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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 세대에게 문재인 영업하는 방법
게시물ID : sisa_9237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은아
추천 : 2
조회수 : 8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08 10:46:36
이 글은 60을 바라보는 나이 육바사인 제가 이번 선거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어떻게 하면 문재인의 득표율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올리는 글입니다. 영화 친구에서 이미지 한장 모셔왔습니다. 영화 친구의 대사를 인용하면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영화장면 속 시간흐름과는 다소 다를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 있지만 특히 저처럼 대구경북에 사신다면 경우의 수에 다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영화포스터에 있는 문장입니다. 영화 친구는 제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리얼하게 본 영화일겝니다. 시대배경은 저의 고등학교 시절 몇 년 뒤인 1980년대를 주 시대로 다루고 있지만 영화 속 교복, 가방, 머리스타일 등 모든게 그 시절의 향수를 가져다 주는 것 이니까요. 포스터 속 정상택(서태화 분)의 교복 목깃 안에 다는 흰색의 까리한 카라는 정신을 잡아주는 지주대와 같았다는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저 시절 머리에 쓰는 군대식 모자는 교복바지의 먼지를 터는 멋진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간날 때마다 문질러 바지가 번들거리곤 했죠.

이제 저로 봐서는 형님 뻘 되는 세대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 그들은 뭉퉁거려 '산업화의 역군'으로 불리던 세대입니다.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던 해방후 그 시기는 다른 무엇보다 하루 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였습니다. 이승만 하야 후 2공화국 시절은 엄청 혼란한 시대였던 것은 확실한 것 같구요, 아시다시피 그 틈을 이용해 '516쿠데타'가 일어났던 것 이었는데 그 이후 박정희는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4차에 걸쳐 대대적으로 밀어부칩니다. 선도산업을 발전시켜 후방산업을 따라오게 만든다는 '불균형성장론'을 기반으로 한 건데요. 낙후된 국가에서는 아주 잘 먹히는 정책이었습니다. 광과 과는 안철수처럼 사용하는게 아니고 이럴 때 사용하는 겁니다. 과오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이 큰 해악을 끼친 것이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만은 안희정도 인정한 것처럼 확실히 그 공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론 이런 사념도 합니다.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 정도 못했겠냐?'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그럴 순 있다. 그러나, 과거는 이루어진 역사이고 지금 하는 사념은 가정이다' 라고 전 결론을 내립니다.

산업화라는 측면에서는 공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서 저지런 그의 죄 너무 크다는 점을 전제임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그 시절 경제개발에 허리끈 조아매고 '잘 살아보자'는 기치아래 온 청춘을 바친 세대입니다. 그러다보니, 박정희시대는 본인의 들의 시대가 자연히 '동화'가 되어온 겁니다.일종의 '스톡홀름신드롬'과 비슷한 마음가짐일 겁니다. 그러니, 박정희기 죽고 시대가 바뀌어서 그 시대의 진실을 알리는 정보를 접하게 되더라도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잘 먹고사는 이유가 누구때문인데 하게 되는 겁니다. 나쁜 의미로서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는 일체화가 있었던 겁니다. 조금 더 내밀하게 살펴보면 그 일체화 속에는 나의 삶이 이제와서 부정되는게 싫다는게 마음이 녹아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겁니다.

