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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정신없이 쓴 글
게시물ID : freeboard_13368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赤ティン
추천 : 1
조회수 : 1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3 18:28:31

새벽 3시부터 4시 정도까지 눈물 뚝뚝 흘려가며 썼던 거 같은데
왜 새벽에는 안 좋은 일이 마구마구 생각나는 걸까
그리고 글 쓸 때 그만 띄워야 하는데
((솔직히 내가 하는 건 글 쓰는 게 아니라 인생 한탄글 휘갈기기 같다))


어지럼증


나는 나기를 그렇게 났고 내가 증오하는 그 사람에게서 났다 물론 처음부터 증오하는 심정은 아니었다
10년 전쯤 내가 입을 다문 이유는 아직 가족을 걱정했기 때문이었으며
8년 전쯤 내가 말을 삼킨 이유는 평생 볼 사촌오빠가 두려워서다
그 후로도 나는 지금껏 계속 입술을 짓이기며 목소리를 숨겼다
내가 너무도 혐오스러웠고 그 사람들이 너무도 역겨웠고 그 날 지하주차장의 그 남자가 너무도 추악했다
그래서 나는 호도했고 묵인했다
어쩌면 그 날의 나처럼 내가 한 일이 잘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애꿎은 손등을 파고들며 그를 따라나서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도.
멈춰 있다 나는.
서 있는 걸까
앉아 있는 걸까
누워 있는 걸까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까
죽어 있는 걸까
살아 있는 걸까
알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을?
물론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아직도 나는 여섯 살인 채 그때 그 아파트 그 동, 그 라인 앞의 자전거 끈 소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애석하고 나는
어리석고 나는
이제는 그 자전거가 네발이었는지, 두발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이제는 내가 그의 친구가 2층에 살았던가 3층에 살았던가, 하며 고민하면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이제는 내가 '그 일이 있은 후' 그와 2층 혹은 3층에 살았던 친구 무리를 보고 손등을 파고들며 달렸던 그 씨름장이 사라졌다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그 소년은 잘 살고 있을까
평생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 평생의 '생'이라는 것이 지구의 생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죽고 생물마저 죽고 지구만 삐걱삐걱대며 돌아가는 그때 너만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이왕 사는 거 잘 살아버려라
내게 했던 짓 하지 말고 괜히 교도소 같은 데 들어가지 말고 잘 살아버려라
그 영생을 너무도 잘 살아버려서
그 잘 사는 게 너무도 지겨워져버려서 미쳐버려라
미쳐버려라 그래 너는 원래 미친 인간이고 나를 그렇게 해먹었으니 더더, 미쳐 돌아버려라
너는 내가 겪었던 인간 중에 가장 짧은 시간으로 날 알았고 가장 길게 내게 남아 있다
너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나의 이름을 너는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불공평하다
너의 이름이 두 자일지 석 자일지 넉 자일지 혹은 그 이상일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불공평하다
나는 너 덕분에 미쳐버렸을 뿐이고 그저 흔한 어지럼증이 생겨버렸고 우울을 안고 살아간다
너는 나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무용담 하나가 늘었을 뿐이고 그저 재미난 놀이를 즐겼고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이건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고
너는 왜 나 때문에 미치지 않는가
아니 10년 전 일을 기억이나 할까
내가 그때 자전거를 탔었지, 바퀴에 동그란 것들이 우수수 달린. 하며 생각이나 할까
넌 나를 생각이나 할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간 잊고 지내왔다 너를, 그 일을, 주차장을
