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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봉하마을 다녀온 후기? 일기?
게시물ID : freeboard_15492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롱카롱
추천 : 1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17 14:47:29
달님이 대통령이 되셨다.
설레는 마음 한편, 노무현 대통령님이 보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 봉하마을 갈래?

운전기사에게 최대한 애교스럽게 물었다...라고 하지만, 그에겐 참으로 근엄하게 들렸으리라.

거기 쌀아이스크림 맛있잖아~ 사줄게!

쌀아이스크림이란 말에 팽그라니 돌아서서 엄지를 치켜든다.


그렇게 시작된 주말 일정.
차 검사를 받고, 문제가 생겨 17만원을 차님께 헌납하고ㅠ 우리는 봉하로 향했다.

대략 2시간쯤 갔을까?
대통령 사저에 가까워질 무렵, 우리 차는 길게 늘어선 왕복 2차선 도로 위에 멈추어 섰다.

결국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사저와는 꽤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경찰분들도 도와주셨고,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님 당선을 축하하는 노란 현수막에 가슴이 설렜다.


매번 이 곳에 올 때면 슬펐다.
이상하게 슬펐다.
이젠 분노도 희석되고, 삶의 작은 귀퉁이일 뿐인 듯 한데...이 곳에 올 때면 항상 아렸다.
 
남편은 애써 그런 마음을 지우려는 듯, 아이스크림부터 찾았다.
남자들은 그럴까?
그는 노무현을 사랑하지만, 그를 위해 울진 않았다.
분통을 터뜨리고 우울증에 시달릴지언정, 울진 않았다.
차라리 울면 덜 아플텐데.
울면 소리치는 것보다 더 후련할텐데.
이번에도 남편은 애써 담담하게 아이스크림부터 먹자 한다.

길가의 노란 바람개비.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노란 현수막.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도 도보로 꽤 먼 그 길을 마다치 않았다.

올 때 마다 느꼈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볍다.
빨리 가고픈 마음에 사람들을 가로 지른다.
다정히 걷는 부부의 모습은 오간데 없이, 경보하듯 서로 팔을 휘두르며 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공사가 시작된 마을 반대편, 논과 밭이 있던 그 곳엔 무슨 산업단지의 팻말이 있다.
변해야 할까? 
느림을 바라는 건 타지인의 이기심일 뿐일까?

아이스크림 컵을 하나씩 받아든다. 
지나가던 행인이 우리를 보며 한마디 흘린다.

아이스크림 맛있을까?

나도 모르게 아줌마 본성이 발동하여 굳이 뒤돌아선다.

아이스크림 맛있어요~

그 말에 까르르하며 인사를 하곤 가게로 뛰어든다.
많이 팔고 마을이 잘 되면 조금 느리게 가도 되려나?


사람이 참 많다.
이제껏 보지 못한 인파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가는 길은 항상 무겁다.
오늘은 오는 길이 너무 설레여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경기도 오산.

문재인 대통령님 당선 덕분인 듯 오늘따라 넘쳐나는 꽃물결이 아름답지만 그만큼 서럽다.
가느다랗게 하늘로 흩어지는 하얀 아지랑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고 갔는지 가늠키 어려운 국화들도.
왠지 다 슬프다.
그냥 다 서글프다.


오늘도 산으로 길게 늘어선 등산로는 밟지 못했다.
남편은 더운데 잘 됐다!!라고 말하지만, 그 또한 더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봉하는 변하고 있었다.
재단 가입 부스는 이전보다 머무는 사람들이 많았고, 노무현 대통령님 영상을 보는 이들은 예전과 달리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
울고, 울었으며, 숨죽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대통령이 말이야~~하며 사진마다 부연설명을 하고, 단체관광객들은 도시락을 먹기 바빴다.
기념품샵은 발디딜 틈 없고, 사람들의 손에는 노란색이 출렁였다.


왜...예전에는 그러지 못 했을까.
왜...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나는 기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님 당선에 노무현 대통령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보고 싶었다.
봉하에 오면,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다.

여전히 무겁고,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먹먹하다.

언제쯤이면 봉하에 가도 슬프지 않을까.
언제쯤이면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노무현 대통령님 앞에 정면으로 설 수 있을까.

집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는 중, 유시민 작가를 보았다.
남편은 흥분해서 유시민!!이라 외쳤지만, 난 그보다 먼저 그 옆의 화려한 꽃바구니에 눈길이 닿았다.
여사님께 드리려 샀나 보다...

왠지 조금 위안된다.
여사님이 받으면 좋아하시겠지.

꽃바구니를 받아 들고 환하게 미소지을 여사님 생각에 조금 마음이 가볍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서글픔이 조금 사그러든다.

뜨거운 볕 아래,
우리의 봄은 느리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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