석, 파란색 쓰레기통 바로 옆에 있는 내 사물함이 보인다.
공정하고 공정하게도 번호 순서대로 지정받은 자리였는데
나는 항상 불만이 가득했지, 불만만 가득했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었어.
엄지 발가락 손잡이에 살짝 걸어 문을 열고,
발끝으로 뻥 뻥 차면서 문을 닫았지.
생각해보니 좀 미안해지네.
조금 더 오른쪽에 귀퉁이가 깨진 거울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혼자서 이 곳에서 파라노마 카메라처럼 교실을 빙 둘러보는 내가 보인다.
모두가 제 갈 길 떠나고 하나 둘씩 떠나간 빈 교실에,
나 혼자만이 여기 서 있으니까.
이제 곧 열두시, 떠나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거울 속 거기 너. 너한테 해야할 말이 있다.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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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저도 참 앞북이 대단하네요.
크흡. 졸업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