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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내재하는 배타성과 위험성
게시물ID : religion_13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00
추천 : 14
조회수 : 644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1/02/13 22:50:13
1. 머리말

이 부분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유에 올려진 어느 글타래에서 기독교의 배타성에 관해 기독교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모든 종교가 배타적이라고 하였다.

소위 말해 우물에 독을 푼 것이다.

내가 마시지 못할 물이라면 누구도 마시지 못하게 해버리는 것을 ‘우물에 독을 탄다’라고 하는데 

양비론의 확장판으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쟁점이 자신에게 분리하다면 그 쟁점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논해지고 있는 사안 자체가 본질적으로 더럽다거나 불의하다거나 원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종교란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예의 전형이다.

종교란 모두 하나 같이 비현실적이기 마련이라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 등도 그러한 예의 하나이다.

즉, 정도의 차이 따위를 무시하고 회색이나 검은색이나 더럽기는 매한가지라고 하는 셈이다.


처음엔 그 대화를 점잖게 끝맺었으나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다.

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2. 기독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기독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주목하고 싶다.

a. 기독교의 배타성

b. 독재적 조직체계

c. 불투명한 재원관리
이 세 가지 중에서 오늘은 기독교의 배타성에 관해서만 적으려 한다.


3. 기독교의 배타성

나는 감히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를 부정하고 사찰에 불을 지르며 불상을 깨뜨리는 행위는 ‘일부’ 기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교리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이다.


a. 원죄론과 구원론

먼저 원죄론에 관하여 적어 보자.

원죄론이란 인간은 본래 타락한 죄인이란 의미이다.

신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 그들은 순수하였고 죄를 몰랐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뱀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취함에 마침내 선악과가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했고 그들의 순수성을 파괴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타락했고 그 타락성은 인간 본성에 자리하여 영구히 지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다.

(의문점 -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뱀이 유혹할 때 ‘그걸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지기에 하나님이 너희를 속였다’고 했고 이 말을 하와가 믿고 아담에게 권하였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기도 전에 이미 그들 맘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자리했는데 어째서 선악과를 먹기도 전에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있었음에도....)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도 부연된다.

완벽한 선 그 자체인 여호와가 볼 때 단지 예쁜 여자를 보고 성욕을 느낀 자와 세기의 연쇄 살인마는 모두 구제받지 못할 죄인이다.

원죄론이란 교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만들어진 것이다.

법이 법전 그 자체일 수 없듯이 교리란 본래 성경 그 자체일 수 없고 성경 해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 사고의 산물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원죄론이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말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신약과 예수의 사상은 구약의 주인공, 즉 유대인들에 의해 버림 받았다.

로마의 국교가 된 후에야 비로서 찬란한 기독교의 역사가 열린 것이다.

서양인들의 철학적 이성적 사고 기반은 주지의 사실과 같이 그리스 철학이었으나 히브리즘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한 마디로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하는 것들이 모두 이단자였고 그들 사고의 산물은 모두 성스러운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성경을 연구하고 의문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적 활동이 요구된다는 사실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낸 철학적 결과물들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이 받아들여졌고

은근 슬쩍 교부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교부철학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교부철학의 가장 큰 성과물이라면 바로 원죄론과 구원론일 것이다.

이렇게 원죄론이 태어났다.

물론, 원죄론이 한낱 인간 사고의 결과물이란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어느 대목을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읽을 것인지(예수가 명한 살인 명령 등은 대부분 비유적으로 읽듯이..) 어느 부분을 강조할 것인지에 따라 수많은 교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받아들였다가는 성경 자체가 인간에 의한 기술이란 공격까지 받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목사들이 말하기를 성경은 인간이 아닌 인간 속의 성령에 의해 기술된 것이고 

교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성령의 은총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원죄론은 만들어진 것이다.


원죄론은 기독교 배타성의 중심에 서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신약의 핵심을 이루는 구원론의 토대를 만들어준다.

구약시대에 하나의 죄는 하나의 제물의 피로 씻길 수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는 이러한 기회를 유대인에게만 허용하였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가계도가 기술되어 있는데 모조리 유대인들 뿐이다. 철이, 순이, 금자, 말자는 없다. 다른 민족들은 대체 어디서 생겨났는지 참으로 궁금하기 그지 없다.)

이유는 유대인들의 선조인 아브라함 등이 강한 믿음(아들을 죽이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제단에서 찌르려 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와 너의 자손이 구원받으리라’는 약속을 받는데 이것이 구약이다.

구약을 믿는 것이 바로 유대교다.

(이렇게 약속한 여호와는 이후 그의 자손 중 단 한 번이라도 다른 신에게 눈길을 주거나 여호와를 의심하는 자가 나오면 그 즉시 즉각적으로 죽였다.

