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유를 통해 시사 흐름을 익히고,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데 오유의 도움을 크게 얻고 있는 눈팅 회원입니다. 그래서 최근 여러 가지 대선 이슈에 불안해 하기도 하고 경계하기도 하며 가족들에게 투표할 것을, 문재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독려해 왔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한동안 만나지 않던 벗들과 자리를 함께했는데요, 의외로 대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고 있어 적잖이 놀랐습니다. 저를 비롯해 제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진보적 사회관을 갖고 있고 평소에도 진보 정당을 지지해 왔기에 사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만... 문재인 후보의 압승이 아니면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그의 계획이 처음부터 힘을 받기 어렵지 않을까를 걱정하던 제게는 이 시점에서 그들이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동차 안애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인지 평소엔 하지도 않던 sns 속 지인들의 생각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이곳 역시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문재인 후보를 비판한다거나 투표 인증 사진에 도장을 다섯 개 찍은, 혹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인증 사진을 찍은 사람이 너무 많더군요.
약간 머리가 띵해져 그들의 소식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토론 중 동성애 관련 홍준표 후보의 공격에 문 후보가 "반대하죠"라고 답한 장면에서 크게 실망을 했더군요. 저도 토론회 보다가 놀랄 정도였으니 저보다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수도 있겠죠. 아마도 당사자인 성 소수자들에게는 그들의 말처럼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운 후보에 대한, 또 믿었던 후보에 대한 실망감이 격렬하게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이라든가 이라크 파병의 문제로 시위에 함께하곤 했던 사람들이니 이른바 "신좌파"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를 가장 세게 맞은 듯한 글귀는 문재인 후보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시점에 성 소수자들의 극단적 행동은 전체 흐름에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세월호 참사 때문에 이렇게 오래 의문을 제기하고 발목을 잡는 것은 국가의 전체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한 지인의 말이었습니다. 두 명제에 다른 부분이 분명 있겠습니다만 여러 가지로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성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여 그들의 아픔을 너무 쉽게 여긴 것은 아닐까, 나는 세월호 참사로 가족 잃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깊이 공감하지 못하여 그들의 아픔을 손쉽게 잊어버린 사람들과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내가 왜 문재인이 대통령 되기를 원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그가 이 나라의 적폐를 뿌리뽑고 더 나은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데 적임자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를 지지하기로 한 이유는 그가 해내리라는 "믿음"인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믿음이란 종교적 신앙과 다름 아닙니다. 나는 어쩌면 그를 종교적 신앙의 형태로 믿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믿기에 더 기대고 싶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게 되고요. 물론 이 "신앙"에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고, 제게는 그 선택지가 2~5번이 아닌 1번이었던 것이겠지요. 여전히 심상정 후보가 저의 이 종교심과 같은 신앙을 만족시켜 주리라는 믿음은 들지 않기에 제 믿음이 5번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문재인도 안철수도 유승민도 심상정도 사람이기에, 이들이 저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토론회에서 홍 후보의 공격에 대한 문 후보의 답변은, 짧은 제 생각 안에서는 표를 가장 적게 잃을 수 있는(묵직한 공격이었기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공학적 선택지였다고 봅니다. 압도적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합한 답변이었다고 보고요. 그러나 그 말이 "정의로웠는가"를 생각한다면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을 신앙하지 않으려고요. 기대하되 그가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가 가야 할 길을 잘 가고 있는지 늘 지켜보고 잘못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려고요. 무엇보다 제 자신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를 늘 돌이켜 보려고요. 정의는 저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열어놓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데 어떠한 정치적 선택이 옳은지를 늘 고민하려고요. 설령 인간 문재인이 변해도, 그가 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 봅니다.
늦은 밤이라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는데요, 저랑 같은 생각 다른 생각 가지신 분들과 생각 나눠보고 싶어 긴 글 적어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