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져질 듯 농도가 짙으며 칠흑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그곳엔, 이따금 알록달록한 불꽃이 어둠을 연료삼아 일렁이다 사라졌다. 그게 내가 사유하는 방식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에너지를 지녔으며 추상적인 개념과 생각들을 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흙장난을 하듯, 논리적으로 쌓아 올리고 또 허물며 놀았다.
이게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아주 어릴 때였다. 불꽃을 이야기할때의 엄마의 표정. 나는 그 이후로 엄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언제부터 내가 그곳에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어느 순간부턴가 존재했을 뿐이다.
그곳은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 바깥으로 통하는 조그만 통로가 있으리라는 걸 난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람 냄새였다. 이따금 어둠에 바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가끔은 가을 벌판의 강아지풀과 따가운 햇볕 냄새가 났고, 가끔은 밤바람에 스치는 나뭇잎과 그 안에 웅크린 새의 냄새가 났다.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그것들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언어를 이해했고 또 그리워했다.
홀로 잠드는 날이면 바깥에 대한 상상을 했다. 그곳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풍마저 아름다운 곳이리라. 하지만 나는 어둠 속 이곳을 나가는 길목 어딘가에 웅크려 있을 괴물이 두려웠다, 아니 나는 바람이 두려웠다.
여기서 눈치챘는지? 그래, 나는 이미 바깥에 나간 적이 있다.
나가기 위해선 핵심적인 기억을, 그러니까 출구까지의 길잡이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의 안에 있었으니까. 켜켜히 나를 둘러싼 어둠은 마치 식충식물의 소화액처럼, 내 기억을, 그리고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으며, 거대한 에어백처럼 나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