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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음악 '정악' 에 대해 이야기 해볼게요.
게시물ID : history_279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처음그느낌
추천 : 2
조회수 : 5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24 07:51:55

얼마전에 정악 '영산회상' 한바탕 공연을 보고 듣고 와서 나름 정리해봤습니다.


줄풍류보존회에 대한 의의.


한일합방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진입하면서 음악문화는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궁중음악은 왕실의 몰락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으며 궁중음악에 종사하던 많은 음악인과 궁중연회에 참여했던 무거들은 생업을 바꾸거나 새로이 생겨난 공연장(원각사 장안사 등)에서 일반인을 위한 공연활동을 하였다. 여러 공연장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명인, 명창들이 공연이 번갈라 벌어졌으며 이 공연예술계의 주역들은 또한 신문물의 유입과 동시에 이루어진 음반취업과 방송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깊숙히 파고 드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조 중상류층에서 애호되던 정악의 전통도 크게 위축되었는데, 일부 정악에호가들은 정악을 통해 어지러운 세태를 수습하고 전통문화를 계승시키고자 하는 뜻을 세움으로서 정악전승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그 노력의 하나가 1909년에 결성된 조양구락부이다.


조양구락부는 국악에 몸담고 있거나 국악을 애호하던 10여명이 정악으 ㅣ보존과 전수를 위해 결성한 음악단체로서 주로 정악의 연주와 교육을 담당했다. 조양구락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음악기구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닐 뿐 아니라 전통음악과 양악을 동시에 교육시킴으로써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음악교육기관으로 그 업적이 높이이 평가된다. 그 후, 조양구락부는 1911년에 조선전습소로 재정비되었으나 극심한 재정난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해방이후 현재 한국정악원으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일반인들 사회에서 영역을 지키기 어렵게 된 정악은 과거의 궁중음악만을 전담하던 아악부에 의해 수렴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줄풍류 전통은 아악부 선생님들에 의해 다시 정비되어 국립국악원 외 여러 단체에서 연주되어지고 있다.


그 당시 대중들에게 보다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당시 레코드사 취입에 함께 했던 예술인들은 각자 최고의 호사로운 선율들을 구사하여 악기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녹음을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녹음되었던 풍류음악과 중주 및 독주로 되어있는 음악들을 발굴, 채록하여 음악 및 악보로 보존되어지기를 바라는 취지로 서울에 줄풍류보존회가 발기하였다.

출처 줄풍류보존회 소갯말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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