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오랜 세월이 흘러 건물의 외관도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고 작은 가게와 원룸이 있는 흔한 건물이 되었다.
현재 이 건물 1층은 '바보면가' 식당으로 변신했다.
2016년부터 식당을 운영해 온 오경훈(44·부산 서구) 씨는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며 가게 이름을 '바보면가'로 지었고,
변함없이 문 대통령을 응원해왔다"면서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다른 기득권에 흔들리지 말고 문 대통령이 생각했던 대로
소신 있게 국정을 운영하기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는 '바보 노무현'이었다.
패배가 분명한 부산 시장에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도전하는 등 원칙과 소신을 위해 확정된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던
노무현에게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과거>
어머님이 나서지 않으면 이 사건은 사형으로 끝납니다.
문재인 변호사에게 이 말을 듣고 나는 몸져누웠다. 한 달을 일어나지 못했다.
자식이 사형 당할지 모른다는 말의 충격은 그처럼 컸다.
...
문 변호사가 혼신의 힘을 기울인 덕분에 구속자 가족들과 학생들은 희망을 얻었다.
모든 언론과 권력이 학생들을 몰아붙일 때 변호사의 사명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문 변호사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23년이나 이어질 재야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보람이야 크지만 고생길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얄밉기도 하다.
내 남편은 말단 공무원이었다. 내가 시민운동의 길로 들어서자
문 변호사가 남편 봉급 받아서 시민운동에 쓰면 3일이면 다 없어진다고 했다.
내가 웃으며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고 하니 남에게 기대지 말고 시민운동을 하는 길을 권했다.
내가 직접 돈을 벌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문 변호사 건물 1층에 복국집을 차려서 장사를 했다.
그 수입을 시민운동 자금으로 썼다.
따져 보면 동의대 사건으로 구속된 학생들이나 도서관 진압 작전에 투입돼 목숨을 잃은 경찰관이나 다 시대의 피해자들이었다.
노태우 정부가 그런 엄혹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생각하면 정부가 잘못해 이 나라의 서민을 못 살게 구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문 변호사가 내게 한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시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이 나라는 암담합니다."
<이정이 여사님 회고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