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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택시 운전사다
게시물ID : sisa_929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정볼펜
추천 : 10
조회수 : 4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10 09: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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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우리 아빠는 택시 운전사다. 더민주 지지자이시고 한때 노짱을 아주 좋아하셨다.
내가 가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아빠의 차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수석 대시보드 위쪽에 붙여놓았던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새겨진 노란색 동그란 스티커.
코팅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 짙던 노랑이 연노랑이 되고 엄마와 내가 지저분하니 이제 좀 떼자 말할 때까지도 아빠의 지지는 제자리에 있었다.
그때 아빠는 우리 가족 앞에서 한나라당을 욕하고 이명박을 욕했다. 나는 뭣도 모르면서 아빠가 가자는 대로 서울 중심지의 참배소에서 영정사진에 대고 절을 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은 안 나지만 인파가 대단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찔끔 눈물이 났다. 만약 아빠가 박정희에게 참배하라고 했다고 생각하면, 흠 좀 무섭군.

시간이 지나 이명박이 어찌어찌 열심히 해먹은 다음 또 열심히 해먹을 박근혜가 당선됐다. 엄마랑 아빠는 다시 아침 식탁에 대고 한참 나라 걱정을 했다. 학교에 가니 친구가 여자도 대통령 한번 해봐야지 하며 좋아했다. 성별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뽑아야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뭘 몰라서 그냥 조용히 했다. 뭘 얼마나 몰랐느냐면 나는 그때 박근혜가 박정희 딸인 줄도 몰랐다. 중2였다. 엄마 몰래 방학 때 염색하고 싶은 게 고민의 전부일 때다.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트렌드였던 웰빙이 헬조선으로 훼손될 즈음 나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우리나라 이대로 굴러가도 되는 거 맞나? 내가 여자라지만 여자 대통령이라는 게 유일한 장점인 대통령은 좀 그랬다. 우리 아빠가 박정희도 아니구...

하지만 대선에서 뽑혔다는 건 어쨌든 대다수가 이명박 박근혜를 좋아했다는 소리다. 아빠의 지지는 조심스러워졌다. 아빠는 우리에게 확인이라도 받는 것처럼 박근혜를 칭찬했다.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화를 내면 왜 그러느냐며 씨익 웃었다. 솔직히 평하자면 매우 짜증나는 화법이었다. 동시에 몹시 애달픈 확인방법이었다.

어쨌든 아빠는 꾸준히 "박근혜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냐." "새누리당도 괜찮은 정당이야." "홍준표는 인간미가 있잖아." 등등의 발언으로 우리 가족을 빡치게 했다.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나는 아빠를 닮아갔다. 내가 새누리를 칭찬하자 아빠는 멈칫하다가 봇물터지듯 새누리가 왜 나쁜지에 대한 일장연설을 쏟아냈다.
이날의 교훈: 솔직하게 살자

오늘부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는 우리 가족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던 아빠의 화법이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한다. 이젠 당당히 돼지발정제를 욕해주세요 아빠.
노짱의 친구는 파란 스티커로 남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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