그래도 설명되기를 그들은 그렇게 죽었어도 구약에 따라 사후에는 구원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의 구세주 예수가 탄생한다.

예수는 신약을 제시하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완벽한 신이지만

또한 완벽한 인간이다.

완벽한 인간이란 의미는 인간의 오욕칠정을 모두 느낀다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에 내재한 원죄를 깨뜨린 유일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제물인 것이다.

흠 없는 어린양.

그런 그가 죄가 없음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이것이 다시 없을 위대한 제사다.

그 제사는 전 인류를 위해 드려졌다.

그래서 전 인류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는 씻어졌다.

그러나!!!!!

이 혜택을 받으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과 그가 우리 죄를 위해 죽었음과 그가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믿으면 구원이란 구원론이다.

그럼 착한 사람도 안믿으면 지옥 가는가?

그렇다!

앞서 기술한 원죄론을 생각하라.

인간은 모두 더럽고 더러운 죄인이다.

그러므로 원래 지옥갈 수 밖에 없었다.

절대 절대 인간은 착할 수가 없다.

완벽하게 착하면 천당 가는데 인간은 조금 착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착하지는 않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면 다 죄인이고 지옥가야 한다.

구원의 조건으로 ‘회개’가 덧붙여지는 이유도 원죄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원죄론은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론의 밑바탕이 된다.


b. 유일신 사상과 절대주의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물음에 답하기를 ‘나는 여호와다’라고 하였다.

여호와란 ‘스스로 존재하는 자’를 뜻한다.

여호와가 율법을 내리기를 ‘나 이외의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하였고 다른 모든 신을 섬기는 제단과 그 신자를 척살하고 재물을 갈취하며 아이와 여자는 취하라 하였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한편 그 시기 이집트인들 등 각 민족은 모두 저마다의 신을 섬겼다.

이런 신들의 존재는 구약에도 나와 있으며 그들이 형이상학적 권능을 부렸다는 사실도 기술되어 있다.

물론, 여호와의 권능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후세에 성경이 해석되면 교리가 만들어지기를 신은 여호와가 유일하며, 그는 절대자이다.

이것이 바로 유일신 사상이다.

신은 절대자이다.

절대자는 둘일 수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유일무이한 유일신이다.

이러한 사고는 예수의 존재에도 부연 설명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신이라면 신은 둘인가?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하는 성령은 신인가?

신이다!

그렇다면 신은 셋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셋은 하나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령인 성령은 하나다!

바로 삼위일체론이다.

삼위일체론 역시 만들어진 교리이다.


c. 기독교의 배타성

만일 여호와가 유일한 신이라면 그 이외의 형이상학적 존재들은 무엇일까?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닌 형이상학적 권능을 가진 존재들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사탄, 마귀, 악마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자체가 가진 공격성이며 배타성이다.

기독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는 어떠한가?

알다시피 신약을 맺지 않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도 죄인이다.

죄의 차이로 보자면 타 종교 신도들이 더더욱 쳐 죽일 자들이지만 기독교적 절대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두 ‘악’일 뿐이다.

뭐, 어떤 자들은 전도의 여지가 있는 무신론자들에게 ‘악’이란 표현까지 쓰기를 거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소신일 뿐이다.

일례로 그들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기라도 해보라.

그들은 당신이 ‘악인’임을 쉽게 인정해 줄 것이다.

물론, 당신이 악인이 되기 위해 다른 신을 모실 필요도 없다. 그저 하나님만 부정하면 된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에 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악’이다.

그래서 지옥에 간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악’이 씻어진다.

그래서 천국에 간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에는 ‘우리가 아닌 너희는 악이다’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d. 흔히 인용되는 기독교적 배타성을 표상하는 구절들... 
( 성경 버린지가 오래라 서울대생들의 개독교 폭풍연타란 글에 정리된 구절들을 가져왔습니다.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ligion&no=1335&page=1&keyfield=&keyword=&sb=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몸소 앞장서 건너 가셔서
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없애 주시고
너희로 하여금 그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야훼의 말씀을 따라
너희의 앞장을 서서 건너 갈 것이다. 
야훼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그들의 땅을 해 치우시고
쓸어 버리셨듯이 그들도 해 치우실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 주시거든
너희는 나에게 받은 명령대로 어김없이 그들을 해 치워야 한다."
(신 31:3~5)

"여호수아가 이들 원주민을 조금도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친 까닭은,
주님께서 그 원주민들이 고집을 부리게 하고,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전멸시킨 것이다."
( 여호수아 11:20[표준])

"네 야훼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야훼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필경 그것을 얻고
그들의 각 성읍과 각 가옥에 거할 때에"
[신명기19:1] 

