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스압]내가 도타를 지운 이유
게시물ID : gametalk_3408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빵모사꽃
추천 : 4
조회수 : 77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7/05/13 15:18:56
옵션
  • 창작글
이제 도타가 없으므로 음슴체...

도타게가 아니라 겜토게에 올리는 이유는 아마 마지막에 나올 듯.



오래 전 워크로 돌리는 도타 올스타즈부터 꾸준히 해 온 유저임. 사람하고 하는 건 무서운 소심쟁이라 항상 친구들하고 봇전만 돌렸었음.

도타 2 시작되고 나서는 컴이 감당을 못 해서 한참 쉬다가, 감사하게도 컴을 바꿀 기회가 왔음. 그래픽도 그렇고 더빙도 그렇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봇전만 150시간 정도 했던 것 같음.



근데 아시는 분은 알 거임. 도타 봇은 심각한 문제가 정말 많다는 걸.

우리 팀에 있을 때는 4/8/2 정도 하는 혼돈 기사는 상대 팀으로 만나면 25/2/13을 찍고,

적일 때는 스킬 사거리를 무시하는지 같은 화면 내에만 있어도 영혼의 견제를 날리던 루나는 우리 편으로 오자마자 침묵 안 걸려도 기술을 절대 쓰지 않는 기적을 보여 주고...

내가 흐름을 잘 타서 36킬을 해도 팀 전체를 비교하면 50대 60으로 지는 정도.

해외 사이트에는 도타 봇 인공지능 문제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스레드가 꽤 많을 만큼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음.

난이도를 최고로 올리면 승 3 패 7? 기분 좋게 이겨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음. 낮은 난이도는 스킬 한 번 맞으면 우물까지 도망가는 바람에 오히려 게임이 더 늘어지니...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여느 때처럼 봇전을 하다가 숨쉬듯이 욕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음.

원래 욕 엄청 많이 했었지만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고, 거의 10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도타만 하면 욕이 그렇게 술술 나올 수가.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내가 분노만 늘어나는 것 같고 욕을 해도 화가 풀릴 리가 없으니 점점 더 화를 주체를 못 하게 됐던 것 같음.



그러던 중 외국 포럼들을 찾아보면서 봇전의 문제점에 대한 글들을 좀 읽어 봄.

ai를 좀 많이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봇전을 이길 수 없는 수준이라면 사람과 게임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함. 봇전은 이기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30퍼센트는 되는 것 같음.

아 이건 내가 할 게임이 아닌 건가 싶은 마음이 처음 들었음.

영웅하고 템 정보를 좀 보려고 나무위키에 들렀음.

초보는 하지 말라는 말이 왜 이렇게 많지. 고수 아니면 '얌전히' 다른 영웅 고르라는 말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이 때까지는 도타 하다가 열이 오르는 건 내가 죽어서, 아니면 계속 아군 봇들이 1:5를 하려다 털려서 본진이 밀려서였음.

근데 여기부터는 게임이 안 풀리면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화가 나기 시작헀음.

난 참 아무 재능도 없어서 삶이 내내 슬펐던 사람인데, 게임까지 못 하는구나 하고.

못 할 거면 그냥 때려치지 어떻게든 한 판 따내 보려고 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그리고 난 절대 사람하고는 게임 같이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음. 민폐가 되면 자괴감만 들 테니까.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봇전을 돌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음.

게임은 즐거우려고 하는 거 아닌가?

뭔가 멍해지는 기분이었음. 컴퓨터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내가 몇 센티미터 클릭을 잘못 했기 때문에, 난 즐거워야 할 게임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오만 욕을 다 하며 화를 내고 있었던 거임.

그 다음부터 도타는 정말 재미가 없었음.

오늘 오랜만에 봇전을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쉬다 왔더니 눈 뜨고 못 볼 지경임.

예전과 달라진 것 하나 없이 욕으로 숨을 쉬면서 속으로는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지 고민하다가,

망설이지 않고 게임을 끈 후 삭제를 클릭했음.

뭔가 홀가분한 기분은 아님. 이기고 지웠으면 나았을 텐데 언제나처럼 탈탈 털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싶음. 다시는 잡고 싶지도 않을 것 같음.



난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정말정말 좋아했음. 페르시아의 왕자, 고인돌, 일렉트로닉 퍼플, 재즈잭 래빗, 무장쟁패, 스카이점프 같은 도스 고전게임도 수없이 했고, 자라면서 좋은 컴퓨터를 가진 적은 없어도 되는 대로 게임을 돌리고 재밌게 놀았었음. 날 즐겁게도 했고 짜증내게도 했던 게임들은 셀 수 없이 많음. 게임은 내 추억임.

그리고 난 앞으로도 게임을 좋아하고 싶음.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잘 하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은 더 이상 필요 없음. 그 게임도 내가 필요 없겠지만.

난 재밌으려고 게임을 하고 싶지 게임을 하면서 스스로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계속 물어보고 싶지 않아졌음.

안녕 도타.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출처 그나마 있던 스팀 게임 2개 중 하나를 떠나보낸 내 컴퓨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