하지만 재작년 그 아파트 주자창 입구를 보고 어지럼증이 심해졌고 토기가 쏠렸다
아무 변기에나 가서 게워냈다
몸은 게워졌는데 왜 머리는 다시 떠올려냈을까
10년 주차장 수영장 내 친구 모래 리본 분홍색 자전거 저녁 전화 거짓말 폭탄 가족
-다 죽을 거야.
-정현이요? 집으로 잘 돌려보냈습니다.
당신은 모른다
집에 있었던 당신도 모르고
그저 날 버스에 태워 보냈던 당신도 모른다
그래 이 일은 나랑 그 소년 빼고는 모르는 거야
그의 어설픈 협박에 내가 약속했으니까. 은폐하자.
아니면 폭탄이 펑, 할지도.
나는 그 날 저녁에도 내가 당한 일을 말할 수 없었고
다음 날에도
다다음 날에도
일주일 후에도
한 달, 1년, 몇 년
지금도 말할 수 없다
아마 이대로라면 평생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몸의 폭탄은 잘 살아 있을까
정말 그게 어설픈 협박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아무에게나 이 모든 걸 말하고 나는 폭파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폭파된 사실을 그 소년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10년 전 네가 설치해 둔 폭탄이 끝내 터진 꼴을 보고 뭐라고 할까
눈물 한 방울 흘리기는 할까
혀나 끌끌 차고 있을까
결국 비밀을 못 지켰구나, 하며 나를 한심하다는 듯 흘기고 또 다른 10년 전의 나를 찾으러 다닐까
10년 전 학교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며, 어쩌면 담배나 태우며 나를 추억 삼아 이야기할까
아, 그런 애도 있었지.
하며
나로
놀던
그 날을.
이 이야기의 끝은 없다
내가 죽는 날까지 이 이야기의 끝은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는 너의 얼굴도 목소리도 옷차림도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너무 늦어버렸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는데,
나만 그 여섯 살 그때 그대로라서
아무도 나를 동정해주지도 존중해주지도 알아주지도 않는다
내가 이제 와서 엄마라는, 한 때는 의지했던 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봤자
-그 때 이야기하지 그랬어.
하는 '너무 늦어버린' 반응을 들을 것이 뻔하다
나는 아직 여섯 살 그대로인데
나는 아직
너무 어린 여섯 살 그대로여서 눈물 하나 못 참고 10년 전 일 생각하며 훌쩍거리는데
세상은 나만 빼고 돌아간다
나만 빼고 잘만 돌아간다
세상은 너무 빠른데 내가 흘리는 눈물은 내 발목을 콱콱 잠기게 만들어서 나만 너무 느리다
숨을 못 쉴 것 같다
내가 한 일에 내가 흘린 눈물에 숨을 못 쉬고 있다
가끔은 숨 쉬는 방법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엎드려서 헉헉 숨을 뱉어던진다
폐에 무언가 덩어리져 있는 느낌이어서 그런 걸까
이 덩어리는 나의 어지럼증이 심해질수록 커지고 내가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릴 때마다 나를 죽이려 든다
몸만 자라버린 나를, 여섯 살 나를 덩어리와 몸의 폭탄은 죽이려 든다
내가 죽는 게 빠를까
덩어리에게, 폭탄에게 죽임 당하는 게 빠를까
어느 쪽이든 그 소년은 몸도 마음도 자란 채로 날 비웃어 줄 것이 눈에 선해 가슴 아플 뿐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었을까
글을 쓰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자꾸만 가해자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여섯 살의 내게 가해자는 네가 분명하다
하지만
너인 걸까
열여섯의 나에게 가해자는 나인 걸까
잃어버렸다
가해자를
모두가 행복해질 수는 없었을까
글을 쓰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자꾸만 가해자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여섯 살의 내게 가해자는 네가 분명하다
하지만
열여섯의 나에게 가해자는 나인 걸까
너인 걸까
가해자를
잃어버렸다
눈물이 멈췄다
숨을 다시 뱉고 생각해보니
열여섯의 가해자는 나다
가해자를
찾았다
가해자를 거울에서 찾고 나니 어지럼증이 다시 도졌다
나는 열셋의 그를 13층에서 죽였고 열넷의 내 정체성을 난도질하여 유기했다
여덟의 내 사진은 영화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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