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
워낙 유명해서 설명 생략.
명(明) 태조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건국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개국공신인 유기(劉基)라는 사람이 있었다. 주원장이 유비에 비유되면 이 유기는 그 조력자인 제갈량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로 그 능력과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유기(劉基).
명(明)의 건국공신으로 건국 후에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갓 세워진 명나라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작 유기 본인은 매번 자신과 비교되는 제갈량에 대해 자신보다 못하면 못했지 잘나지는 않았다고 과소평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제갈량은 유비를 도와 겨우 천하의 한 축을 차지하여 촉(蜀)을 세우는 데에 그쳤지만 자신은 주원장으로 하여금 천하를 얻게 했으니 내가 제갈량보다 뛰어나지 않냐는 식의 논리였다.
이렇던 유기에게는 제갈량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유기가 여행 중에 과거 삼국시대 촉(蜀)의 땅이었던 사천성(四川省)을 들렸을 때의 일이다.
사천 땅을 두루 구경하던 유기는 날이 저물어 어느 절에서 하루 묵게 된다.
잠을 자는데 새벽무렵에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깬 유기는 절의 주지에게 물었다.
"웬 닭 울음소리입니까?"
유기가 묵은 절은 민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던지라 민가에서 기르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던데다 절에서도 닭을 기르는 모습은 못봤기에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었다.
주지가 답하기를,
"이 절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이 있는데, 바로 옛 삼국시대에 촉의 제갈공명께서 흙으로 빚었다는 흙닭이 그것입니다. 옛날에 제갈공명께서는 이 절에 하룻밤 지내가셨다고 하는데 이를 기념해서 손수 흙으로 빚어 만드신 닭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흙닭은 매번 새벽무렵마다 울어 시간을 알려주고는 합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유기는 그 흙닭을 가져오게 했다. 앞서 밝혔듯 평소 제갈량을 과소평가해오던 유기는 제갈량이 그런 신기한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은근히 시샘을 느끼며 한동안 그 흙닭을 살펴보다가 대관절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신통하게 매번 시간을 알리는지 궁금해진 나머지 흙닭을 바닥에 내팽개쳐 깨버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특수한 장치가 나오기는 커녕 종이 두루마리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두루마리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다섯글자가 적혀있었다.
'유기파토계(劉基破土鷄)'
'유기가 흙닭을 깨뜨릴 것이다' 란 뜻으로 마치 제갈량이 먼 훗날 유기가 벌일 행동을 예언하기라도 한 듯한 내용이었다.
유기는 신기해하며 자신도 흙닭을 만들어보았지만 제갈량이 만든 정확히 새벽에 시간을 알리는 흙닭과는 달리 밤낮으로 울어댈 뿐이었다.
이 일로 유기는 제갈량의 능력을 높이 사 평가를 달리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래로 치부하고 있었다.
다음날 유기는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武候祠)에 들렸는데 무후사 앞에서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말에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후사(武候祠).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다.
사람들이 말에서 내리는 이유는 사당 앞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라고 하는 비석 때문이었다. 하마비 한자 뜻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말에서 내리게 하는 비석' 이란 뜻으로 대개 임금이나 성현, 명사, 고관 등의 인물들의 무덤이나 사당을 지나갈 때 그들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모두 타고있던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무후사 앞에서 말을 멈추고 내려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본 유기는 또 새삼 제갈량에 대한 시샘이 들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말을 타고 통과하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타고 가던 말이 멈추더니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말발굽을 붙잡아 놓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리 이끌어도 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기는 말에서 내려 말발굽이 내딛고 있던 자리를 파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는 흙닭에서 나온 종이 두루마리마냥 두루마리가 나왔다.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은 마치 누군가가 유기를 훈계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때를 만나면 하늘도 함께 도와주어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만 운이 없으면 제아무리 영웅의 계략이라도 들어맞지 않는 법이라오.'
흡사 후세에도 그토록 칭송받는 제갈량이 천하를 얻게 만든 자신에 비해 고작 삼국 중 한축을 차지하는 것에 그친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에 대해 깔보던 유기의 속내를 제갈량이 읽기라도 한듯 겸허히 타이르는 듯한 말이었다.
유기는 그동안 건국공신이랍시고 떠세를 부리고다닌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를 찌르는 제갈량의 신통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져 그길로 무후사에 들어가 참배한다.
참배를 마친 유기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갈량의 묘소였다.
그러나 유기의 눈에는 그 뛰어난 제갈량의 묫자리 치고는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제아무리 뛰어났던 제갈량이었다지만 풍수에는 영 어두웠구나 하며 묘소에서의 참배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끓고 있던 무릎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당황한 유기는 시종을 시켜 그 자리를 파보게 하였는데 이번에도 두루마리가 나왔다.
글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충신은 주군을 떠나지 않는 법이라오.'
'사기캐인 내가 어찌 풍수를 모르겠냐 다만 주군의 곁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러니 자꾸 깝 ㄴㄴ' 라고 말하는 제갈량의 모습이 선한 유기였다. 이걸 본 유기는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전무후무제갈무후(前無後無諸葛武侯)."
말그대로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 일을 계기로 유기는 지난날 제갈량을 깔보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나아가서는 건국공신이랍시고 펑펑대지 않고 조용히 겸허한 태도로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