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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디스크 리뷰
게시물ID : humordata_17088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oyle.K
추천 : 4
조회수 : 108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5/11 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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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








혹시 그대는 인디펜던스 데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21년전, 외계인들이 떼거지로 침략해 들어와 본전도 못 찾고 탈탈 털려 나간 영화.


나는 그 영화속에서 결코 순순히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지 않을것이라는 


대통령의 연설에 크게 감명받아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비록 그는 나의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 속 대통령이었고


미국 시민권자는 아니었지만, 미국 사람인게 자랑스러웠다.


아, 그때부터였을까. 미국것을 좋아하게 된것이...



아무튼 그렇게 펑펑 울고 있을 때, 누군가 건네준 크리넥스 티슈와 첫 만남을 가졌고


이 크리넥스 티슈와는 그 후로도 오랜 친구처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와의 교감은 부드럽고, 보들보들하고, 매끄러운 손짓과도 같았다.


아,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아무튼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20년간 정보통신 기술 발전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56Kbps 전화 모뎀으로 인터넷을 하다가


1Gbps 인터넷을 하는 세상.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56Kbps 모뎀이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1Gbps 광케이블은 100미터 트랙에서 람보르기니가 질주하는것과 같았다.


실로 천지가 개벽할만한 발전이었던 것이다. 



이런 발전속에서 데이터 저장 기술 또한 빛을 발했는데,  


이제 더 이상 무식하게 큼지막하고 무거운 하드디스크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 또한 이러한 흐름에 두팔벌려 환호했다.


정들었던 나의 데이터들을 차례 차례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이동하던 날


조금씩 조금씩 가벼워지는 하드디스크를 보며 왠지 모를 아쉬움보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흥분이 몸을 감쌌다.



그러나



태양빛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는


옛 고대 이집트의 격언을 나는 뼈저리게 새겨들었어야 했다.


영화속에서 평화로운 세계를 침공했던 외계인들처럼 


어느날 새벽 클라우드 서버가 외부로부터 대규모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은 영화 속 공격보다 더 치명적으로, 잠시의 빌미를 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이뤄졌다.


영화에서는 최초 공격후 공군력의 20% 내외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했을 때 


나는 나라잃은 표정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마우스를 움직이며, 데이터들을 구조했지만 고작 3% 정도를 건져낼 수 있었고


그 마저도 일부는 큰 부상을 입은 중상자라 의식조차 없었다.


몇년을 투자하여 얻은 동서양의 희귀한 자료와 최애 자료들이 쓸려나가는걸 보며 


나는 무기력함에 빠져 이 빌어먹을 세상 다 망해버려라 하며 울부짖었다.


그날, 나도 울고 컴퓨터도 울고 크리넥스도 울었다.




자료 하나 하나를 클릭하며, 안부를 물었다.


부상병들은 하나같이 아직 싸울 수 있다며 건재함을 알렸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맥주 한 병을 들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마침 인디펜던스 데이가 방영중이었다.


최초 공격으로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등 대도시가 파괴되는 장면이 나오자


지난 밤 작살났던 데이터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아아, 외계인들이 미국 전역을 파괴했을 때 대통령의 마음이 나와 같았을까.


외계인 새새끼들...




그렇게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어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제 1시간 내로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전투기들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결전을 벌이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인류라는 단어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될 것입니다.

 더 이상 사소한 차이에 사로잡혀 있는 대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칠것입니다.

오늘이 독립기념일인것은 어쩌면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한번 자유를 위해 싸우게 될것입니다. 

전제정치, 횡포, 박해가 아닌 멸망에 대항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울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이길것입니다.

그리고 독립 기념일은 더 이상 미국뿐 만이 아닌, 전 세계가 이렇게 외칠것입니다.


우리는 순순히 어둠속으로 걸어가지 않았노라,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지지 않았노라.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갈것이고, 끝까지 살아남으리라.


자유 독립 만세!



언제 들어도 이 소름돋는 명연설에, 나는 각 잡고 텔레비전에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 전투기로 달려가는 파일럿들을 보며,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1구역에서 외계인의 전투기를 타고 출격하는 윌 스미스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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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서재에서 잠들어 있던 하드디스크가 눈에 띄었다.


2011년 8월 제조된. 1테라바이트 7200RPM.


51구역의 외계인 전투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직 멋지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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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먼지가 쌓였지만, 이건 뭐 아무래도 좋다.


접촉단자는 깨끗했고, 기판은 새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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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철갑이 씌인 하드디스크는 그 위용이 대단했다.


외계인의 포탄 서너발쯤은 너끈히 막아낼 방어력.


그 위용이 미국의 미주리 전함과도 같았다.


철갑이 300mm 수준인 미주리 전함은 요즘 전함처럼 치고빠지는 구축함이 아니다.


최전선에 서서 수천발의 포탄을 견뎌내며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방벽과도 같다.


그런 전함이 잘 보존된채로, 내 손에 들려있었다.



20170511_072954-r1Jax4blW.jpg


하드디스크에 전원 케이블과 데이터 케이블을 연결하니 언제 그랬냐는듯 잘 돌아간다.


이제 살아남은 한 줌 데이터들을 옮기고, 다른 디스크에 남아있던 자료들을 옮겨주었다.


1테라바이트 용량이 어느덧 가득 차버렸다.  불행중 다행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클라우드 서버는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만약, 망연자실해 있었다면, 한 줌 살아남은 자료조차도 건지지 못했을것이다.


파상공세속에서도 전투기들을 잘 보존해 멋지게 한 방 먹인 영화속 인물들처럼


백업 하드디스크를 유지하며 유사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금 내 데이터를 노리고 달려오는 외계인들에게


짜릿한 카운터펀치 한 방 먹일수 있으리라.


백업을 끝내며, 스러져간 그들을 추모했다.


그들은 동서양 각국에서 온 패기넘치는 이들이었고, 모두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그 생을 이어갈것이다.







나의 데이터들은 결코 순순히 휴지통으로 걸어들어가지 않을것이다.


한번 재생되어보지도 못하고 사라지지 않을것이며


당당히 살아갈것이고, 끝까지 살아남을것이다.




자유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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