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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 응급실이야기를 쓰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입니다. 응급실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갈래에 선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현장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응급실이 어떤 공간인지 알리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멀어 보이는 시민과 의료진 사이를 이어주는 따듯한 소통의 장이 되리라 꿈꿔봅니다.
며칠 전부터 10여 편으로 이어지는 응급실 이용 팁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6월 출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응급실 이용 팁 보강을 위해 고민하다 주제를 정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제는 응급실에서 자주 만나는 질환인 바이러스성 간염, 간경변증, 간암과 알코올성 간질환에 관한 내용입니다. 쿠키건강 TV라는 채널에서 데일리 건강 83회 방송 출연했던 스크립트를 기반으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응급질환에 대해 알아두시고 응급 상황이 되기 전에 미리 위험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보통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 간경변증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이 질환군의 특징이라면 그 원인이 명확하면서도 강한 중독성 때문에 쉽게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 경제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는 분들, 예를 들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퇴직 후에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노숙자가 되신 분들이나 농촌에서 어렵게 논일 밭일하시는 분들. 이분들이 스트레스 해소 삼아 들이켰던 술들이 길게 이어지면서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그렇다 보니 치료에 필요한 비용 문제에도 취약하고, 치료를 한번 받아서 건강을 되찾았다 하더라도 다시 술에 노출되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저희 장인어른도 술 때문에 고생하시다 그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분 집안에 없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참 심각한 문제거든요. 물론 외국에서도 알코올성 간질환이 문제가 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현상을 보이는 건, 잘못된 음주문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소주,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라는 칼럼으로도 한번 같은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만연해있는 희석식 증류주인 소주, 이게 순도 95% 짜리 주정을 만들어서 물에 타서 감미료 섞어서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보니 원래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쌀이나 원료의 향이 남아있는 증류주는 거의 사라지고 알코올에 물 타서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주가 대세가 되는 거거든요. 그럼 한 잔 두 잔 향을 음미하면서 마신다는 개념이 없어지는 거죠. 술이라는 건 항상 싼 맛에 취할 때까지 거하게 마셔야 되는 거고, 그게 우리 사회의 당연한 음주문화가 되어버렸죠. 회사에서 일과 후에 이어지는 회식도 마찬가지가 되는 거고요.
게다가 7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거의 완전히 말살당했던 전통주가 90년대 들어서 다시 제조되기 시작했지만 주세법 면에서나 주조 규모나 판매방식 면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시스템을 전혀 깨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알코올 간질환 환자들을 위해 기업에서 만들었던 카프 병원도 지금은 지원이 끊겨서 문 닫은 상태이고요. 이게 신경 써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현실인데 많은 분들이 이 현실을 좀 아시고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를 양산하는 음주문화를 바꾸는 노력에 참여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코올의 역기능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알코올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지요. 소량의 알코올이 건강에 도움된다는 보고가 있잖아요? 근데 그 양이 우리 음주문화에서 보면 아주 소량입니다. 보통 남성에서 맥주 두 잔, 여성에서 맥주 한 잔 얘기하거든요. 와인도 마찬가지죠. 그럼 그 원료인 보리나 포도에 들어있는 항산화 물질들, 알코올의 혈행 개선에 도움 주는 부분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응급상황이 생기는 합병증이 참 많습니다. 갑자기 다량의 술을 마시면 다음날 머리 아프고 구토하죠? 이런 알코올성 위염에서부터 간수치가 올라간 걸 확인하고 입원 치료받게 되는 알코올성 간염까지는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음주로 간경변증으로 넘어가면 무서운 합병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합병증이 식도정맥류 출혈이죠. 간경화로 인해 부풀어 오른 식도 주위 혈관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합니다. 심지어는 세숫대야만큼의 토혈을 하면서 심정지 직전 상태로 도착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간의 암모니아 대사 능력에 장애가 생겨서 약간의 고기를 먹고도 바로 의식장애로 빠져버리는 간성 혼수도 무서운 질환입니다. 알코올성 경련으로 간질발작을 하고 응급실에 오셔서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고, 치료를 받다가도 알코올성 정신병이 생겨서 개미가 기어 다닌다고도 하고 죽겠다고 자살시도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술만 마시고 식사를 안 하는 일이 며칠 지속되면 알코올성 케톤 산증이라는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부정맥으로 급사가 가능한 상태라 아주 무서운 질환입니다. 술이 열량을 가진 물질이다 보니까 술만 마시고 다른 식사 안 해도 당장 문제가 없긴 하죠. 근데 그러다 보면 술이란 게 액체로 되어있지만 몸에 들어가면 수분을 더 배출시키게 됩니다. 탈수가 된다고 하죠. 보통 소주 기준으로 마신 양의 7-8배 정도 물을 더 보충해야 탈수를 방지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요. 그런 과정 없이 술만 마시게 되면 몸에서 심한 탈수로 인해 세포 내 대사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결국 일반적인 당 대사가 아닌 케톤을 만드는 대사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케톤이 산성 물질입니다. 몸에 있는 혈액이 점차 산성으로 가면서 호흡부전이나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술만 마시고 식사 안 하는 시간이 3일 이상 지속될 때는 지체 말고 환자를 응급실로 모셔 오셔서 수액으로라도 수분 보충을 해줘야 합니다.
이런 상태를 무사히 넘기고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몇 년 지나게 되면, 걸음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지내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다른 말로 베르니케 신드롬까지 진행되는 경우를 봅니다. 비타민 B1 부족에 의해서 소뇌 주위에 있는 제 4 뇌실 주위 세포가 파괴되면서 걸음을 못 걷고 주저앉아만 지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입원해서 비타민 주사를 며칠간 해주는데 안타깝게도 호전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슷한 질환으로 알코올성 치매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치료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금주가 최선의 치료입니다. 근데 그게 가장 어렵다는 게 문제겠죠. 중독성이 큰 물질이니까요. 그래서 주위에 정신과 병원을 통해서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환자가 거부하더라도 도움받기를 미루지 마세요. 당신의 소중한 한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워 처음엔 거부하겠지만 치료를 마치고 나면 환자도 고마워하게 될 겁니다.
그 외에는 그때그때 응급상황에 대한 치료가 필요할 겁니다. 토혈이나 검은 변이 발생했을 때 바로 응급실로 오셔서 식도정맥류 출혈인지 확인하고 응급수혈과 응급내시경을 통해서 지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간성 혼수가 왔을 때엔 듀파락이라는 암모니아를 체외로 빼내 주는 약물을 이용해서 치료받아야 하고요. 경련 발작이 발생했을 땐 항경련제를 쓰면서 중환자실에서 다시 경련 발작하지 않는지 세심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알코올성 정신병 상태도 본인과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높으니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알코올성 케톤산증은 다량의 수액치료와 함께 혈중 산증 상태를 급히 조절해서 일단 사망을 막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다음은 입원해서 수액치료로 탈수 상태를 교정하게 됩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과 알코올성 치매도 비타민 보충을 위해서 입원해서 수액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서 알코올성 간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은 단연코 없습니다. 일단 술로 인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당장 금주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도 다량은 아니지만 약간의 음주는 피할 수 없다면 소주 마시는 양의 7-8배 정도 되는 충분한 수분 보충과 가능하면 낮은 도수의 술을 마시는 것. 그리고 저급한 증류주보다는 향이 있는 좋은 술을 소량 즐기는 음주 문화의 변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출처 | http://csj3814.blog.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