"너희는 너희 신 야훼가 너희에게 넘겨주는 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을 가엽게 보지 말고 그들의 신 을 섬기지 말아라."
[신명 7:16]

"네 야훼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 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야훼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야훼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야훼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신명기20장 13절~17절]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수아 11장 6~14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 버렸다."
(여호수아 6:21)

"광야 벌판에서 이스라엘을 쫓던 아이 주민은 그 광야 벌판에서 다 죽었다.
그들이 한 사람 남김없이 칼날에 쓰러지자 온 이스라엘은 아이로 돌아가
그 백성을 도륙하였다."
(여호수아 8:24)

"그들은 그 날로 그 성을 공략하고
주민을 칼로 무찔러
숨쉬는 것이면 하나도 살려 두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이렇게 라기스를 해치운 것처럼 해치웠다."
(여호수아 10:35)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성들에서 취한 전리품과 가축을 마음대로 가졌지만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칼로 쳐 쓸어 버렸다.
이렇게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은 하나도 살려 두지 않았다."
(여호수아 11:14)

"그 때에 여호수아가 출동하여 산악지대에서 아나킴이라고 하는 거인족들을 전멸시켰다.
유다 전 산악지대에 있는 헤브론, 드빌, 아납
그리고 이스라엘 전 산악지대에서 그들을 전멸시켰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성읍째 없애 버렸다."
(여호수아 11:21) 


4. 기독교의 배타성 변화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말했다시피 교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

물론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거부한다.

애초에 프로테스탄트가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올 때 원리주의(성경대로 하자는 것)를 표방하였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웃긴 것은 카톨릭에서 분리되기 전까지는 카톨릭과 기독교가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취하고 있는 많은 교리가 카톨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현재 그들은 카톨릭의 교리가 성경 그 자체가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이 취하고 있는 교리 중 상당 부분은 카톨릭 철학자들 사고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카톨릭은 anonymous chritian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 가운데도 자의로 예수를 거부하고 욕한 자가 아니라면 ‘선’한 자가 존재하고 그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는 정면으로 비판한다.

성경의 ‘말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부터 풀어보자.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적 교리를 고안하는 도구로 작용하였음은 앞서 적은 바 있다.

그리스 철학의 두 대표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으로 대표되는데 이데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좀 다르게 보았다.

책상의 쓰임새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상의 이데아는 현실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만지는 책상들 속에 조금씩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상을 보고 이데아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쇼콜라 철학자들(수도사들)에게도 들어갔다.

그래서 보편논쟁이 시작됐다.

보편논쟁에 대한 설명은 던져버리자.

중요한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이 신학 속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자들은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신을 인지할 수 없고, 그를 판단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을 믿는 이상 비록 반대되는 입장에 선 자들에게도 본질적으로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성경을 보다보면 모순되는 구절들이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고 하고서 여호와 자신이 직접 죽인 자들이 부지기수로 수천에 이른다.

이것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절대선이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가 절대선이라는 것, 그래서 그가 명한 것이 모두 옳다는 것 뿐이다.

설혹 그가 이교도를 죽이고 유대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 모두를 지옥에 보내버렸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을 왜 불완전하게 했는가?

판단하지 말라. 신이 했기에 옳은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받아들인 신학자들은 좀 다르게 봤다.

물론, 근본적으로 신의 이야기는 모두 선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가 이성을 통해 판단해도 좋다.

우리는 선을 인식할 수 있다.

선은 신이 만든 세상 속에 녹아 있으며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 준 이성을 통해 신이 만들어 둔 언어와 세상을 인식해 선에 도달할 수 있다.

성경의 문구를 해석하고 잘못된 교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

신이 절대자라는 사실 때문에 ‘신은 이래야 한다 혹은 저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신을 한정짓는 신성모독이 아니다.


자! 이런 흐름이 신학 내에서도 자리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오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이 과실인 교리들을 기독교도 취하고 있다.

원죄론, 구원론, 유일신 사상 등이 모두 그 과실이다.


그런데 이제 카톨릭은 이성적 사고를 통해 익명의 크리스챤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카톨릭이 다른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것을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한다.


재밌는 것은 기독교가 유대교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유대교는 신약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유대교는 구약을 받은 민족이기에 구원 받는다.

신약이 구약을 파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방 세계가 이스라엘과 친할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약을 받은 유대교,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에 한해서이다.

다른 종교는 모두 사탄과 마귀를 섬기는 집단이며 악 중에서도 극악한 집단이다.

묻노니 기독교인들 중에서 성경을 자기 힘으로 읽고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교리를 만들어 본 자들이 있는가?

자신이 믿고 있는 교리가 성경 말씀 그 자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성경에 나와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교리는 어떤가?

교리도 성경 그 자체인가?

교리 역시 무조건적으로 믿으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 있던가?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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