  
괘안타(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홍준표 얘기 좀 해볼까요 ? 아마도 제 세대보다 뒤의 세대들은 홍그리버드에 열광하는 나이든 세대의 생각이 참 이해하기 어려울겁니다. 당연합니다.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면 수꼴의 전형적 모습인 그에게 폭발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정신병자 수준으로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기준을 적용하면 이 부분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625를 직접 경험한 세대, 그리고 그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모시며 자라난 세대에겐 산업발전과 함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극화된 세대입니다. 그것을 안보팔이해온 세력들은 적극 활용해 온 거구요. 또 그게 먹혀들어갔던 시대였습니다. 촛불집회 당시 반대집회에서 태극기가 난무하던 집회 참가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자신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세력이라 믿어 의심치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도 자식을 가진 부모로 자식을 무척 사랑하더라는 겁니다. 자식들이 어려움을 겪지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그들에게도 있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믿음에 있죠. . 박정희에 세뇌된 그들 세대로 봐서는 촛불을 공산주의 혁명의 도구쯤으로 인식합니다. 갑갑하지만 그들의 인식수준은 그렇게 머물러있는거죠. 그러니, 어려운 그 시절과 같이 살아온 동시대의 사람, 그들의 눈에는 안보관이 확실해 보일 것 같은 사람, 돼지발정제니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친구처럼 느껴지는 동질감을 느끼는 겁니다. 이 역시 나쁜 의미로 쓰여 "갠찮다 마 우리끼리 미안한게 뭐 있노" 라고 하는 거구요.


 마이 뭇따(먹었다) 아이가,

영화 친구에서 준석과 동수는 서로 다른 조직에 몸담게 됩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패러디한 구절이기도 하죠. 준석은 조직의 룰에 따라 동수를 죽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고민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수에게 하와이에 몇년 있다 오라고 권유하지만 동수는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한마디로 거부를 합니다. 비오는 거리 준석은 차에 타기 전 피우던 담배를 던집니다. 그 짦은 순간 생각에 잠겨있던 동수는 준석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비오는 역시 비오는 거리로 나섭니다. 우산을 받쳐든 부하의 배신...순간적으로 달려든 칼잽이의 칼춤...동수는 "마이 뭇따 아이가...고마해라" 한마디 남기고 생을 마칩니다. 견강부회해보면 60넘은 나이의 세대들 중 친박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겐 친일부역자들의 소행을 명확히 알고있는 촛불민심의 논리가 칼춤만큼이나 당하기 싫은 현실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사실 따져보면 그들도 불쌍한 세대입니다. 주위환경은 온갖 비 상식적 거짓 안보논리와 산업발전의 노예가 되라는 이데올로기로 둘러싸여 우물안 개구리 모양으로 살아온 것이니 말입니다. 예전 저의 글을 통해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된 것은 박근혜탄핵을 불러오고 박정희신드롬과 친일수구세력을 실상을 오롯히 드러내게 하였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잘 된 일이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만 아마도 세뇌된 60대 이상의 세대에겐 박근혜탄핵이 대단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드러난 그 민낯을 부정할 수는 없고 그동안 나는 투철한 국가관에 의해 최선의 인생을 살아왔고 선거에서도 올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 그 믿음이 송두리째 박살나니 죽음보다도 더한 상실감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일부는 그 원심력으로 박정희신드롬에서 벗어났을테지만 대다수는 "이건 아닌데...이건 아닌데..."하고 어이없어 하다가 분노도 하고 서글픔의 나락으로 빠져 들었을겁니다. 근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내기 지지한 그 사람이 나를 버렸다는 상실감속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나의 선택은 옳다는 확증편견'을 어루만져줄 그들의 입장으로보면 속시원한 사람이 대선후보로 나타난 겁니다. 뭔가 희망이 보일듯 한 거죠. 그러니, 체념에서 벗어나 외치는 겁니다. "마이 뭇따 아이가, 고마해래이~" 누가 뭐래도 나는 저 사람 찍을란다 하는 거구요. 영화 속 동수의 "마이 뭇따 아이가, 고마해라..."가 완전한 달관의 경지라면 이건, 자기부정의 발로입니다. 그 속에는 "나의 청춘 부정하지 마라"는 숨은 마음이 있을겁니다. 그 신념이 그르든 옳든 간에요.


