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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겨울의 흉가체험
게시물ID : panic_932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격
추천 : 6
조회수 : 336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4/25 18:58:45
지금이 4월달이니 벌써 14년하고도 5개월 전의 얘기다.
 
당시엔 호기심 천국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4명의 키작은 사내들은 골방에서 오징어포를 뜯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내 친구 세명 경훈, 지현, 무찬은 다 비슷하게 생겨 겉모습으로 표현을 할 수 없음이 한탄스럽다.
 
어쨋든 TV에서는 겨울에 맞지않게 오싹한 흉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고 한창 피 끓는 청춘이었던 네명은 각자의 생각을 내비치며 귀신이란 없다고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 중 카투사를 다녀온 경훈은 당당하게 '니네들 흑인 귀신 봤나? 옛날 흑인이 그렇게 억압 받았는데 흑인 귀신 본 사람은 한명도 없다 안하나 귀신이 어딨노 요즘 같은 세상에'
 
그 말을 들은 나머지 두명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암묵적인 동의를 했으나 무찬이의 생각은 애석하게도 경훈이와 달랐다.
 
'임마 그래도 저런 흉가에 가 있으면 니도 지릴걸. 귀신 없다고 믿는 사람치고 귀신 안무서워하는 사람 못 봤다'
 
그 얘기를 들은 경훈이는 바로 TV에서 나오는 흉가를 찾아 가보자며, 하루동안 흉가의 방에 머물면서 귀신이 나오고 안나오고에 따라 경훈이와 무찬이 둘 중 지는 사람이 탕수육을 사자고 내기를 제안했고 자존심이 센 무찬이는 바로 받아들였다.
나와 지현이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좋아라 했지만 경훈이와 무찬이의 무력에 굴복하고 굿을 직접하고 난뒤에야 떡을 먹게 되었다.
 
다음날 지갑과 간단한 소지품만 챙기고 우리는 바로 나주에 있는 한 흉가로 향하게 되었다.
 
캡처.PNG
1.PNG
 
 

길을 잃어 주변의 양로원에서 바둑을 두고 계신 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착한 집은 음산함 그 자체였다.
 
분명 흉가가 된지 오래 지났다고 했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탓인지 나름 정리는 잘 되어 있었고, 다만 천장에 곰팡이만이 이 집이 흉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훈이는 집을 보고는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폐가라 해가지고 창문도 다 뚫려있고, 쥐새끼가 바글바글 할 줄 알았드만 이래 좋은 집이면 우리 아지트로 써도 되겠다 내가 묵었던 생활관보다 좋구만'
 
하지만 겁 많은 나와 지현이는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무찬이는 탕수육을 꼭 먹여주겠노라며 하루만 꾹 버티고 가자고 기도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귀신을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가 밝은 낮에 도착한 우리는 해가 지기 전까지 밖에 구경하고 돌아다니고 밥을 먹은 뒤 다시 흉가로 들어왔다.
 
낮에 보던 집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라 가기가 매우 망설여졌지만 짜장면도 아닌 탕수육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닐 암스트롱 마냥 한 발자국 내딛였다.
 
사실 탕수육은 어떻든 상관 없었고 여기서 무섭다고 도망치면 무식한 사내놈들이 내 결혼식장에 쳐들어와서 이 일들을 까바릴게 눈에 훤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간 것임을 여러분께 알린다.
 
한창 바람의 나라라는 게임에 빠져있던 우리는 한 방에 들어가 주작, 백호, 현무, 청룡처럼 네 변방에 자리잡고 앉았다.
 
시각은 대략 밤 12시였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두시간 정도를 떼우고 나자 그 마저도 지루해져 각자 앉아서 졸기 시작했다.
 
그 중 나와 함께 겁 많은 캐릭터를 담당한 지현이는 귀신은 믿지 않지만 흉가에서 자면 혹시나 빙의가 될지도 모르고 최소한 입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며, 앉아있다가 한 시간 후에 바톤터치 식으로 한명이 먼저 다음 자리로 이동하면 터치를 받은 사람도 바톤터치를 해서 서로를 깨워주자고 했다.
 
나 (백호)  ㅁ<--------------ㅁ 지현(주작)
              ㅣ                       ㅣ
              ㅣ                       ㅣ
              ㅣ                       ㅣ
무찬(현무)ㅁ-------------->ㅁ 경훈(청룡)
 
 
우리 모두 입은 돌아가기 싫기에 그렇게 하자고 했고, 새벽 두시부터 그렇게 아침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졸린 눈으로 불침번에 충실했다.
 
경훈이는 왠일인지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귀신의 코털도 보지 못했고, 실망한(속으론 정말 기뻤던)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나서 내기에서 진 무찬이에게 돈을 내라고 했는데, 경훈이는 폐가에서 나온 뒤로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내는 것이 맞다고 했다.
 
'다들 지현이가 얘기한대로 구석에 앉아있었던거 맞제? 그러면 지현이가 니를 깨우고 니는 무찬이를, 그리고 무찬이는 내를 깨우는게 맞다아이가. 그럼 내는 누구를 깨워야되노'
 
나랑 지현이랑 무찬이는 '임마 당연히 지현이 깨워야지' 라고 대답을 했다가 경훈이의 말을 들은 우리는 새파랗게 질렸다.
 
'지현이는 백호 자리로 갔는데 분명 주작 자리에 앉아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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