내가 니 시다바리(종)이가

다시 영화친구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봅니다. 고등학교 시절 동수에게 준석은 넘사벽 같은 존재이죠. 학창시절 일진짱 같은 유오성에 가려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 하다가 던진 저 한마디 "나는 뭔데? 내가 니 시다바리가?" 현실로 와서보면요. 60대 이상의 세대에겐 저런 마음을 어찌해서라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한겁니다. 영화속에서는 결국 "죽고싶나"라는 준석의 한마디에 깨갱거리지만 현실에선 박정희 친일세력의 부역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게 너무나도 중요하죠.


야, 우리 큰일났다... 너무 멀리 온거 같다... 도로 나가자.

60대로 봐서는 동생세대쯤 되는 저도 굳어지는 몸을 스트레칭하듯이 사고도 연하게 할려고 날마다 노력하는데요. 60대 이상의 세대들도 스스로 살아온 시대에 대해 되돌아보는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게 온통 '친일옹호' '독재옹호'라는 장벽으로 둘려싸여 있으니, 이게 의식화 집단화가 일어나요. 영화 친구의 마지막인가요? 회상하는 부분에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고무튜브 하나에 의지하여 해변가에서 저멀리 나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무튜브에 매달려 이야기를 하다 너무 멀리 나왔다고 느끼는 한 명이 말합니다. "야, 우리 큰일났다... 너무 멀리 온거 같다... 도로 나가자." 그러자, 옆에서 말하죠. "그래, 물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그들은 해안을 향해 고무튜브를 밀고나옵니다. 다시, 지금까지의 두서없는 글 정리해 보면요. 60대 이상 세대의 얘기로 돌아가면요. 그들의 의식도 이런겁니다.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에 빗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루먼은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의 쇼임을 알고 바다마저 세트장인 그 곳을 빠져나가고자 하죠. 그가 마지막 진실의 문에 서서 고민할 떼 트루먼쇼를 제작한 감독은 하늘에서 그에게 말하죠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 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게 없어...괜찮아 다 이해해."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가라. 그 곳은 감시를 받더라도 안전하다는 회유였는데요. 그의 답은 이겁니다. "못볼수 있으니 미리 말하죠. 굿에프트눈 굿이브닝 굿나잇". 그리고 진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딥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겐 박정희시대의 신화가 만들어 놓은 그문을 깨고 들어가는걸 보고싶지 않은 겁니다. 눈 앞에 많은 정보가 주어져 있어도 의도적으로도 그걸 집어들지 않는면도 있을겁니다. 편함...의식의 안전함..그들에겐 박정희시대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쳤는데 나의 진실도 거기에 있는데 그게 허상이었다 하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껍질 안으로 파고만 드는 거구요. 그게 편안한 거구요.


친구.jpg


자...이쯤에서요. 결론을 내죠. 어떻게하면 그들을 틀라톤이 말한 동굴에서 꺼집어내서 진실인 이데아를 보게할까요? 지금 나의 부모님을 설득하실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가 싶습니다.

우선, 당신이 살아왔던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해 볼려고 하자는 겁니다. "뭐가 그리좋아 박정희를 지지하고 박근혜를 지지하고 이제와서 홍준표를 지지하시는데예?"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부터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 이해합니다. 아부지요. 어무요. 참 고생하시고 살았심더." 토닥여 보는데서 마음을 열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제가 잘묵고 잘살기를 바라시지예?"라고 하는데서 허락을 구해닐 수 있을 겁니다. 차이마는 세대에게 먼저 다가가본다는 마음만 있으면 다양한 방법이 있겠네요. 나라를 이렇게 만든 죄는 저를 비롯한 나이든 세대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늘 부끄러워합니다. 사실, 어른이라는 존경을 받을려면 우리 세대들이 먼저 자각하는 것이 맞으나. 감나무 밑에서 감이 저절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 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언젠가는 바뀔거라 봅니다. 그럼에도, 내일 투표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아마도 마음졸이며 밤새워 개포결과를 시청하겠네요. 내일 새 희망의 나라가 열리리라 확신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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